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 포비아' 조장?..라돈아이 측정값 믿어야 하나 [더(The)친절한 기자들]

이유진 2018. 11. 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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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더(The)친절한기자들]
소비자가 한 검사는 못 믿겠다?
'라돈 온수매트' 파동에 숨겨진 장면들
"간이 측정기 한계"vs"경고로서 의미있어"
전문가 의견 엇갈려.."정확한 사용법 알려야"
5월30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라돈침대 관련 환경보건시민센터 3차 기자회견에서 한 관계자가 시중에서 판매되는 중국산 게르마늄 라텍스 침대에서 측정된 방사능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고객님~ 가정용 (라돈 아이) 제품은 정확도가 떨어져요. 저희가 자체 측정한 결과 아무 문제 없으니 안심하고 쓰세요.”

올 9월27일 대전에 사는 김아무개(38)씨는 온수 매트 판매업체 ‘하이젠’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6일 전 온수 매트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는 김씨의 말에 상담사는 소비자들이 쓰는 휴대용 라돈 측정기 ‘라돈 아이’는 정밀성이 떨어진다는 말만 계속했다. 상담사는 김씨에게 업체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자체 시험 성적표를 참고하라고 ‘안내’했다. 온수 매트의 로트 번호(생산일과 유통기간 정보를 담은 번호) 등을 묻는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김씨는 “하다못해 ‘음식에서 벌레가 나와도 제품을 가져가서 살펴보지 않냐’고까지 말했지만 당시 상담사는 안심하고 쓰라는 말만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올 1월 ‘하이젠’ 온수매트(MIV-01102)를 산 윤아무개(28)씨의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자택에서 6일 진행한 ‘라돈 아이’ 측정 결과. 매트에 전원을 넣기 전인 오후 5시45분 2.08피코큐리였던 실내 라돈 수치는 저녁 6시45분 8.26피코큐리를 기록했고 전원을 넣자 12.6피코큐리(밤 8시28분)까지 올랐다. 사진 장예지 기자

김씨는 2017년 9월 한 소셜커머스 업체에서 ‘하이젠’ 온수 매트(모델명 MCT-01SW-G) 2개를 각각 5만8560원씩 주고 샀다. 고등학교 1학년인 큰 아이와 둘째 아이에게 하나씩 깔아주기 위해서였다. 온수 매트에는 ‘음이온층’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씨는 “온수 매트를 사용한 뒤부터 큰 아이가 이불 빨래를 해야 할 정도로 코피가 났고 숨이 넘어가게 기침을 했다”고 주장했다.

흔히 시장에서는 모나자이트라는 희토류 광석을 가루 형태로 만든 것을 ‘음이온 파우더’라고 부른다. 모나자이트 안에는 미량의 우라늄과 토륨이 들어 있는데, 이 함량이 높을 경우 폐암을 유발하는 방사성 기체인 라돈이 대량으로 발생한다. 올 5월 대량 리콜 사태를 부른 대진 침대 매트리스에도 모나자이트가 함유되어 있었다. 김씨 역시 이런 사실을 뉴스를 통해 알고 있던 터였다.

