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최악의 졸장 '원균', 부정입시 논란도 있었다고요?
원균의 아버지 원준량, 아들 부정입시하다 걸려 탄핵받아
정권 바뀌고 나서 선조의 총애 속에 빠른 승진... 그러나 실전에서 능력 드러나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최근 숙명여고에서 발생한 부정시험 사건이 사회적으로 화두가 됐다. 현대판 '과거시험'이라 불릴 정도로 수십만 수험생의 미래가 달린 '시험'에서 발생한 부정이라 교육계는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큰 파급력을 일으키고 있다. 각종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조선시대조차도 부정시험만큼은 그 어떤 연줄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처벌받을 정도로 견제와 감시가 심했던만큼, 21세기 한국에서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
실제 조선시대에는 특히 실기시험이 있던 '무과(武科)' 시험에서 부정이 잦았다고 한다. 문과 중심으로 짜여진 과거시험이다보니 무과에 대한 관리가 소홀한 측면도 있었고, 무관 고위직에 있는 장수들이 앞다퉈 자기 자식을 합격시키고자 나서다보니 각종 부정이 발생했다고 알려져있다. 또 이것이 고위 장수들에 대한 탄핵거리로 올라오기도 했다.
이로인해 부정 과거시험으로 합격이 취소당한 사람도 꽤 있었다고 한다. 이중엔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최악의 졸장, 무능한 지휘관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유명인사, '원균'도 포함돼있다. 원균은 원래 1540년 지금의 평택인 당시 충청도 진위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인 원주 원씨 가문은 고려 태조 왕건 때 삼한통일공신으로 유명한 원극유의 후손들로 이뤄졌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는 문과에서 60명, 무과에서 136명이나 급제자를 배출한 당대 명문가였다. 그의 아버지 원준량도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는 등 당시 무관 고위직에 있던 인물이었다.
이런 흘륭한 집안 배경을 안고 자라난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과거시험을 준비, 24살인 1564년 과거시험을 보고 합격했으나 아버지 원준량이 오늘날 감사원인 사간원으로부터 아들의 '부정입시' 탄핵을 받으면서 합격이 취소된다. 아버지가 무과 시험 감독관인 상황에서 아들을 몰래 합격시켜줬고, 이것이 감사에 드러나면서 탄핵을 받았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상세히 나와있다.
명종19년 6월 기록에 의하면 "함경북도 병사 곽흘(郭屹), 평안 병사 이택(李澤), 경상우도 병사 원준량(元俊良)이 그들의 자제(子弟)를 무과(武科) 초시(初試)에 응시하도록 허락한 일은 지금 추고(推考) 중에 있습니다. 신들이 듣건대, 과거 사목(科擧事目)이 문과는 상세한데 무과는 일정한 규정을 세우지 않은 까닭에 그 자제들이 군관(軍官)으로서 구례대로 응시하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법을 어기고 거짓으로 응시한 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니, 상께서 참작하여 처리함이 어떻겠습니까?"라고 나와있다.
정확히 원균을 지칭하고 있진 않지만, 원준량의 아들 중 둘째인 원연은 문과로 벼슬을 했고, 다른 동생들은 과거시험을 보기에 너무 어렸기 때문에 원균이 부정시험으로 걸렸던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군대 영장이 나와 한양 방어를 맡던 오위(五衛) 부대에 입대, 이후에도 무과에 여러차례 응시했으나 부정시험 여파로 번번이 낙방했다. 그가 과거시험에 합격한 것은 명종 사후 새로 선조가 즉위해 정권이 교체된 이후였다. 조선시대에는 온갖 부정부패가 만연했지만, 매 시험마다 15만명의 양반들이 단지 33명을 뽑는 과거시험만큼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부정이 발견되는 경우에는 곧바로 탄핵당했다. 그가 이후 정권 교체 이전까지 낙방을 면치못했던 이유는 부정입시 이력이 계속해서 걸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단 출사한 이후부터는 집안 배경 등이 작용하며 매우 빠른 속도로 승진했다. 특히 선조의 각별한 총애 속에 1591년에는 전라좌수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간원에서 강력하게 원균에 대한 선조의 인사를 탄핵하면서 전라좌수사에는 이순신이 임명된다. 선조와 집안끼리 인척으로 얽혀있다보니 안그래도 부정시험 논란까지 겪었던 원균의 움직임에 대해 사간원도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선조의 특별한 총애가 이어지면서 1592년 1월에 경상우수사로 임명받았다. 20대부터 부정입시 논란을 받을 정도의 '금수저'로 자라난 원균의 실전능력은 3개월 후, 왜군이 15만 대병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면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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