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찬성 측도 "'양심적' 용어 바꿔야"

이동수 2018. 11. 1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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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찬성 측 "'종교적 병역거부' 용어는 NO"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이 점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갈 길은 멀다. 여론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서다. 지난 6월 헌법재판소의 병역법에 위헌 결정, 지난 1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 판결 등으로 대체복무 도입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지만 여론은 찬반으로 갈리며 사회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국내 첫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씨(왼쪽 두 번째)가 지난 2004년 ‘대체복무제도 입법 촉구 각계인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상 양심과 통상적 양심은 의미 달라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를 다룬 기사에는 “전역자들은 비양심적이라서 군대를 다녀왔느냐”라며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한 댓글이 주를 이룬다. 헌법재판소도 이같은 우려를 의식해 법률적 용어로서의 양심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양심은 단어의 의미가 다르다고 못 박았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을 통해 “양심은 민주적 다수의 사고나 가치관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현상으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며 “개인의 양심은 사회 다수의 정의관·도덕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문제되는 상황은 개인의 양심이 국가의 법질서나 사회의 도덕률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라고 밝혔다.

원영섭 변호사는 12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양심의 의미 차이에 대해 보충설명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양심은 보편적인 기준에서의 ‘착한 마음’을 말한다”며 “그런데 헌법상의 양심은 주관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올바른 것, ‘나만의 정의관’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법적인 의미의 양심은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양심도 존재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기자회견 중 사회단체 회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체복무 찬성 측도 “양심적 용어 바꿔야”

‘양심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변호를 담당해온 민변 소속 임재성 변호사는 이날 메시지를 통해 “(양심이란 용어에 대한) 논쟁은 이전에 ‘양심수’ 문제에서도 반복된 사례가 있다”며 “용어의 문제라기보다는 헌법상의 ‘양심’이 일상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문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찬성하는 측에서도 ‘양심적’이라는 용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체복무 도입이 확정된 상황에서 찬반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원만한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용어 의미 차이로 발생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2001년 국내 첫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1년6개월 실형을 산 오태양 우리미래상임위원장은 지난 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는 사회자의 말에 “동의한다”라며 “20년 전 (병역거부)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오해가 많았지만 워낙 법률적, 학술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라서 (그대로 썼다)”라고 답했다. 이어 “(용어 변경을) 아무리 시도해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앞으로는 필요할 것”이라며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사상이나 가치관에 따른 병역거부’ 등을 대체안으로 내놓았다.

국내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해온 국제앰네스티 한국본부는 이날 통화에서 “한국지부는 ‘양심적’이라는 공식 번역 외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양심적이라는 용어를 고쳐야 한다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공식 입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양심이라는 게 도덕적 우월을 의미하는 가치판단적인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양심적, 비양심적이라는 이분법적 해석 자체가 문제”라면서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난 6월28일 헌재 앞에서 대체복무 법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위 사진)과 병역거부자 처벌 합헌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아래 사진)의 모습. 연합뉴스
◆“‘종교적 병역거부자’ 단어는 본질 흐려”

대체복무제가 국회 입법을 거쳐야 하는 만큼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용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 판결 직후 논평을 통해 “군대에 간 사람들이 ‘비양심’적 병역이행자가 아니지 않나”라며 “국군 장병들의 사기 증진 및 처우개선의 시작은 ‘양심’을 떼어 내고 표현을 바꾸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은 9일 “(양심적이라는 단어는) 국민 상식과 정서에 맞지 않는다”라며 법원·검찰 등에 ‘종교적 이유 등의 병역거부자’로 용어를 바꿔 사용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 찬성 측은 ‘종교적 병역거부자’는 사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 ‘전쟁 없는 세상’의 이용석 활동가는 이날 통화에서 “요즘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어떻게 불러도 상관이 없다. 양심적이라는 말을 아예 쓰지 않고 그냥 ‘병역거부자’라고 말하기도 한다”면서도 “종교적 병역거부자라는 용어는 종교인이 아닌 사람을 포괄하지 못해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용어로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킬 게 아니라 대체복무를 어떻게 잘 만들지 사회적 토론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며 “(양심적이라는 단어가) 논쟁이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잘 몰라서라기보다는 갈등을 유발 이득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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