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재무부 '공포의 전화' 이후..은행들 남북경협 셔터 내렸다

김태윤.정용환 2018. 11. 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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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 전화 이후 3자 제재 공포
NH농협, 금강산 지점 재개점 발 빼
KB국민, 북 전문가 채용 지지부진
우리, 금융사업 위한 TF 활동 중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일 평양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북·중 예술인 합동공연을 관람한 뒤 출연진을 격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 같은 사실을 4일 보도하며 김 위원장은 ’역사의 온갖 풍파를 이겨온 전통적인 조·중 친선은 앞으로 더욱 개화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우리은행은 지난 5월 남북금융경제협력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4·27 남북 정상회담 직후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대북제재가 완화되고 남북 경협이 재개되면 어떤 사업을 하는 게 좋을지 내부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TF는 불과 3개월간 운영되다가 종료됐고 현재는 이름만 남은 상태다. 이 관계자는 “새로운 이슈가 있으면 다시 모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고 계획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7월 북한 전문가 채용 공고를 냈다. 남북 경협이나 북한 금융 인프라를 연구할 석·박사 학위 소유자가 채용 대상이었다. 이 은행은 은행 내에 북한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채용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단 한 명도 뽑지 못했다. 은행 관계자는 “채용을 계속 진행해야 할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대북제재를 준수하라”는 내용의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정보국(TFI) 전화를 받았던 국내 은행 7곳이 몸을 바싹 낮추고 있다. 자칫 미국에 찍혀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제3자 제재)’ 대상에 이름이 오르내릴까 우려해 내부적으로 준비·검토해 오던 ‘대북 금융 프로젝트’에서 잇따라 손을 떼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아니 땐 굴뚝에서 난 연기’를 본 것만은 아니었다. 국내 은행들은 남북 화해 무드를 계기로 남북 경협에 대한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은행마다 관련 전담팀을 만들었고 대북 금융 관련 조직을 정비했다. 물론 100%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향후 대북제재가 완화되면 바로 (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한 측면도 있지만, 정부의 코드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느라 형식적으로 동참한 은행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국 정부 눈치를 봤던 은행권은 이제 미국 눈치를 살피느라 전전긍긍이다. 개성공단 지점을 운영했던 우리은행 관계자는 “개성 지점은 개성공단 폐쇄 이후 휴점 상태”라며 “본사 1층에 있는 개성공단 임시영업점도 형식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금강산 지점 재개점과 수익의 일부를 통일기금에 기부하는 상품 개발을 검토 중이던 NH농협은행은 “말 그대로 검토 수준에 불과했다”며 발을 뺐다.

앞다퉈 남북 경협 관련 조직을 신설했던 은행들도 이제는 “스터디 그룹이나 동호회 수준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7월 ‘남북경협 랩(LAB)’을 만든 신한은행 관계자는 “상주 인원 2명이 스터디를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남북경협지원위원회를 설치한 IBK기업은행 측은 “단 두 번 회의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3차 남북 정상회담 때 이동걸 회장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해 주목을 받은 KDB산업은행 측은 “대북제재를 고려해 계획은 했지만 실행은 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은행권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파산을 각오하지 않는 한 국내 은행들이 대북제재를 위반할 일도 없지만, 향후 대북제재 완화를 염두에 두고 내부적으로 준비하는 것까지 미국 눈치를 봐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북 경협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던 은행들이 이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납작 엎드려야 하는 처지가 된 걸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정부에도 아쉬운 게 있다. 남북 경협 과정에서 무작정 속도만 낼 것이 아니라 은행이나 다른 기업들이 오해받지 않도록 세밀하게 일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윤·정용환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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