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의 3% 과세한다더니..EU '구글세' 부과 무산되나

심새롬 2018. 11. 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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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도입 목표로 프·영 주도 추진
마음 앞서지만..나라마다 입장 달라
세수 증대 효과 vs "법인세 낮춰야"
'도입 반대' 미국, 눈치보는 나라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공은 OECD로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등 거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 ‘디지털세(Digital Tax)’를 부과하려는 첫 글로벌 시도가 난항을 겪고 있다. 관련 논의가 불붙은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서다. 프랑스·영국 등 주요국들은 합의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독자 과세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논란이 커지는 양상이다.

디지털세는 국내에 ‘구글세(Google Tax)’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구글과 같은 다국적 ICT 기업들이 세계 각국에서 법인세를 내지 않고 막대한 이윤을 올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과 함께 등장했다. 실제 구글 등은 절세를 위해 세율이 낮은 지역을 조세회피처로 활용 중이다. 2000년대 중반 EU 국가들 사이에서 처음 구글세 개념이 나왔고, 10여 년이 지난 올해 EU가 본격 실행을 논의하고 있다.

자료: WSJ

지난 6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구글세 3% 부과방안’에 대한 찬반 투표가 진행됐다. 두 달 전 9월 회의에서 “구글세 징세안을 연내에 합의하자”고 의견을 모은 데 따른 후속 절차다. 당시 EU 의장국인 오스트리아의 하트비그 뢰거 재무장관은 “구체적이고 강도 높은 논의를 진행하겠다”며 강력 추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달 초 투표에서 덴마크와 아일랜드, 스웨덴, 몰타, 핀란드 등이 무더기로 반대 의견을 내 합의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

EU가 마련한 ‘3% 안’은 해당 기업의 자국 내 매출액 3%를 세율로 책정하자는 방안이다. 글로벌 연 매출이 7억5000만 유로(약 9600억원) 이상이거나 EU 내 매출이 5000만 유로(약 640억원)가 넘는 ICT 기업을 과세 대상으로 정했다. 이들이 온라인 광고 매출, 사용자 데이터 판매, 온라인 상거래 중개 등으로 발생하는 수입이 과세 매출에 포함된다. EU 집행위원회는 3% 안이 실행될 경우 150여개 기업에 최대 연 50억 유로(약 6조4000억원)를 거둬들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프랑스다. 외교 마지노선을 뜻하는 ‘레드라인(red line)’을 언급하며 올 연말에 반드시 과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구글세 도입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다. 브루노 르 마리 프랑스 재무장관은 6일 회의 직후 “(구글세 도입이 야기할) 기술적 문제는 다음 재무장관회의까지 해결할 수 있는 기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 언론(Zeit News Weekly)을 만나 “12월까지 독일 정부 설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영국 정부는 이미 의회에 구글세 도입 세부 방침을 보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은 지난달 29일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2020년부터 글로벌 매출액 5억 파운드(약 7400억원) 이상 기업에 2% 세율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절차를 밟고 있는 영국의 경우 국내 합의만을 거쳐 구글세를 시행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스페인, 오스트리아도 구글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는 나라다.

이들은 ‘공정한 시장’ 원칙을 내세워 구글세 도입을 주장한다. 해먼드 장관은 “디지털 플랫폼 업체들이 영국에서 상당한 이윤을 거두면서도 그와 관련된 세금을 이곳에 내지 않는 것은 명백히 지속할 수 있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 이면에는 적지 않은 세수 증대 효과가 있다. ‘3% 안’보다 완화한 기준인데도 영국 정부가 의회에 밝힌 예상 세수가 연간 4억 파운드(약 590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도 독일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조심스러운 태도다. 로이터통신은 7일 “독일 정부는 기업의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세계적으로 법인세율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새로운 세금을 만드는 대신 오히려 기존 세금을 낮추는 게 맞는다는 논리다. 법인세율을 12.5%까지 낮춰 글로벌 기업 본사를 유치해 온 아일랜드도 과세 확대를 반대한다. EU가 구글세를 일괄 도입할 경우 아일랜드는 오히려 ‘역차별’을 받아 비교 우위를 잃을 우려가 있다.

구글세 도입을 가로막는 ‘숨은 실세’는 미국이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EU 내에서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북유럽 국가들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본사가 있는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중국과 거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기업에 대한 세금 공격을 마냥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란 계산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의 일부 지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잠재적 보복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EU의 구글세 논의가 “미국 기술 기업을 겨냥한 일방적이고 불공정한 세금 제안”이라고 규정하는 발언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의 글로벌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기업활동의 자율성 침해 우려가 나온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미하 데사이(Mihir Desai) 교수는 “법인세를 낮춰야 할 시점에 디지털세를 요구하는 것은 포퓰리즘 수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본격 시행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EU 의장국인 오스트리아가 오는 12월 4일 다음 재무장관회의 때 합의 도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또 무산될 공산이 크다. 블룸버그통신은 “현재로써는 OECD에서 글로벌 해결책을 모색하는 편이 최선”이라는 크리스티안 젠슨 덴마크 재무장관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더 많은 국가가 논의에 참여해 합의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달 30일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구글세를 다룰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국제 기준 합의를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4일 김정홍 기재부 국제조세제도과장은 “OECD 등에서 장기대책을 마련하면 따라가겠다”고 밝혔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q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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