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美 수출 좌절' T-50..유럽서 돌파구 찾나
지난 9월 미 공군 고등훈련기(APT) 사업 수주 실패 이후 T-50 고등훈련기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처지를 이보다 더 잘 드러내는 표현은 없다.
17조원 규모의 APT 사업에서 보잉-사브 컨소시엄에 패한 후폭풍으로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지난 7월 발생한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 여파로 헬기 생산은 잠정 중단됐고,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비용 분담과 기술이전에 대한 재협상을 통해 ‘덜 주고 더 받기’를 시도, KAI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내 납품 및 수출 물량도 줄어들고 있어 대금 회수도 쉽지 않다.
KAI가 스페인 시장 진출을 시도한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보잉의 F/A-18과 유럽 에어버스의 타이푼 전투기를 운용하는 스페인은 훈련기 노후화로 고심하고 있었다. 항공선진국인 서유럽에 훈련기를 수출할 경우 그 품질과 성능을 인정받을 수 있어 KAI는 미 공군 APT 사업과 함께 스페인 동향을 예의주시해 왔다.
당초 수출 대상으로 지목된 항공기는 KT-1이었다. 스페인 공군이 초등훈련기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페인 공군은 T-35C 초등훈련기 35대를 운용중이지만 1986년에 제작되어 30여년 넘게 운용돼 교체가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 1월 17일 송영무 당시 국방부장관이 방한한 마리아 돌로레스 데 코스페달 스페인 국방부장관에게 KT-1에 긍정적인 관심을 요청한 것도 스페인 내부사정을 감안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KAI는 지난 7월 영국 판보로에어쇼에서 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판촉전을 전개했다. 당시 KAI 관계자는 “조종사 교육에 필요한 모든 항공기를 납품할 수 있다”며 “스페인과 그리스의 훈련기 사업을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스페인 훈련기 사업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스페인 정부는 사업 규모를 확대, 고등훈련기도 함께 도입하는 방향으로 사업 방식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KAI가 사업을 수주할 경우 KT-1은 최대 34대, TA-50 최대 20대를 스페인에 판매하게 된다. 지상장비 등을 합치면 1조원대 규모 사업이다. 미 공군 APT 사업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나 유럽 시장에 진출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스페인 공군이 미국제와 유럽제 항공기를 함께 운용하고 있어 다른 유럽국가에 훈련기를 추가 판매하는 발판 역할도 가능하다는 평가다.
◆변수는 ‘항공기 맞교환’ 절충교역
문제는 절충교역이다. KAI가 스페인에 훈련기를 판매하면 그 대가로 스페인에 기술이전이나 부품 주문 등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스페인 정부 소식통은 “스페인측은 에어버스 A400M 수송기 4~6대를 한국이 절충교역 형식으로 도입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에어버스 지분 19%를 지닌 스페인은 A400M 27대를 에어버스에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군의 수요보다 많은 수량을 주문한데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스페인 국방부는 27대 중 13대를 운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스페인 국방부는 에어버스와 협상을 거쳐 미운용 A400M 13대를 다른 나라에 판매하기로 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 판매하지 못한 A400M이 있으면 대당 2000만 유로(약 256억원)의 벌금을 지불해야 한다. 스페인이 절충교역 조건으로 거론한 것으로 알려진 A400M은 스페인 국방부가 팔아야 할 13대 중 일부로 정부 간 거래 방식이 적용된다.
스페인 정부 소식통은 “A400M 절충교역은 스페인 정부가 보증하며, A400M 컨소시엄 회원국인 독일과 프랑스도 연대보증을 할 것”이라며 “한국은 스페인 정부의 대당 도입 가격(약 3000억원)보다 15%, 에어버스 제안가격보다 약 30% 정도 저렴한 값에 도입할 수 있다. 도입규모 생산 및 인도일정은 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정부의 A400M 절충교역 제안은 자국과 한국 내 사정을 함께 고려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A400M은 스페인 서남부 도시 세비야에서 생산된다. 세비야는 탐험가 콜럼버스의 무덤이 있는 세비야 대성당 등 관광명소로 유명하지만 스페인에서는 타이푼 전투기 등을 만드는 헤타페와 더불어 항공우주산업 중심지 중 하나로 꼽힌다. 세비야 공항 인근에는 과거 스페인 항공우주업체 카사(CASA)가 운영했던 수송기 공장이 현재는 에어버스 공장으로 바뀐 채 가동중이다. A400M 1호기도 여기서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산업협력이라는 용어로 쓰이는 절충교역은 방산업체가 홀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으면 수출국가에 제안조차 할 수 없다.
스페인은 과거 한국 공군 차기전투기(F-X) 사업 당시 타이푼 전투기를 앞세워 한국 시장을 공략한 바 있다. F-35A에 밀려 수주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정부와 공군, 방위산업계에 대해 많은 지식과 정보를 축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스페인 정부는 훈련기 도입과 수송기 판매를 동시에 제안하며 ‘판 흔들기’를 하고 있다. 스페인 훈련기 수출 절충교역은 KAI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공군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항공선진국이라는 서유럽에 국산 항공기를 판매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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