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릴수록 커지는 정치의 역설?".. 임종석과 이재명도 적용될까 [박태훈의 스토리 뉴스]

박태훈 입력 2018. 11. 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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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매'의 역설
19세기 조선 풍속화 ‘곤장’. 기산 김준곤 작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인물은 여권에서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재명 경기지사이 꼽힌다. 야권의 경우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 정도가 거론된다.

임 실장은 선글라스 논란으로 야당으로부터 뭇매를 맞았지만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지적처럼 야당이 밀어주는 바람에 '여권의 대통령후보군'으로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 2일 "손학규라고 하는 정치 거인이, 김성태라고 하는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임종석 실장을 때림으로 인해서 임종석 실장은 더 컸다"고 촌평하기도 했다.

이 지사의 경우 배우 김부선씨 스캔들 의혹 등 이런 저런 일로 야권은 물론이고 여권 일부로부터도 비판받았다. 그럼에도 이 지사는 진보진영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2위까지 올라섰다.

이 의원은 스스로 논쟁거리를 제공, 여당과 진보층으로부터 욕을 ‘한 바가지’가 아니라 여러 바가지 얻어 먹었지만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는데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개개인의 능력 덕도 있겠지만 정치계 역설인 '매 맞으면 맞을 수록 큰다'라는 말 때문으로 보인다. 

2006년 MBC 100분토론에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 제공
◆“맞으면서 크는 거목” 노무현 전 대통령

‘맞을수록 커진다’는 정치계의 역설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정치인으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꼽힌다.

5공청문회 스타, 해양수산부 장관 등으로 주목받았지만 당선된 2002년 대선 전까지는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 더 나아가 대통령까지 될 것으로 본 이는 드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거침없는 화법으로 상대의 도발을 유도했고 맞장토론을 주저하지 않았다. 특유의 원칙을 고수하며 피해갈 수도 있었던 비난, 비아냥, 뒷말까지 피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를 '노이즈 마케팅'이라 폄훼하기도 했지만 '때릴 수록 상대는 지치고 맞을 수록 나는 커진다'라는 정치판 속성을 잘 보여줬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대통령 재임 내내 엄청난 공격에 시달렸던 노 전 대통령은 "시끄러운 소리가 많이 나는 것은 대통령이 열심히 일한 때문"이라며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고 응수했다.

역대 대통령 중 논쟁거리에 가장 많이 뛰어들었던 노 전 대통령은 맞은 상처만큼 단단한 지지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홍보영상 중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시절 모습. SBS캡처
◆같은 값이면 ‘매’도 먼저 맞아야...안희정과 이광재

노 전 대통령 시절 안희정 전 충남지자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며 최측근으로 꼽혔다. 이들 모두 노무현 캠프에서 대선자금을 관리했고 그 일로 옥살이까지 한 친노 핵심이었다.

비슷한 이력의 두 사람이지만 안희정 전 지사가 미투 이전까진 진보진영 차세대 선두주자로 각광받은 반면 이광재 전 지사는 존재감을 상실했다.

안 전 지사가 매를 먼저 맞았기 때문이다. 안 지사는 2004년 불법대선자금 사건과 '나라종금'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1400만원을 확정받았다. 이 일로 피선거권이 5년간 제한됐다. 안희정에게 늘 미안했던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8·15 특사로 그를 복권시켰다.

반면 이 전 지사는 2011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강원도지사직을 박탈당했다. 그 사이 매를 먼저 맞았던 안 전 지사는 거물로 성장하기도 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 뒤를 어슬렁 거리고 있는 공화당 트럼프 후보.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자신을 논쟁 중심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힐러리는 이메일 거짓말에 발목 잡히고 말았다. AP
◆“정치인은 부음 기사빼고는 어떤 기사도 좋다”

권력은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소통하지 않으면 지지층과 분리되고 자신의 이름이 지워진다. 그러면에서 정치인들의 노이즈 마케팅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정치인은 부음 외에는 어떤 보도도 좋다”는 경험칙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언주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 모두 긍정적인 뉴스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각종 보도가 쏟아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소득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이를 자양분 삼아 더 큰 나무로 성장할 지는 앞으로 그들이 풀여야 할 과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도 "난 막말한 적 없다. 상대방이 그런 프레임을 씌웠을 뿐이다"고 했지만, 일정 부문 ‘센 말’의 덕을 본 것도 사실이다.

물론 맞으면 크는 게 정치라지만 맞지 말아야할 ‘매’도 있다. 도덕적 문제나 거짓말 등 양심 문제로 얻어 맞는다면 끝장이다. 안 전 지사는 ‘미투’ 바람에 천길 낭떠러리로 떨어졌다. 

◆트럼프, 적과 아군 모두 '트럼프' 외치게 해

미국 정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맞으면 맞을수록 좋다’는 역설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입증한 인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꼽히기도 한다.

아무리 뜯어봐도 정치적 자질이 없어보이고 무례하고 저질로까지 보였던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을 물리치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대통령 선거 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미국 정치판은 좋든 싫든 트럼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 한명을 놓고 이렇게 편이 갈리고, 대통령 말 한마디에 환호와 분노가 동시에 집중된 적은 결코 없었다.

영리한 트럼프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정치 어젠다(논쟁거리, 주제)와 관련해선 트럼프만을 외치게 만들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혀 다 잡았던 대통령 자리를 놓쳤다. 국무장관 재직시 주고받았던 모든 이메일을 퇴임 때 국가에 모두 제출했다고 말했으나 일부 삭제해 제출했거나 개인 서버에 남겨둔 것이 발견돼 '거짓말 했다'라는 비난을 받았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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