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판도라의 상자 열렸다" 일본 반응이 호들갑이 아닌 이유

김종성 입력 2018.11.03. 12:45 수정 2018.11.0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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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강제징용 문제의 파괴력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 신닛데츠스미킹)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측 손을 들어줬다.
 
원고 이춘식씨(98세), 고 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는 1941~1943년 일본제철(니폰세이테츠)에서 강제노역에 종사했다. 하지만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2005년 2월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3년 8개월 만인 올해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고들에게 각각 1억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와의 협력체제 속에 이들에게 강제노역을 강요한 기업은 일본제철이다. 이 전범기업은 일본제국주의 패망과 함께 4개 회사로 분할됐다. 이 중에서 야하타제철과 후지제철이 합병하여 1971년에 신일본제철(신닛폰세이데츠)을 만들었다. 신일본제철이 2012년 스미토모금속과 합병해 만든 회사가 바로 신일철주금이다.
 
일본제철의 정통성이 야하타제철·후지제철을 포함한 4개 회사로 승계되고 이것이 신일본제철을 거쳐 신일철주금으로 이어졌으므로, 대법원이 신일철주금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도쿄의 신일철주금 본사.
ⓒ 위키백과
 
 
2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에 주목했다고 한다. 2017년 8·15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 사안을 언급한 게 계기가 됐다.
 
문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라며 "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노무현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8·15 경축사가 특히 큰 충격이 됐다.
 
그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본격 대응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외무성 북동아시아과를 남북한을 각각 담당하는 2개의 '과'로 분리했다. 북한 문제를 전적으로 취급할 필요도 있었지만, 남한과의 강제징용 문제를 전문적으로 처리할 필요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서를 분할했다는 게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분석이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강제징용 문제가 갖는 고도의 파괴력 때문이다. 이 속에는 위안부 문제와 차원을 달리 하는 핵폭탄 같은 파급력이 내재돼 있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 문제라는 점에서, 성적 착취와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세계인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본 정부와 군대가 나서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에 세계인들은 분노한다.
 
이에 비해, 강제징용 문제는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들의 협력 속에 벌어졌다. 위안부 문제에도 기업들이 개입했지만, 강제징용 문제에서는 그 개입의 강도가 훨씬 크다. 일본 기업들까지 그런 식으로 침략전쟁에 가담한 사실을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강제징용 문제는 일본 정부나 군대뿐 아니라 일본 전체가 손가락질을 받게끔 할 수 있는 사안이다.
 
 
 서울 용산역 광장에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 김종성
 
 
강제징용 문제는 피해 규모부터가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만 70만 명이 넘는 강제징용자들이 일본 유수 기업들의 공장·광산·공사장 등에 투입"됐다고 2011년 <서울국제법연구> 제18권 제1호에 실린 신희석의 논문 '일본 기업의 국제법적 책임'은 말한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6년 사이에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 노역장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여기에 가담한 일본 기업들의 숫자도 대단하다. 2015년 12월 7일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표한 '강제동원 현장 통합콘텐츠 구축사업- 일본지역 노무 작업현장 현황'에 따르면, 일본 안에서만 해도 4119개 작업장이 강제 노역장으로 이용됐다고 한다. 2015년 당시까지 현존하는 작업장만 해도 1260개나 된다.
 
그런 작업장 중에는,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많다. 미쓰비시 계열 작업장이 108개, 미쓰이 계열이 77개, 신일본제철스미토모 계열이 120개, 니시마쓰 건설 계열이 31개다. 이런 주요 기업들이 일본 정부와 단합해 식민지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렸던 것이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노예노동이 아니었다.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은 있었다. 하지만, 약속일 뿐이었다.
 
공짜로 노동을 시키면서도 최소한의 근무환경조차 조성해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런 사례 중 하나가 작년 7월 26일 개봉된 영화 <군함도>에 나온 미쓰비시 그룹의 하시마(군함도) 해저탄광 작업장이다. 이곳에 끌려간 500~800명의 한국인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 노출됐는지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이렇게 말한다.
 
"해저 탄광은 승강기를 타고 바다 속 깊이 한없이 내려가야 했다. ······ 하강 속도가 너무나 빨라 온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 지하 수백 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탄을 모으고 올려보내는 넓은 공간이 있고, 거기서 개미집처럼 퍼진 굴속으로 더 들어가야 했다."
 
