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숙명여고 쌍둥이 변호인 '11장 반박문'..다툼은 이제 시작

윤봄이 2018. 11. 1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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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고 '시험 유출 의혹' 수사 마무리..이제 끝?

경찰 수사 마무리로 숙명여고 시험유출 사태도 한 페이지가 넘어갔습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의심'에서 출발했던 내용이 서울시교육청 감사와 경찰 수사를 거치며 어느 정도 확인됐습니다. 쌍둥이들의 '의심스러운' 성적 급상승, 쌍둥이가 시험 전이면 들여다봤다는 메모장, 쌍둥이 아버지인 전 교무부장의 '수상한' 야근까지.

[연관기사][뉴스9] 깨알 글씨 ‘52213’, 숙명여고 시험유출 결정적 증거는?

경찰은 12일 쌍둥이와 아버지를 업무방해 공범으로 보고 검찰에 넘겼습니다. 학교 시험 문제와 답을 유출해, 학교의 성적 관리 업무를 방해했다는 겁니다. 경찰은 쌍둥이들이 1학년이었던 지난해 1학기 기말고사부터, 올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모두 다섯 차례 정기고사에서 시험 유출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합니다.

숙명여고도 경찰 수사결과 발표에 맞춰 '쌍둥이들의 성적을 0점 처리하고 퇴학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습니다. 쌍둥이 아버지인 전 교무부장의 파면도 징계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했습니다.

쌍둥이 학생 변호인 반박문


쌍둥이 측 변호인 11장 반박문…의심 정황 일일이 해명

이제 숙명여고 시험유출 사건은 끝난 걸까요? 아닙니다. 검찰 수사도 남았고, 기소된다 해도 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쌍둥이 측은 여전히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쌍둥이 측 변호인은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A4 용지 11장짜리 반박문을 냈습니다. '숙명여고 사건 쟁점별 반박'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경찰이 밝힌 '정황'들은 충분히 반박할 수 있고, 결국 혐의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는 게 쌍둥이 측의 입장입니다. 경찰이 공개한 핵심 정황 증거들을 두고 쌍둥이 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만큼, 앞으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주요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박문에 담긴 주요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답안 적힌 메모장


① 수상한 메모: "채점과 공부용…만점도 아냐"

경찰은 결정적인 정황 증거로 쌍둥이들의 시험지와 메모장을 제시했습니다. 깨알 같은 정답 메모가 적혀있었는데, 답을 사전에 알고 미리 적어둔 것으로 본 겁니다.

이에 대해 쌍둥이 측 변호인은 '채점용' 혹은 '공부용'이라 주장합니다. 2학년 1학기 전 과목 답이 다 적혀있던 쌍둥이 동생의 메모장, 이는 시험 종료 후 채점하기 위해 반장이 불러준 답을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정답을 모두 적었다면, 전 과목 만점을 받았어야 하는데 만점을 받지 못한 과목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시험지에 적은 답도 마찬가지. 쌍둥이 언니는 채점하려고 적은 것이고, 동생은 시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정답 분포를 살펴보기 위해 적은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시험에서 답을 모두 안다면 만점을 맞았어야 하지만, 이중 만점이 아닌 과목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② 모의고사 성적 하락: "숙고 내신이 쉬운 것…최근 모의고사 성적 좋아"

내신 성적이 급등하는 사이, 모의고사 성적이 하락한 건 어떻게 설명할까요? 변호인은 "모의고사와 내신 성적은 충분히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학교 정기고사는 두 달간의 수업 내용 범위 내에서 출제되기 때문에, 모의고사에 비해 잘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특히 숙명여고는 학교 수업에 성실하게 임한 학생들이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출제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숙명여고 시험에 대한 대치동 학원가의 평가도 전했습니다. "정확하게 시험 범위를 외우는 것을 요구하고, 특별한 변형이 없어서 문제가 어렵거나 사고력을 원하는 문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쌍둥이들이 시험 유출 사건이 불거진 이후 치른 9월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문과인 쌍둥이 중 언니는 국어 1등급, 수학 2등급, 영어 1등급, 한국사 1등급, 사회탐구 1등급을 받았고, 이과 동생은 국어 2등급, 수학 3등급, 영어 1등급, 한국사 1등급, 과학탐구 3~4등급이라고 전했습니다.

