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최전방 강릉에서 신라 장수가 입었던 갑옷이 출토됐다

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2018. 11. 1. 15:54 수정 2018. 11. 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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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강릉 초당동 유적에서 발굴된 4세기 신라시대 찰갑. 당시 강릉지역에서는 고구려와 신라간 국경충돌이 종종 일어났다.|강원고고문화연구원 제공

강원 강릉 초당동 유적에서 4세기 신라시대 찰갑(札甲·작은 미늘조각을 꿰매어 만든 갑옷)이 발굴됐다. 영동지역에서 신라시대 갑옷이 완형으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릉 초당 1처리분구 하수관로 정비사업부지를 조사중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1일 “찰갑은 직사각형 형태의 토광목곽묘에서 출토됐다”면서 “아마도 4세기 강릉지역에 주둔한 신라장수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찰갑은 시신을 올려놓는 시상대의 서단벽 쪽에서 발견됐다, 몸통을 보호하는 부분 외에 목의 뒤부분을 보호하는 목가리개, 어깨를 보호하는 어깨가리개 등과 함께 확인됐다. 찰갑 옆에는 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등 4세기대로 편년되는 신라토기들이 함께 부장됐다.

찰갑과 함께 확인된 신라시대 토기류. 토기편년으로 보아 4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강원고고문화연구원 제공

<삼국사기>를 보면 “395년(신라 내물왕 42년) 말갈이 북쪽 변방을 침입하여 신라가 크게 패했다” “450년(신라 내지왕 34년) 하슬라(강릉) 성주 삼직이 실직(삼척)의 들에서 사냥하던 고구려 변방 장수를 살해했다”는 등의 글이 보인다. 4~5세기 무렵 고구려·말갈과 신라가 국경지대인 강릉을 두고 충돌을 벌였음을 일러주는 기록이다.

강릉지역에서는 그동안 많은 수의 신라고분이 조사되었다. 특히 초당동 고분의 대형 석곽묘에서는 ‘출(出)자형 금동관’과 금제조익(새날개)형 관식, 금동호접(나비)형 관모장식 등 상류층의 유물들이 대거 출토된 바 있다.

윤석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 기획연구실장은 “이번 초당동에서 출토된 찰갑은 이른 시기부터 신라가 강릉 지역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하여 왔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자료라 볼 수 있다”면서 “앞으로 신라 시대 찰갑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확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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