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징용 판결과 국민감정, 국익의 괴리

기자 2018. 11. 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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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과 일본 양국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을 다짐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최근 가뜩이나 2015년 위안부 문제 합의의 이행을 놓고 긴장됐던 한·일 관계가 지난 10월 30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큰 파도를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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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석 前 駐싱가포르 대사 駐일본 공사

올해는 한국과 일본 양국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을 다짐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이후의 양국 관계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정체돼 왔다. 이는 일본의 보수화 및 이에 따른 역사 인식의 수정과 함께 과거사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 데 대한 피로감이 악순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가뜩이나 2015년 위안부 문제 합의의 이행을 놓고 긴장됐던 한·일 관계가 지난 10월 30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큰 파도를 마주하게 됐다. 격동의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일본과의 협력이 실종될 외교적 시련에 직면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 다수 의견으로 이들의 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지난 53년 동안 우리 정부가 취해 왔던,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청구권이 1965년의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됐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는 것으로, 향후 식민지배 하에서 우리 국민이 입은 다양하고 무수한 피해에 대한 유사한 배상청구가 쇄도할 가능성에 문을 크게 연 셈이다. 이는 한·일 관계의 핵심적 법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해 일본과의 관계를 크게 악화시킴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 약속을 일방적으로 뒤집는 나라라는 불신을 살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이 우려된다.

국교 정상화를 위한 장기간의 한·일 회담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됐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언급을 유보하고 ‘과거의 조약이 이미 무효화’됐다는 표현으로 정치적인 절충을 했다. 청구권의 지불 명목 및 액수도 마찬가지다. 지금에 와서 그러한 경위를 도외시하고 협정을 문안만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또한 판결은, 인정된 청구권이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이 아닌 위자료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징용 문제가 대일 청구 8개 항에 적시된 사실을 우회하려는 것이라는 비판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제적 합의나 그 해석의 중대한 변경은 국내 절차만으로 끝날 수 없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외교부를 비롯한 행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그간의 입장을 안일하게 바꿔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청구권협정 제3조에 규정된 중재위원회 구성에서부터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재판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방안을 검토해 국제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대한다. 고령의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동정과 우리 정부의 미진했던 배상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일본의 과거사 처리에 대한 국민 감정은 공감하나, 이제는 더 큰 국가이익을 시야에 두고 이 문제들이 국내적으로 해결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사법부가 외교 문제에서 행정부와 배치되는 입장을 내지 않도록 자제하는 ‘한목소리 원칙’을 택하고 있으며, 같은 맥락에서 외교 사안이 쟁송의 대상이 될 경우 법원이 외교 당국의 의견을 듣도록 제도화돼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외교부는 이러한 판결이 초래할 외교적 파장에 대한 의견을 대법원에 제시하려는 노력을 한 일로 인해 ‘재판 거래’라는 오명으로 수사를 받고 압수수색까지 당했다. 이번 외교적 후폭풍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좀 더 선진화된 제도가 정착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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