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한국에선 진실 말해도 법에 저촉된다?

입력 2018. 11. 6. 03:00 수정 2018. 11. 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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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대부분 국가에서는 누군가 자신에 대해 악의적으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써서 자신의 평판이 훼손됐다고 느끼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 수 있다. 국가와 국가원수, 정부 고위관리들의 명예를 훼손하면 법에 저촉되는 국가도 있다. 한국에서는 형사상 명예훼손이 법에 저촉된다. 누구나 신고하면 검찰이 명예훼손과 관련해 조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는 거짓된 내용으로 명예를 훼손할 때만 범죄에 해당되는데 한국에서는 특이하게도 사실이라도 명예를 훼손한다면 기소될 수 있다.

나에게 가장 놀라운 점은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죄로 기소될 수 있다는 점이다. 외국에서는 ‘진실’을 말했다는 점이 스스로 명예훼손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기반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을 말해도 한국에서 형사상 명예훼손죄가 적용될 수 없는 유일한 경우는 오로지 ‘공공의 이익’과 관련됐을 때다. 여기서 핵심이자 증명하기 어려운 단어는 ‘오로지’다. 왜냐하면 공공의 이익에 자신의 이익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법은 간혹 정부가 비판을 막거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때 이용되기도 한다.

나는 지난주 한국의 명예훼손죄에 관한 토론회에서 진행을 맡았다. 토론회는 명예훼손죄와 관련해서 학술과 개인적인 경험의 측면으로 나눠 패널을 구성했다. 패널 중 한 명은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사이며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강하게 비판해온 인물이다. 불균형적인 민사 피해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는다. 사고로 가족이 숨졌을 때 보통 유족 보상은 8000만 원에 불과하다. 반면 명예훼손이나 이에 따른 사업상 피해의 손해배상 청구는 이보다 훨씬 높은 금액의 보상이 이뤄진다. 또 다른 패널은 영국 언론인 출신인 마이클 브린이다. 그는 영자신문에 썼던 풍자 칼럼 때문에 S사로부터 명예훼손으로 10억 원의 형사와 민사 소송을 당했다. 토론회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주재 외신 기자와 학자들이었다. 외신 기자들은 ‘사실’ 언급만으로는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명예훼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 명예훼손죄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명예훼손죄는 일제강점기 시작됐으며 일본이 독일법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했다. 일본에도 현재 명예훼손 관련 법이 있지만 거의 처벌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연간 형사상 명예훼손죄 2000건, 모욕죄 1만 건이 기소된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형사상 명예훼손죄로 수감되는 사람은 한국이 가장 많다고 했다.

브린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칼럼은 풍자적인 의도로 썼다고 검찰에서 설명했단다. 하지만 검사는 풍자적인 글이 아니라고 판단해 기소했다. 브린은 스스로 변호하기로 결심하고 외신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S사는 결국 민사상 고소를 취하했고 판사는 형사상 기소를 기각했다. 풍자적인 칼럼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를 당했지만 다행히도 피해보상과 벌금 등의 조치는 내려지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대학에서 성폭행 피해자를 도왔다는 한 참가자는 성범죄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수도 있는지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박 교수는 전에는 그런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현재는 ‘미투 운동’으로 재발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시대적이며 억압적인 법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당당하게 진실을 말해서 이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나친 자기검열은 공개토론과 언론보도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2015년 유엔 인권위원회는 한국의 명예훼손법을 수정 또는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변함이 없다. 수정안이 나왔으나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아마 정치인과 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형사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가장 많이 이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낡은 형사상 명예훼손과 모욕 관련법이 고쳐졌으면 한다. 한국 민주주의에 약점인 것 같다. 한국 체제가 표현의 자유를 버틸 수 있게 충분히 탄탄하고 성숙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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