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 해지하겠다"했더니 백화점 상품권 11만원이 들어왔다

2018. 10. 31. 10: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conomy_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담배 끊기보다 어렵다는 'IPTV 해지' 직접 해보니..

[한겨레]

“초고속인터넷이나 인터넷텔레비전(IPTV) 가입자들은 지금 당장 사업자 고객센터로 전화 걸어 ‘가입을 해지하겠다’고 해보세요. 최소 10만원 이상을 챙길 수 있어요.”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선량한 소비자들을 왜 ‘블랙컨슈머’(사업자 쪽에서 볼 때 불량·악질 고객)로 만들려고 하냐고?

며칠 전,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데 화면 앞으로 모기가 왔다갔다 했다. 바깥 날씨가 추워지니까 열이 나는 텔레비전 근처로 몰려드는 것이다. 신경이 쓰여 전자 모기채로 잡았는데, ‘지직’(모기가 타는 소리) 하는 소리가 나면서 화면이 크게 흔들렸다. 화면 상태가 계속 깜빡거려 껐다 켰더니 소리만 날 뿐 화면은 완전 먹통이 됐다. 참고로, 내 집은 한강 근처인데다 지은 지 45년 지난 낡은 아파트라 날이 쌀쌀해진 요즘도 모기한테 시달린다.

텔레비전 제조업체에 고장수리 요청을 했더니, 사정 얘기를 듣자 마자 고치느니 새로 사는 게 낫다는 답이 왔다. 전자 모기채로 모기를 잡을 때 순간적으로 고압 전류가 발생해 액정화면(우리 집 텔레비전은 42인치 크기 LCD TV였다)을 망가트렸단다. 자주 있는 일이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출장 수리를 요청했는데, “이 모델의 액정화면 부품은 이미 단종된 상태이고, 어렵게 부품을 구한다 해도 비용이 50만원 가까이 든다. 10~20만원 더 주면 같은 크기의 새 것을 살 수 있다”며 “이 참에 텔레비전을 바꾸라”고 권했다.

전자모기채로 모기 잡다가 LCD 텔레비전 고장 내
“50만원 들여 교체해야…차라리 새 거 사는 게 유리” 이 참에 TV 없이 살기로 작정
IPTV 해지 신청하다가 상담원들 설득에 실패
전화 돌려가며 “정말 해지할 거냐” 설득하고
지칠 때쯤 ‘현금 10만원’ 제안에 ‘풀썩’
졸지에 ‘TV 없는 IPTV 가입자’ 전락

어쨌건 이 과정에서 텔레비전 제조업체가 공식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사실 한가지를 깨달았다. ‘텔레비전 가까이서는 절대 전자모기채를 사용하면 안된다’고. 모기 잡으려다 텔레비전 태워먹고, 추가로 수리기사 출장비 1만8천원을 쓰며 알게 된 ‘비싼 지식’이다. 텔레비전 제조업체 홍보실 임원한테 “사용설명서를 통해 고객들에게 알려줬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건 상식이지. 기자가 그것도 몰랐어”라는 면박이 돌아왔다. ㅠㅠ.

문득 이번 기회에 텔레비전 없이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 삼아 “이 참에 텔레비전 없이 살아볼까” 했더니, 가족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거 좋네”라고 한다. 그동안 내가 텔레비전 앞에 붙어있고, ‘리모콘 독재’를 하는 꼴이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ㅠㅠ

