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먹고 살기 힘들어요" 유커 귀환에도 허덕이는 명동

이지은 기자 2018. 11. 1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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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품리포트|명동] 한한령(限韓令)으로 발길 끊은 中관광객 속속 한국으로
상황 나아졌지만 높은 임대료·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문 닫는 자영업자 속출
국내 소비자 외면도 큰 타격.."유커 의존도 낮추고 상권 매력 높여야" 분석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서울 중구 명동 상권. 특히 중국인들이 명동을 많이 찾는다. /이지은 기자


지난 9일 오후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로 나가 명동 거리로 들어가자, 몸통만한 캐리어를 손에 쥔 외국인 관광객 무리가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날 명동 거리는 중국인 목소리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상가 1층에 자리잡은 화장품 로드샵, 의류매장 종업원들은 ‘어서오세요’라는 한국말 대신 ‘환잉꽝린(欢迎光临)’이라고 외치며 손님을 모았다.

지난해 사드(THAAD) 문제로 시작된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으로 직격탄을 맞아 침체기에 빠졌던 명동 상권에 중국인 관광객이 다시 돌아왔다. 베이징·상하이·장쑤성 등 대도시 위주로 한한령이 해제된 효과다. 중국인 관광객이 일부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명동에서 만난 상인들은 여전히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는 말을 쏟아냈다.

한한령으로 뚝 끊겼던 중국인 관광객은 늘어났지만, 명동 상인들은 불황을 호소하고 있다. /이지은 기자


국내 경기가 몰락하면서 불황의 그림자가 명동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명동 길거리에서 닭강정을 팔고 있는 상인 김모씨는 “작년보다 상황이 좀 나아졌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줄고, 인건비 부담까지 높아져 다들 예전 같은 벌이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명동 찾는 중국 관광객 예전의 70% 수준 회복

2016~2018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 추이.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416만9353명으로 2016년(806만7722명)에 비하면 반토막 수준이었다. 올해 들어 중국인 관광객은 다시 회복되는 추세다. 지난 9월 중국인 43만4595명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한·중간 갈등이 극에 달했던 지난해 3월 36만명, 4월 22만명, 5월 25만명에 비해 10만명 이상 늘었다. 하지만 유커들이 명동을 가득 메웠던 2016년 9월(72만명)에 비하면 여전히 3분의 2 정도다.

2018년 중국 국경절 연휴(10월 1~7일) 알리페이 사용자 1인당 평균 결제 금액. /알리페이


중국인 관광객 씀씀이도 늘었다. 중국인 7억명 정도가 사용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 측은 중국 국경절(건국 기념일) 연휴였던 지난 10월 1~7일 동안 세계 주요 상권 중 명동에서 이뤄진 결제 건수가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이들이 명동에서 결제한 1인당 평균 금액은 3396위안(55만6000원)이다. 같은 기간 이뤄진 중국인 관광객 평균 지불액인 1979위안(32만4000원)보다 72% 많았다.

■경기 침체에 높은 임대료로 여전히 힘든 명동 상권

2017~2018년 강북 주요 상권 공실률 추이. /한국감정원


중국 관광객은 돌아왔지만, 명동의 이면 도로에는 여전히 텅빈 상가가 즐비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명동 상가 공실률은 6.4%다. 지난해 3분기(3.9%)에 비해 2.5% 상승했다. 같은 기간 강북 중심 상권인 광화문 공실률 변동률이 0.9%포인트(1.1%→2.0%), 신촌0.8%포인트(5.8%→6.6%), 홍대합정이 -0.3%포인트(6.1%→5.8%)인 것과 비교하면 공실 증가폭이 크다. 명동 메인 도로 상가들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채우고 있지만,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간 이면 도로 상가들은 텅 빈 경우가 수두룩했다.

공실은 늘고 있지만 명동의 매장 임대료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해 1분기 3.3㎡(1평)당 80만580원이었던 명동의 소규모 1층 상가 임대료는 올 3분기 79만4640원으로 약간 떨어졌지만 거의 변동이 없다.

중국인을 제외한 우리나라 소비자 씀씀이도 예전만 못하다. 명동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A씨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씀씀이가 예전 같지 않다”며 “경기가 나빠서 그런지 김밥집에서도 주문하는 금액 자체가 예전보다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메인 도로에 있는 점포들과 달리 이면 도로에 위치한 상가들은 공실이 많았다. /이지은 기자


소비 감소·높은 임대료·최저임금 인상 등 겹악재를 견디지 못하고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들이 적지 않다. 대규모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7월 미국 캐주얼 의류업체 ‘클럽모나코’가, 8월에는 속옷 전문점 ‘원더브라’ 매장이 연이어 문을 닫았다. 명동의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명동 땅값이 워낙 비싸 건물주들이 월세를 확 깎는 일은 없다”며 “임대료가 찔끔 조정되기는 했지만 장사가 되지 않는 상인들 입장에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 “유커 의존 줄이고 다양한 고객층 확보 필요”

서울 중구 명동 상권 메인 도로 내 업종별 점포 수와 임차 비중.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명동 상권이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상권 자체의 매력도가 떨어진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명동 상권은 대기업 브랜드 위주의 패션 잡회 매장과 화장품이 주력이어서 다소 획일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명동 유네스코길·중앙길·충무길에 있는 상가의 업종 비율은 의류(23.1%), 화장품(17.2%), 패션잡화(10.3%) 순으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3대 업종이 상가의 절반을 채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명동 상권 내 업종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지은 기자


명동 상인들도 이 점을 알고 있다. 김인수 서울명동관광특구협의회 국장은 “상권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오케스트라 공연 같은 문화행사를 적극 유치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명동이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를 다소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명동 상권은 우리나라의 대표 상권이지만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상권의 운명이 중국 정부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한한령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는 만큼 다양한 국가의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매력 포인트를 만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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