추상미 감독의 다큐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덤덤히 짚은, 분단이 낳은 또 하나의 아픔 [리뷰]

고희진 기자 2018. 10. 3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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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한 장면.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를 맡아 키우던 폴란드 프와코비체의 양육원 아이들 모습. 커넥트픽쳐스 제공

6·25 때 북한에 의해 동유럽에 맡겨졌다 종전 후 돌려보내진 전쟁고아들 이야기

6·25전쟁 당시 북한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 전쟁고아들의 양육을 맡겼다. 이때 폴란드로 보내진 아이들만 1500명에 달했다. 이 중엔 남한에서 태어난 이들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아이들은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남한이 고향인 아이들 역시 북한으로 보내졌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간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던 전쟁고아들의 삶이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 담겼다. 배우 추상미가 감독을 맡은 영화는 덤덤한 목소리로 분단이 낳은 또 하나의 아픈 현실을 짚는다.

영화는 폴란드 프와코비체에서 시작한다. 1953년 작은 시골 마을 프와코비체의 양육원에 1270명의 북한 전쟁고아들이 이송된다. 2년 전 러시아로 보내졌으나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하고 건강만 나빠진 아이들이었다. 양육원의 역할은 “약해진 아이들을 숨겨 건강을 회복시킨 뒤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이제는 흰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된 양육원 선생님들은 북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짓는다.

70여년이 흐른 뒤, 이곳을 찾은 이는 추상미와 탈북민 송이씨다. 영화엔 두 사람이 왜 이곳을 찾았는지 담겨있다. 추상미는 4년 전 한 출판사에서 소설 <천사의 날개>를 접한다. 폴란드로 이송된 전쟁고아의 얘기를 담은 책이었다. 책의 모태가 된 폴란드 다큐멘터리 <김귀덕>을 보고 전쟁고아들의 삶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됐다. 당시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그는 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홀로 남아야 했을 아이들 삶을 부모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로 감독 데뷔한 배우 추상미.

추상미는 이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기려 한다. 전쟁고아로 폴란드에 갔지만,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난 김귀덕의 이야기를 영화 <그루터기>로 만들기 위해 그는 탈북민들을 만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탈북민들은 저마다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다. 활발해 보이는 송이씨 역시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과거를 안고 있다. 영화 사전조사를 위해 폴란드로 가려는 추상미는 송이씨에게 동행을 제안한다.

관련 소설·다큐 보고 아이들의 삶 부모 관점서 보게 돼 90세 넘은 선생님들 목소리 기록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사실 처음부터 계획된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니었다. 추상미는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지 조사를 할수록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전쟁고아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팩트를 다루는 다큐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며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이미 90세를 넘긴 상황이었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다큐화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간 북한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재일 조선인이나 탈북민 감독들의 작품이 많았다. 이들 다큐멘터리는 대개 분단의 상처나 북한체제의 가학성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뒀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보편적인 정서로 전쟁의 상처를 바라본다.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들, 남한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가족과 떨어진 탈북 청소년들은 결국 어른들이 벌인 참극에서 발생한 희생자다.

“전쟁과 탈북민 문제 새롭게 조명하고파”

추상미는 “어떤 필터로 비추느냐에 따라서 전쟁이나 탈북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좀 더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송이씨 외에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탈북 청소년 몇몇과 아직도 “연락하며 공동체처럼 지낸다”고 했다. 극영화 <그루터기>는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송이씨를 비롯해 다큐멘터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탈북민들이 조연급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31일 개봉.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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