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와 인간학대 상관있나"..양진호는 왜 동물을 학대했는가
“넌 칼 들고, 넌 닭 날려.”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머뭇대던 직원들이 닭을 공중으로 던진 후 일본도를 휘두른다. 칼을 맞은 닭이 몸부림칠 때마다 깃털이 여기저기 흩날린다. 어설픈 칼부림 몇 번에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닭은 고통 속에 죽어간다. 명백한 동물학대다. 표면상 ‘닭을 잡아 백숙을 해 먹자’는 게 이유였지만, 직원들은 이 사건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뉴스타파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지난달 31일 영상으로 공개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행태는 충격적이다. 영상 속 양 회장은 워크숍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살아있는 닭을 활, 일본도로 잡도록 강제했다. 그는 직원이 제대로 닭을 죽이지 못하자 “연기하냐 지금”이라 말한 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직접 닭을 사살하기도 했다.
영상이 공개된 날 동물권단체 케어는 양 회장을 동물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박소연 케어 대표는 "단순히 (닭을) 먹기 위해 죽이는 것이라 보기에는 누가 보아도 잔인성과 오락성이 높은 행위"라며 "살아있는 생명을 유희의 목적으로 도구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중생 성추행·살인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지난해 열린 재판에서 딸이 자신을 무서워하며 지시에 따른 이유에 대해 “예전에 내가 화가 나서 개 6마리를 망치로 죽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부녀자 8명을 살해하고 2005년 10월엔 장모와 부인까지 살해한 강호순 역시 잔혹하게 개들을 살해한 경험이 있다. 그는 도축업을 하면서 개를 얼리거나 굶겨 죽이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해 전형적인 동물학대 경향을 보였다. 강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개를 많이 잡다 보니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느끼게 됐고 살인욕구를 자제할 수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인-여성 등 21명을 토막 살인한 유영철, 인천 초등생을 살해한 김양, 부산 일가족 살인 사건 용의자 등도 경찰 조사 결과 동물을 학대한 전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엽기 살인마들 중에는 과거에 동물을 학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FBI 연방수사국에 따르면 17명을 살해한 제프리 다머 등 연쇄살인범 다수는 어린 시절 동물학대 및 살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프리 다머는 10대 시절 나무 뒤에 숨어 동물들을 해부했다. 고양이 머리를 잘라 꼬챙이에 꽂아두는가 하면 강아지의 팔다리를 잘라 부위별로 늘어놓기도 했다.
◆강력범죄자들의 공통점 ‘동물학대’
양 회장의 동물학대 영상이 나오기 전날인 10월 30일엔 양 회장이 전직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이 올라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전문가들은 동물학대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범죄 사이에 강한 연속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많은 연구 결과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서퍽 카운티의 입법자 존 쿠퍼(Jon Cooper)는 “동물들을 폭행, 방치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도 똑같이 폭행할 확률이 높은 잠재적 범죄자”라고 일침했다.
◆선진국들, 동물학대범 엄벌 후 철저히 관리
이에 선진국들은 흉악 범죄 예방을 위해 동물학대범을 강력처벌하고 관리하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16년부터 동물학대를 반사회적 범죄로 분류하고, 동물 관련 범죄의 통계화 작업을 시작했다. 동물 관련 범죄를 살인 및 폭행죄와 같은 중대 범죄로 간주하고, 강도 높은 처벌기준 마련에 나선 것이다.
미국 테네시주 정부는 마치 성폭행범처럼 동물학대범의 이름, 얼굴, 생년월일 등 신상정보를 공개한다. 또한 대부분의 주에서 동물학대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학대금지법을 제정했다. 주마다 세부적인 사항은 다르지만 최대 10년 징역형이나 최대 50만달러(한화 약 5억7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만큼 중범죄로 취급한다. 호주, 영국, 일본 등도 동물학대 범죄 처벌 강도가 높은 국가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연쇄 살인범들은 대부분 동물을 학대하는 것부터 범죄를 시작한다”며 “이같은 제재는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동물학대에 관대한 한국... 강력범죄 새싹 키울까 우려
한국 사회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동물학대에 대한 인식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3월 개정된 동물보호법에서 △동물의 목을 매달고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다른 동물이 보는 데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않아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간의 동물학대 처벌 사례들을 보면 A씨의 처벌 수준도 미약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3월 제주시에서 오토바이에 목줄을 묶어 개를 끌고 가 죽게 만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모(80)씨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지난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순회법원이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트럭에 매달고 1.5km를 주행한 남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것과 딴판이다.
◆전문가 “동물학대죄 처벌 대폭 강화해야”
최근 동물권에 대한 인식 제고에 따라 우리나라도 동물학대죄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동물학대범을 철저히 처벌-관리하는 것이 추가 범죄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소연 케어 대표는 "이번 (양진호 회장) 사건은 정서 장애를 지닌 한 인간의 가학적 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폭력의 연결성을 보여준다"며, "동물에 대한 폭력과 인간에 대한 폭력이 깊은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동물권단체 ‘동물구조119’의 임영기 대표는 1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동물 학대가 반인류 범죄로 이어진다고 100% 말하긴 조심스럽다”면서도 “동물학대와 약자 대상 범죄 사이의 상관관계는 외국 사례나 연구 결과를 보면 타당성이 있다. 동물학대를 자행한 사람들은 생명을 존중하지 못하고 약자를 해하는 범죄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또 “동물학대 범죄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동물학대 처벌이 기본적으로 너무 약하다. 동물학대 범위를 폭넓게 적용하고 처벌도 강력하게 해야 사회 안전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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