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베트남 여행자·교민 위협하는 유사 마약 해피벌룬

베트남 호찌민=송응철 기자 입력 2018.11.07. 14:00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HAPPY? '해'롭고 '피'해야 하는 해피벌룬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과 교민들이 ‘해피벌룬’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유사 마약으로 분류되는 해피벌룬은 흡입 시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고, 심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위험물질이다. 그럼에도 해피벌룬은 현재 베트남에서 일종의 문화 내지는 관광상품 정도로 여겨지며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 호찌민 현지에서 해피벌룬의 실태를 취재했다. 

베트남 호찌민 여행자 거리에 자리한 한 업소에서 유사 마약인 해피벌룬을 판매하는 모습 ⓒ 시사저널 송응철



해피벌룬, 여행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

해피벌룬은 베트남에서 ‘봉끄이(Bong Cuoi)’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웃음풍선이라는 의미다. 베트남 내 해피벌룬의 역사는 길지 않다. 2013년 하노이의 한 가라오케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베트남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전국에 유행처럼 번졌다. 현재는 하노이·호찌민·다낭 등 대도시나 관광지에서 해피벌룬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호찌민에서 해피벌룬을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지역은 ‘부이비엔’이다. 여행자의 발길이 많아 ‘여행자 거리’로 통하는 곳이다. 낮에는 텅 빈 거리지만 밤이 되면 180도 변한다. 길거리는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뤘고,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이곳이 가득 채워졌다.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거리 양쪽으로 즐비한 술집에선 성인 몸통만 한 해피벌룬을 끌어안고 있는 이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연신 풍선을 불어댔다. 해피벌룬의 내용물은 아산화질소(Nitrous Oxide·N2O)다. 정신과나 치과 등 병원에서 마취제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다만 최근 효과적인 마약류 진통제와 정맥마취제가 보급되면서 사용이 감소하는 추세다. 정작 의료용보다는 쾌락을 위한 유사 마약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마취와 환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아산화질소의 또 다른 이름이 웃음가스(laughing gas)인 이유다.

거리의 모든 업소가 해피벌룬을 취급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해피벌룬을 판매하는 업소는 어렵지 않게 가려낼 수 있었다. 입간판에 풍선을 매달아 놓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다니며 확인한 결과, 해피벌룬의 가격은 비교적 저렴했다. 한화로 5000원 정도였다. 호찌민 내 다른 지역에서는 더욱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한 대기업 주재원은 “여행자 거리는 주로 외국인을 상대로 영업을 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며 “다른 곳에서는 한화로 1000원에서 3000원 정도에 해피벌룬을 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해피벌룬의 인기는 대단했다. 술집 내부에서는 풍선에 가스를 채워 넣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이런 가운데 젊은 한국인 커플이 해피벌룬을 주문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해피벌룬을 처음 접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종업원에게 이용법을 물었다. 그러자 종업원은 손짓 발짓을 동원해 설명했다. 가스를 천천히 들이마신 뒤 다시 풍선 안으로 불어넣는 식으로 흡입하라는 취지였다. 이들에게 해피벌룬에 대한 감상을 묻자 만취한 기분에 비유했다. 10~20초 동안 정신이 몽롱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한 쾌감은 없지만 편안하고 꽤 괜찮은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이곳 업소들은 해피벌룬에 대한 당국의 단속 우려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종업원들은 양손 가득 해피벌룬을 들고 다니며 여행객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실제, 현재 베트남에는 해피벌룬을 제재할 아무런 법적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이런 장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니 종업원이 다가와 해피벌룬 구매 의사를 물어왔다. 건강에 해롭지 않냐고 질문하자 ‘전혀 문제없다. 괜찮다’며 기자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종업원의 설명과 달리 아산화질소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오남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체내 산소 농도가 떨어져 질식·호흡곤란·기억상실 등과 이로 인한 2차 외상이 발생할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 아산화질소에 노출되면 비타민B12결핍증·말초신경병증·척수병증 등이 발병할 수도 있다. 피해망상이나 환청 등 정신증 증상도 나타날 수 있고, 심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실제 지난 9월 하노이에서 열린 음악축제에서도 해피벌룬 과용으로 20대 7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벌어졌다.

그럼에도 여행객들은 아산화질소의 위험성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눈치였다. 해피벌룬을 구매한 한국인 관광객들은 대체적으로 ‘건강에는 크게 문제 될 것 없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현재 한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선 해피벌룬이 일종의 문화체험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베트남에서 해피벌룬을 불고 있는 ‘인증샷’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일부 현지 여행사들은 해피벌룬을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한국인 여행객들이 유사 마약에 노출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으면서 외교부는 올해 3월 해피벌룬에 대한 주의보를 내리기도 했다.

해피벌룬에 노출된 것은 여행객뿐만이 아니다. 교민사회에서도 해피벌룬은 골칫거리다. 호찌민 한인타운인 푸미흥에 들어서자 해피벌룬 판매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술집뿐 아니라 청소년들의 접근이 용이한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도 해피벌룬을 판매한다는 데 있다. 최근엔 한국인이 운영하는 PC방에서 해피벌룬을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교민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호찌민시한국국제학교는 지난 9월 가정통신문을 통해 각 가정에 해피벌룬에 대한 주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학교 측은 학생이 해피벌룬을 흡입하거나 판매 장소에 출입할 경우 중징계를 내리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건강에 치명타는 물론 법적 처벌 가능성도

해피벌룬을 흡입하는 행위는 건강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뿐 아니라 법적 처벌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그동안 대학가나 이태원 등 유흥가를 중심으로 해피벌룬이 성행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화학물질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됨에 따라 아산화질소를 환각물질로 지정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그해 4월 해피벌룬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한 데 따른 결과다. 현재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산화질소를 흡입하거나 흡입 목적으로 소지·판매·제공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호찌민 총영사관 관계자는 “한국인이 해외에서 해피벌룬을 흡입했더라도 속인주의(屬人主義) 원칙에 따라 국내법으로 처벌받게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