대전에 사는 김아무개씨가 샀던 ‘하이젠’ 온수매트 모델. 사진 김씨 제공

9월21일 김씨는 ‘라돈 아이’를 빌려 측정에 나섰다. 이불을 걷어낸 온수매트 2개 위에 ‘라돈 아이’를 올렸다. 이내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경고음이 울렸다. 1시간쯤 지난 뒤 액정에는 15.9pCi/L(피코큐리)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큰 아이가 쓰던 매트였다. 매트를 들고 방 4곳을 돌아가며 여러 차례 측정을 해봤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실내공기질 관리법은 실내 라돈 농도를 148Bq/㎥(베크렐) 이하로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1피코큐리가 37베크렐이므로 15.9피코큐리는 588.3베크렐이어서 권고 기준의 4배에 가까운 수치다. 전문가들은 “라돈 농도 8피코큐리는 하루 담배 한 갑 정도를 피우는 흡연자의 폐암 발생 위험도 수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씨보다 더 높은 수치의 라돈이 검출됐지만 아예 고객센터와 연결조차 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김씨와 비슷한 시기(2017년 가을)에 ‘하이젠’ 온수매트를 구매했던 이아무개(36)씨는 10월1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온수매트 라돈 검출’ 게시글을 보고 자신이 살던 서울 성동구 주민센터를 찾아가 ‘라돈 아이’를 빌렸다. 이씨는 매트 바로 위, 매트에서 5㎝ 떨어뜨린 위치에 각각 ‘라돈 아이’를 올리고 거실과 방에서 각각 측정해봤다. 이씨는 “2시간 뒤 수치를 보니 매트 바로 위에서는 17~18피코큐리가 검출됐고, 5㎝ 떨어뜨린 위치에서는 5피코큐리가 나왔다. 혹시나 해서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측정해보니 2피코큐리 이내였다”고 말했다. 놀란 마음에 다음날(10월13일)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토요일이라 그런가 싶어 월요일(10월15일)에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에는 “담당자가 휴가”라며 연락이 되질 않았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이씨는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에도 5~6차례 전화했지만 ‘통화 중’이라며 받질 않았다”고 답답했던 마음을 털어놨다.

직접 ‘라돈 아이’로 위험을 측정한 시민들의 민원에도 꿈쩍 않던 ‘온수 매트 라돈 검출’ 논란은 지난 5일 뜻밖의 전개를 맞이했다. ‘하이젠’이 업체 누리집에 공지를 띄워 “고객 가운데 라돈과 관련하여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들에게는 기존 매트를 (음이온층이 없는) 신규 매트로 교환해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같은 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하이젠 온수 매트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김씨를 비롯한 ‘하이젠’ 소비자들이 출연한 문화방송(MBC) ‘생방송 오늘 아침’ 프로그램이 결정타였다. 방송에 출연한 한 소비자는 직접 ‘라돈 아이’를 사서 측정해본 결과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돼 업체에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자체 측정 결과 정상 수치”라는 말만 들었다며 “진짜 사장 코에다가 매트를 대고, 건강에 좋으면 당신이 맡고 자라고 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업체 쪽이 ‘라돈 아이’를 무조건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자 자비를 들여 한 사설업체에 온수 매트 라돈 농도 측정을 의뢰하기까지 했다. 결과는 1520베크렐. 앞서 ‘라돈 아이’ 측정값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이젠’ 공식 누리집. 알엔테크 핑크/그린 측정시험 결과표와 교환 매트 측정시험 결과표가 올라와 있는 공지사항 게시판을 제외한 나머지 는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다. 누리집 갈무리

