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근혜 경제민주화 공약 폐기하자 공정위, "대기업 지배구조 비공개 검토"

2018. 11. 12. 11: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청와대 '캐비닛 문건', 문을 열다⑤]
경제민주화·상법 개정 공약 걸고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
2013년 8월 대기업 총수 만나고 입법예고 법안 추진 중단
비판 여론 일자 공정위 '대기업 지배구조 현황' 비공개 검토
전성인 교수 "말도 안 되는 일, 청와대 외압 등 진상조사 필요"

[한겨레]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8월2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 회장단 오찬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후 법무부가 앞선 7월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 추진을 중단했다.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상법 개정 공약을 등을 폐기한 셈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가기록원에서 확보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 주관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 비서실장 주관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 자료 등 이른바 ‘캐비닛 문건’을 여러 건 입수했다. ‘캐비닛 문건’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청와대에 방치된 채로 발견된 이전 정부 문건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겨레>는 이재정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1000여건이 훌쩍 넘는 문서들을 분류하고 분석해 연속으로 보도한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 폐기로 비판 여론이 일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매년 발표한 대기업 지배구조 현황을 비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12일 확인됐다. 공정위가 청와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두려워 매년 해오던 업무를 중단하는 등 책임을 방기하려 한 셈이다. 공정위가 청와대 지시로 이런 검토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

<한겨레>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입수한 이른바 ‘캐비넷 문건’에는 공정위 기업집단과가 2013년 12월24일 작성한 ‘대기업 집단 지배구조 현황 공개 여부 검토’(공개 검토 문건)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문서에는 공정위가 매년 공개해왔던 ‘대기업 집단 지배구조 현황’(지배구조 현황)을 공개하는 방안과 하지 않는 방안의 영향력을 분석하는 내용이 담겼다. ‘공개 검토 문건’이 청와대에서 발견됐고, 내용 중에 ‘VIP’(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부처 건의안’ 등의 문구가 적힌 점을 볼 때 청와대 보고를 위한 문서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소액주주 등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이어 2013년 7월 법무부는 박 전 대통령의 공약과 같은 취지의 상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소액주주 사외이사 선임 시스템 마련과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전자투표’를 통해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모두 대기업 총수의 전횡을 견제하는 제도들이다.

하지만 8월28일 박 전 대통령이 10대 대기업 총수들과 간담회를 한 뒤 법무부의 상법 개정 추진은 ‘올스톱’된다. 대기업 총수들의 ‘상법 개정이 기업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는 ‘민원’이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이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이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박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꺾였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12월24일 작성된 ‘공개 검토 문건’은 ‘지배구조 현황’이 발표될 경우 비판이 더 거세질 것을 우려한 청와대가 공정위에 이를 발표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지시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개 검토 문건’에도 “당초 계획대로 발표하는 방안(1안)과 금년에는 발표하지 않는 방안(2안)의 파급효과를 비교하여 발표 여부를 정할 필요”가 있다며 문서 작성 배경을 밝히고 있다.

공정위는 '객관적 사실(Fact) 위주로 간략하게 발표'하는 1안을 선택할 경우 “사실 위주로 간략하게 발표하더라도 상법 개정 문제 관련 논란이 재점화될 우려는 상존”한다며 “현황 발표시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 여론 및 상법 개정 필요성이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작년 현황발표시 주요언론은 총수일가가 책임을 피하고 권한만 행사한다며 비판”했다는 참고 내용도 적었다. 더불어 “추후 입법예고안보다 완화된 상법 수정안 발표시, 지배구조 개선이 미흡함에도 재계를 의식해 개정안이 크게 후퇴했다며 비판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과가 박근혜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캐비넷 문건’.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금년(2013년)에는 미발표’하는 2안을 선택하기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공정위는 2안에 대해서 “뚜렷한 명분없이 미발표하는 경우 정부가 상법개정 논란을 의식해 발표하지 않았다며 비판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공정위가 매년 발표해 온 대기업 지배구조 관련 기본 현황을 감추려 하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며 “일부 언론은 지배구조현황 발표시점을 (이미) 문의”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부처 건의안은 1안으로 제시했다. 2안이 정부의 신뢰를 크게 낮추는 안이기 때문에 “당초 계획대로 지배구조현황을 발표하되, 발표내용 및 시점 조절을 통해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공정위는 ‘공개 검토 문건’이 작성된 이틀 뒤인 2013년 12월26일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했다. 2012년에는 9월27일 ‘지배구조 현황’이 공개된 점에 비취보면 3개월이나 뒤늦은 발표였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공정위가 청와대의 눈치를 보다가 발표 시기를 늦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공개 검토 문건’을 보면, 청와대 지시로 공정위가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하지 않는 방안까지 검토한 정황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법률에 근거해 매년 해오던 대기업 지배구조 현황을 비판 여론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법무부 소관인 상법 개정안 문제 때문에 공정위가 매년 하던 발표를 중단할 지 말지 검토하는 것 역시 매우 부적절하다. 공정위가 대기업 집단 지배구조를 담당하는 부서로 통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며 “청와대의 외압이 실제로 있었는 지 등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