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고시원 화재 62살 이씨에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2018. 11. 10. 12: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희생자 가족 "막노동·비정규직 일하던 아들, 저축하려고 고시원 거주"
경찰·소방·국과수 등 10일 오전 합동현장감식
"화재 원인 규명에 주력..결과는 3주 뒤에"
종로구청은 "국일고시원 피해 주민들 거주비 지원 예정"

[한겨레]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가 일어난 지 이틀째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 앞에 국화꽃이 놓여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9일 밤 10시께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조아무개씨는 차오르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다. 조씨는 이날 새벽 발생한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로 세 아들 중 큰아들(35)을 잃었다. 아버지 조씨는 “부모를 잘못 만나 험난한 세상에서 고생만 한 큰아들을 가슴에 묻게 됐다”며 통곡했다.

조씨는 “전라도가 고향인 아들이 8년 전 서울에 올라와 줄곧 고시원에서 혼자서 살았다”고 말했다.

“막노동을 하다가 최근에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어요. 생활비를 아끼고 돈을 모으려고 고시원에 살았죠. 전에 살았던 곳도 고시원이었는데, 개발 지역이 되어서 거처를 옮긴 곳이 이곳 국일고시원인 것 같아요. 돈이 많으면 어디 아파트를 한 채 사준다든지, 어디 전세를 해준다든지 (했을 텐데)… 저 먹고살기도 힘들어요. 우리 아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한 거고, 발버둥을 친 애예요.”

조씨는 아들의 사고 소식을 처남을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아들 직장에서 처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출근을 안 했다고. 처남이 서울에서 큰불이 났다는 소식까지 함께 전해 줘서 알아보니 아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요.”

조씨는 사고 전날 밤 아들과 통화한 내용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이제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하자 수줍어했어요. 평소에도 착실하고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아들이었는데…. 추석 때 본 모습이 마지막이었어요. ‘너 먹고 싶은 거 있냐’ 물었다가 농담으로 ‘니가 아빠를 사줘야지’ 하니까 ‘네, 아빠 사줄게요’ 해서 같이 냉면 물국수 먹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조씨는 마지막 당부도 잊지 않았다. “오죽하면 고시원에서 살겠습니까. 생활이 넉넉지 못하니까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학생들도 절약하려고 고시원에서 생활할 겁니다. 부디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어느 고시원이든지 방화시설 잘되어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죠.”

이번에 불이 난 국일고시원은 주로 40~70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일상에 시달리며 살았던 듯 생존자 여러 명에게 사망자들 신원에 관해 물어봤지만 일제히 “서로 전혀 모른다. 얼굴밖에 모른다”는 답만 돌아왔다. 따로 사는 가족들이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현실을 보여주듯 또 다른 희생자 이아무개(62)씨에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빈소도 차려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씨의 누나가 화재 사고 당일 오후 5시께 경찰 조사를 받고 갔다”고 했지만, 이씨의 주검이 안치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는 찾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10일 저녁 병원 쪽은 “이날 오전 부검을 마친 이후에도 가족과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고 찾아오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고 했다.

고대안암병원에 시신이 안치된 장아무개(72)씨도 가족들이 장례를 원하지 않아 바로 시신을 화장하기로 했다. 서울백병원에 안치된 양아무개(57)씨 장씨처럼 빈소를 차리지 않고 시신을 화장하기로 했다.

숨을 거둔 7명 가운데 빈소가 차려진 이는 35살 조씨와 김아무개(55)씨와 둘 뿐이었다. 김씨의 큰딸(32)은 “아빠는 원래 월세 65만원 오피스텔에 계셨는데 가족에게 말하지 않고 한달 전에 고시원으로 옮겼다고 들었다”며 “TV에서 고시원 화재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아빠가 거기 계실 줄 몰랐다”고 말했다.

한편,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이틀째인 10일 오전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관계 당국의 합동 감식이 시작됐다. 이날 오전 10시10분부터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 등은 전날 화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합동현장감식에 들어갔다. 서울 종로경찰서 조광현 형사과장은 “화재 현장을 발굴해 발화지점과 발화증거 찾기에 중점을 둘 것”이라며 “증거물은 국과수 감정을 의뢰할 예정이고 감식과 결과는 3주 뒤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종로구청 복지지원과는 이번 화재로 피해를 본 국일고시원 주민들을 이재민으로 보고 주거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종로구청은 “주민들이 이전에 살았던 곳과 비슷한 수준인 월 30만~40만원 선의 고시원에 최대 3달까지 머무를 수 있도록 주거비용을 지원할 예정”이라며 “국일고시원 근처의 고시원 8곳을 주민들의 임시 거처로 제시했고 다른 고시원도 선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청 쪽은 “부상자들도 회복되면 이재민으로 분류해 지원할 예정이고 주민들에게 직접 지원하지 않고 고시원 주인들에게 후불로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준희 전광준 장예지 기자 givenhappy@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