이런 내용이 방송을 타고 나가자 여론이 들끓었다. 5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하이젠’, ‘하이젠 온수 매트’가 등장했고 ‘하이젠’ 소비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는 5일 밤에만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대화방에 들어온 한 소비자는 “방송에 나온 것처럼 우리 가족도 기침, 가래, 폐렴 등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2966베크렐, 즉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라돈이 검출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당장 온수 매트 위에 올려두고 쓴 이불은 따뜻한 물에 빨아줘야 한다”는 조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쁘게 지나가는 대화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건 “라돈 아이 빌려준다”는 제안과 “라돈 아이 빌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수치가 낮아서 안심하고 쓰든, 수치가 높아서 매트를 치워버리든 하루라도 빨리 불안감을 털어버리고 싶은 시민들은 ‘라돈 아이’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김씨는 ‘하이젠’이 올린 ‘교환 공지’에 대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이젠’은 제품을 교환해주겠다고 하면서도 “라돈전문 시험기관인 ‘알앤테크’의 시험결과를 공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쓰면서 여전히 ‘라돈 아이’ 측정값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씨는 “제품에 문제는 없지만 도의적 책임만 지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정말 ‘라돈 아이’ 측정값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일까? 시민들의 ‘과도한 라돈 포비아’라는 일부의 지적은 합당할까? 먼저 ‘하이젠’ 회사 쪽이 시험을 의뢰한 ‘알엔테크’ 박영웅 대표에게 물어봤다. 박 대표는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가 측정한) 하이젠 온수 매트의 연간 피폭선량은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상 가공제품 안전기준인 1mSv(밀리시버트) 이하인 0.67mSv”이라며 “인체에 유해한 건 아니냐”는 질문에 “(유해성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이젠’을 만든 대현하이텍의 한 관계자 역시 “라돈 아이는 간이측정기”라는 점만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라돈 아이가 없는 라돈을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며 ‘일차적인 스크리닝(검사) 기구’로서는 가치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재기 한양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6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라돈 아이가 라돈(RN-222)과 토론(RN-220)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순히 라돈 가스만 측정하는 탓에 과학적 정확성은 아무래도 떨어진다”면서도 “수치의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데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내 공기 측정용인 라돈 아이를 매트나 침대 위에 올려 측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결국 중요한 건 소비자가 호흡하는 위치에서의 공기 중 라돈 농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라돈 아이’ 개발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 조승연 연세대 교수(환경공학부)는 “‘라돈 아이의 신뢰성 여부를 따질 게 아니라 소비자들이 정확하게 쓸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한번 높은 수치의 라돈을 측정한 라돈 아이에는 라돈이 붕괴하며 나온 자손 핵종이 붙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땐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측정하면 된다”며 “라돈 아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결국 “전문기관에 맡기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과)는 라돈 아이가 라돈과 토론을 구분하지 못하고 공기펌프가 없는 한계 등을 들며 특히 “토론은 라돈보다 위해도가 훨씬 낮은 방사성 물질인데 이것이 구분이 안 되면서 위해도가 과도하게 나온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라돈 아이를 ‘문방구에서 파는 30㎝ 자’로 비유했다. 주 교수는 “이 자로 머리카락 굵기는 잴 수 없는 것처럼 휴대용 측정기가 아닌 여러 종류의 방사선 특성에 적합한 계측기와 측정 방법을 적용했을 때 정확한 라돈 수치를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주 교수도 소비자들이 ‘라돈 아이’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라돈 아이의 특성을 판매업체에서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안위는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실험 결과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1일 김씨의 제보를 받고 <한겨레>가 문의했을 때 원안위는 “라돈 아이로 측정해 기준치 이상이 나왔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업체가 어디에 의뢰해 실험했든 상관없이 해당 제품에 대해 분석을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전에 사는 김아무개씨가 6일 원안위로부터 받은 답변 내용. 사진 김씨 제공

하지만 이는 원론적인 입장 표명일 뿐 시민들은 ‘제보를 해달라’고만 하는 원안위의 태도에 분통을 터뜨린다. 김씨가 국민신문고에 ‘온수 매트 라돈을 조사해달라’고 민원을 넣은 건 10월12~14일께. 해당 민원은 경찰청과 한국소비자원, 국민권익위원회를 거쳐 원안위로 전달됐으나 10월25일로 정해져 있던 처리 기한은 다시 5일로 미뤄졌다. 방송이 나온 바로 그날이다. 그러자 6일 마침내 원안위에서 답변이 왔다. 최근 ‘생활방사선 안전센터’를 열었으니 그곳으로 다시 접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원안위는 5일 “10월 말에 인지를 하고 현재 조사 진행 중”이라고 밝혔지만, <한겨레> 취재 결과 김씨 등이 사용한 2018년 이전 생산된 제품은 아직 확보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성진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국장은 “원안위가 이 사태에 대한 심각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 사무국장은 “인력부족이라고 핑계만 대고 자신들이 놓친 부분이 있어도 다 이해해달라는 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소비자 신고는 경고음”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도 “방사선 안전의 기본 원칙은 불필요한 방사선 피폭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설사 기준치 미만이라도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장예지 전광준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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