하여튼 그래서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숙제가 생겼다. 바로 인터넷텔레비전을 해지하는 거다. 텔레비전도 없는데, 월 1만3천원씩 내며 인터넷텔레비전 가입을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 에스케이브로드밴드(SKB)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텔레비전을 없애게 된 ‘슬픈 사연’을 얘기하며 “인터넷텔레비전 가입이 필요없게 됐으니 해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평소 해지가 어렵다는 말을 들은 바 있어 긴장한 상태로 조심조심 상담원과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전화가 자꾸 돌려졌다. ‘상담원’이 받더니 해지 얘기를 듣자 마자 친절한 안내를 곁들여 ‘해지 담당자’한테 전화를 넘기더니, 다시 ‘본인 인증 담당자’한테로 옮겨졌다. 그런데 어느 단계에서부터인가 해지 요청을 처리해주는 게 아니라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고객님이 써온 상품의 가성비가 좋습니다. 그 값에 그 정도 채널을 제공하는 상품은 지금은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사게 될 수도 있으니 그냥 유지하는 게 어떨까요. 1년 약정하면 현금 1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집요하게 설득했다.

에스케이브로드밴드(SKT)로부터 받은 신세계상품권 교환 쿠폰.

텔레비전 없이 살기로 했으니 그냥 해지해 달라고 재차 강하게 요구했더니, 그럼 담당자한테 연결하겠다며 전화가 다시 옮겨졌다. “고객님! 매니저한테 얘기 들었는데요. 1년 약정하시면, 현금 11만원 드리고, 고객님 이동통신 요금 중복 할인 혜택도 드리겠습니다. 사실상 1년치 요금을 면제해드리는 겁니다. 원하신다며 현금을 조금 더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지쳤다. 순간 “해지 안해도 추가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 혹시 알아. 심심해서 텔레비전을 사게 될지도”라는 ‘악마의 유혹’이 머리 속에 가득 차면서 나도 모르게 “그러자”고 응낙해 버렸다. 상담원이 빠른 목소리로 “서비스를 위해 고객님 개인정보를 에스케이텔레콤에 제공하고 공유하는데 동의하십니까?”라고 묻더니 다 됐단다. 그리고 이틀 뒤, 문자메시지로 신세계백화점 모바일상품권 11만원을 보내왔다. 이제 뻬도박도 못하게 된 것이다.

모바일상품권을 보며 헛웃음이 났다. 텔레비전도 없으면서 인터넷텔레비전 가입을 유지하며 월 1만3천원씩 내고, 그 대가로 상품권 11만원을 받은 ‘내 꼴’이 한심해보이기까지 했다. 주위에서 “통신담당 기자 맞아!”라고 놀리기까지 했다. 그동안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텔레비전 등의 해지가 담배 끊기보다 어렵다는 농담 섞인 말을 들을 때마다 “설마” 했다. 하지만 실제 경험해보니 사업자들의 해지 방어 설득은 ‘막강’했다.

어차피 저질러졌으니, 추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그 날’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정확히 1년 뒤 다시 해지에 도전하고, 꼭 성공하는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대부분 1년 약정 사실을 잊어버려 이후에도 계속 요금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사업자들이 거액을 들여 용역업체까지 동원하며 해지 방어에 나서는 것도 이 점을 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소비자들이 이의제기를 하면 “1년 뒤 해지 요청을 안했으니 고객 귀책”이라고 주장한다. 해마다 국정감사 때면 ‘해지 불만’ 통계가 공개되는데, 대부분 이런 과정을 통해 쌓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빨간 펜으로 수첩 속 달력의 그 날에 크게 별 표시를 하고, 상담원과 통화내용을 요약해뒀다. 내년 그 날에 꼭 해지 신청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뒤집어 보면, 나의 이번 경험이 다른 가입자들에게는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겠다 싶이 이렇게 적어봤다.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해지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10만원 이상을 챙길 수 있는. 사업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텔레비전이 없는 사람들까지 가입자로 삼는데, 소비자들도 나름대로 머리 써서 챙길 수 있는 건 알뜰히 챙겨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에서. 사업자가 이들을 ‘블랙컨슈머’라고 한다면, 사업자는 나에게 ‘블랙컴퍼니’가 되는 셈이다.

전자모기채를 텔레비전 가까이서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도 중요한 정보다. 텔레비전 제조업체들도 참고해서 해결책을 찾아줬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