 
 탄광에서 작업하는 강제징용 노동자. 용산역 광장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극도로 위험한 환경으로 내몰면서도, 미쓰비시 그룹은 기본 의료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의 감기는 질병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쉬고 싶다고 말하면, 주사바늘이 아니라 몽둥이를 들었다. 전봇대에 묶어놓은 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한 대씩 때리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정도였으니, 주거환경이 좋았을 리 없다. 일본인들에게는 괜찮은 주거 공간이 제공됐지만, 한국인들한테는 비좁을 뿐 아니라 햇빛도 들지 않는 공간이 주어졌다. 파도가 거칠어지면 바닷물이 방에 스며들기도 했다고 한다. 봉급도 안 주면서 이런 식으로 대우했다면, 노예노동이란 표현 말고는 적합한 용어가 없을 것이다. '강제노동'은 너무 신사적인 표현이다.
 
이런 노예노동이 오늘날 일본 경제를 만든 기반이 됐다. 1894년 청일전쟁 배상금을 기반으로 일어선 일본 경제는 한국·타이완·오키나와·만주 등에 대한 식민지배(특히 강제징용)를 토대로 고도의 급성장을 이루었다.
 
1930년대의 대공황 속에서도 일본 경제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식민지에서 병력뿐 아니라 노동력·토지·자원을 공짜로 착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영토를 늘려나갔기 때문이다. 위의 신희석 논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 기업의 발전은 19세기 이래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당시 일본의 주요 기업이었던 야하타제철의 경우, 청일전쟁 승리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나라로부터 받은 막대한 배상금으로 설립되었다.
 
1930년대 대공황 중에도 중국 침략에 힘입어 일본 경제는 연평균 5% 성장을 기록하였고 특히 중화학공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이 시기에 성장한 신흥 재벌은 거의 전적으로 군수계약에 의존하여 성장하였다. 때문에 연합국이 일본의 전쟁 수행을 가능하게 한 군수 재벌의 해체를 요구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은 식민지 착취를 통해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됐다. 그러니 전범 기업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이 아직도 일본 경제의 주요 축을 구성하고 있다.
전쟁범죄의 결과물이 현재의 일본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연합국이 군수 재벌의 해체를 요구했지만, 그냥 요구에 그칠 뿐이었다. "연합국은 일본 경제인의 전범 소추(기소)를 적극 검토하였으나, 이는 결국 무위로 끝났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일본 정부나 군대뿐 아니라 일본 기업들까지 전쟁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앞으로 동종 소송이 제기되고 이것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면, 일본 기업들의 도덕성이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이번 판결을 보도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표현한 것은 이 문제가 일본 경제에 미칠 메가톤급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
ⓒ 니혼게이자이신문
 
 
이 문제가 계속 확산되면, 일본 기업들이 도덕적 상처만 입는 데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의 해외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국경을 초월하는 국제 시민들의 연대가 점차 강해지고 있으므로,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일본 기업들의 해외 활동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도리어 항의를 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당일 오후,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은 이수훈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해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양국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관계가 근본적으로 뒤집힐 수 있다면서 한국 정부에 심리적 압박을 가한 것이다.
 
위에 소개된 8·15 경축사 때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문장 직후에 문 대통령은 "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일본 정부는 '한일관계를 근본적으로 뒤집을 것이냐?'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하는 방법으로 '용기 있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판결의 직접적 당사자인 신일철주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2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 회사 미야모토 가츠히로 부사장은 "(이번) 판결은 일·한 청구권 협정이나 일본 정부의 견해와 상반되며, 매우 유감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신일철주금 부사장의 언급.
ⓒ 니혼게이자이신문
 
 
가츠히로는 직함은 부사장이지만, 대표이사 자격을 갖고 있다. 올해 4월부터 9월까지의 결산과 관련된 회견에서 그는 "매우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대표이사 부사장이 공식 석상에서 "매우 유감"이라고 했으니, '매우 유감이다'가 이 회사의 공식 반응이 되는 것이다.
 
일본 정부나 신일철주금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전쟁범죄에 대한 그들의 몰염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느끼는 부담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정부뿐 아니라 일본 기업, 나아가 일본 경제 전체에 전범 이미지를 씌울 가능성이 없지 않은 강제징용 문제 앞에서, 그들이 느끼는 심리적 중압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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