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급휴가 써" 강요에 집단 퇴사했다가..억대 소송당한 텔레마케터들

문현경 2018. 11.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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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케터 관련 이미지.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경기도 부천의 한 휴대폰 판매 회사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해오던 이모(48)씨 등 8명은 지난해 8월 단체로 회사를 그만뒀다.

전달부터 회사가 "휴가철 비수기라 영업 실적이 부진하니, 8월 한 달 동안 15일씩 무급휴가를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나온 게 갈등의 시작이었다.

적게는 130만원, 많으면 17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던 직원들은 여기서 반토막 날 월급을 견디기 힘들었다. 이씨 등 직원들은 "무급휴가를 쓰지 않고 계속 정상근무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는 무급 휴가를 밀어붙이려 했다. "무급 휴가를 쓰지 않을 거면, 8월 목표 실적을 1.6배로 올리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시 기본급을 깎겠다"는 통보를 일방적으로 받았다는 게 직원들의 주장이다.

직원들은 그달을 넘기지 못했다. 지난해 8월 21일, 이씨를 포함한 8명의 직원들은 한날 한시에 사직서를 내고 더는 출근하지 않았다.

텔레마케터 관련 이미지.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다시 안 볼 줄 알았던 회사로부터 민사소송이 접수됐다는 통보가 온 것은 그로부터 3개월 뒤였다. 근로계약서에 "퇴직 1개월 전에 회사에 통보해 인수·인계를 해야 하고 퇴사에 대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는데, 미리 알리지 않고 협의도 없이 갑자기 퇴사해버리는 바람에 회사가 손해를 봤으니 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회사는 100만원대 월급을 받던 8명의 직원에게 총 1억 4466만원의 손해액을 청구했다. 각 직원이 매달 내왔던 매출액 평균에서 월급을 뺀 값이었다. 혼자서 많게는 수천만원대 매출을 냈던 직원도 있었는데, 그런 직원일수록 물어내라는 손해액도 컸다.

직원들은 대부분 아이를 키우며 생계비를 벌기 위해 텔레마케터로 나선 엄마들이었다.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기초생활수급을 받아 생활하는 여성도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됐다.

직원들의 편에 서게 된 법률구조공단 부천출장소 박범진 변호사는 "회사가 무단으로 근로조건을 변경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한 퇴직은 정당하다"고 변론했다. 근로기준법엔 "임금·근로시간·휴일·연차 유급휴가 등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 근로자는 즉시 근로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17·19조)"고 돼 있는데, 회사가 계약서에 없던 무급휴가를 강요했으니 퇴사는 직원들의 선택이었다는 주장이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민사합의1부(부장 김연화)는 이를 받아들여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회사가 이씨 등에게 당초 근로계약 내용에 없던 15일의 무급휴가를 사실상 강제하며 불리한 근로조건을 강요했고, 이로 인해 이씨 등이 퇴사를 결심한 것으로 봄이 자연스럽다"면서 "이 퇴사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것으로 원고와 피고들 사이의 근로계약은 적법하게 해제되었다"고 봤다. 회사는 이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고 이 판결은 지난 9월 28일 확정됐다. 이씨 등은 이제 퇴직금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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