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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인심 후했던 '고시원'..'비와서 공친 날' 사망자 많았다

윤민혁 기자 입력 2018.11.09. 15:00 수정 2018.11.09. 16:37

월세 27만원, 1.7평 고시원
입주자 대부분 40~70대 일용직 근로자
7가지 ‘뷔페식’ 식사로 인기
"비 와서 공치는 날…피해 더 컸다"

9일 오전 4시 45분쯤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303호에 거주하는 일용직 근로자 김모(59)씨는 "우당탕탕"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두 명이 나란히 걷기도 힘든 협소한 고시원 복도에서 매캐한 냄새가 났다. 그 너머로 시뻘건 불꽃이 보였다.

김씨는 계단으로 대피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창문으로 몸을 빼냈다. 빗물에 젖은 파이프를 양손으로 꽉 잡고 외벽으로 대피했다. 탈출에 성공한 그는 함께 일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일 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불로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는 사실은 몇 시간 뒤에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

국일고시원 내부 모습. 입주자들은 “복도가 좁아서 남성 2명이 동시에 지나가기도 힘들다”고 했다. /고시원넷 캡처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종로 국일고시원 입주자들은 김씨처럼 대부분이 일용직 근로자였다. 입주자들은 "‘고시원’이지만 시험 공부하는 학생은 못 봤다"고 했다. 소방관계자는 "(국일)고시원 입주자 대부분은 40~60대 일용직 근로자"라고 말했다.

◇대부분 일용직 근로자 "일감 없는 비오는 날이라 피해 컸다"
"숨은 진주와 같은 고시원." 인터넷에서 고시원은 이렇게 소개되고 있었다. 도심에 가까운 위치, 월 27만~38만원인 저렴한 방값이 장점으로 거론됐다. 건물은 1983년 지어졌다. ‘고시원’이라 이름 붙은 숙소는 2~3층을 사용했다.
두 층의 총 넓이는 282㎡(85평)로, 52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은 구조다. 2층은 ‘여성층’, 3층은 ‘남성층’으로 구별해서 썼다. 화재 당시 고시원 입주자는 50여명이었다. 1인당 1.7평의 공간을 쓴 것이다.

9일 새벽 소방대원들이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김우영 기자

고시원 입주자들은 전입신고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오래 머물지 않는 까닭이다. 이로 인해 소방당국은 현재 사망자 신원 확인에 애를 먹고 있다. 7명의 사망자들은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신촌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등으로 옮겨졌다. 병원 관계자는 "고시원·쪽방촌 화재의 경우, 피해자들이 가족들과 왕래를 끊은 경우가 많아 신원 확인이 힘들다"고 전했다.

가벼운 부상을 입은 일부 고시원 입주자들은 간단한 치료만 받고 서둘러 퇴원했다. 인근 주민은 "고시원 입주자 대부분은 일당 12만~13만원으로 그날 벌어서 그날 먹고 사는 건설현장 노동자"라면서 "보통은 (일 나가기 위해서)새벽 4시 30분에는 일어나는데 오늘은 비가 내려서 일을 안 나가고 다들 곯아떨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7가지 반찬 ‘뷔페식’ 식사로 인기
일용직 근로자들 사이에서 국일고시원은 인기가 높은 편이었다. 하루에 7가지 찬을 제공하는 ‘뷔페식’ 덕분이다. 입주자들은 원하는 만큼 덜어 먹을 수 있었다. 취사도 가능했다. 공동 주방에는 ‘화재 걱정이 없는 전기레인지(인덕션)’가 마련되어 있었다.

서울 지하 1·2호선 역세권이라, 입주자들이 종로3가나 서울역 주변 인력사무소에 가서 일을 따기에도 좋았다. 청계천 변에 자리해서, 여타 고시원과는 달리 큼지막한 창문을 내기도 했다. 3층에서 탈출한 거주자 대다수는 이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일고시원은 밥·김치·국 등 7가지 반찬을 ‘뷔페식’으로 제공해왔다. 국일고시원의 반찬 냉장고 모습. /고시원넷

발화장소로 지목된 고시원 301호 거주자 A(72)씨는 소방당국에 "전열기에서 불이 나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옷가지·이불로 끄려고 했지만, 불이 주변으로 순식간에 번졌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오는 10일 오전 10시부터 정확한 화재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현장감식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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