③ 컴퓨터 교체: "하드디스크 송곳으로 훼손, 개인정보 때문"

전 교무부장과 쌍둥이들은 증거를 없애거나, 말을 바꿔 진술을 사전에 조율한 의심도 받고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건, 전 교무부장이 경찰 수사에 앞서 컴퓨터를 교체했다는 것입니다. 변호인 측 설명을 보면, 전 교무부장은 7월에서 8월 사이에, 4~5년간 쓰던 노트북을 폐기합니다. 특히 하드디스크는 송곳과 가위로 손상한 뒤에 쓰레기장에 버렸습니다. 경찰은 과거 자료를 숨기기 위해 노트북을 손상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변호인 해명은 이렇습니다. 우선, 노트북이 고장 나 폐기한 것이고, 폐기 시점은 교육청 감사도 시작되기 전이라고 합니다. 또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노트북 폐기 방법을 찾아봤고, 검색 결과에 따라 하드디스크를 물리적으로 파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체한 컴퓨터는 한 대 더 있습니다. 집에서 쌍둥이들이 공부용으로 사용하는 데스크톱 컴퓨터인데, 교육청이 수사를 의뢰한 뒤에 교체했습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까요? 변호인은 컴퓨터를 바꾼 건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하드디스크는 빼서 집에 따로 보관했고 이를 경찰에 제출하겠다고 했으나 오히려 경찰이 이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찰 "공개하지 않은 정황 더 있다"

하지만 경찰이 모든 정황 증거를 다 공개한 건 아닙니다. 지난 수사결과 브리핑 자리에서도 기자들이 증거물에 대해 상세한 질문을 던질 때면 "재판이 남아 있어 자세한 내용을 설명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예컨대, 경찰이 확보한 휴대전화 속 증거를 볼까요? 앞서 동생의 휴대전화에서 2학년 1학기 영어 시험의 서술형 답이 그대로 나왔다는 내용은 KBS 보도( [뉴스9] 숙명여고 쌍둥이 정답 유출의심 문제 확인해봤더니…) 등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경찰은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으로 어떤 내용이 나왔는지를 묻는 기자 질문에 "영어 서술형 정답 외에 두 가지가 더 확인됐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재판이 남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원목적분류표(정답 서술표)


브리핑 자리에서 공개된 증거들 가운데, '이원목적분류표'라고 하는 문서도 있었습니다. 이원목적분류표는 정답은 물론 난이도, 채점기준 등이 자세히 설명된 이른바 정답 서술표입니다. 경찰은 쌍둥이 아버지인 전 교무부장이 이원목적분류표를 유출한 것으로 의심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무슨 학기 무슨 과목인지, 또 어떤 다른 증거와 대조해 그런 의심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선 말을 아꼈습니다.

이밖에 쌍둥이의 메모장이나 시험지에서도 기자들이 한눈에 이해하기 힘든 흔적들이 있었지만, 역시나 "재판이 남아있기 때문에 양해해달라"며 자세한 설명을 피했습니다.


유출 '결과'로 입증 vs 유출 '경로' 입증하라

사실, 이런 각각의 의심 정황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쌍둥이 측 변호인이 주장하는 주요 쟁점은 다른 데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 문제와 답을 유출한 방법을, 경찰이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유출 경로나 수법은 특정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시험 유출의 결과로 나타나는 정황 증거들은 많은데, '어떻게' 유출했는지에 대한 단서는 잡지 못한 셈입니다. 전 교무부장이 야근한 날이 의심스럽긴 한데, "복사기를 사용했을 수도, 시험지를 보고 적었을 수도, 사진을 찍었을 수도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경찰이 확보한 대부분의 시험 관련 증거는 쌍둥이의 것으로, 전 교무부장의 소지품에서는 명확한 정황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지금까지 확보한 정황 증거들로도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험 유출의 결과'로 볼 수 있는 쌍둥이들의 메모장과 시험지, 휴대전화 등에서 확인한 정황이 충분히 많다는 것입니다. 쌍둥이 측 변호인 생각은 다릅니다. "수사기관이 직접적인 증거 없이 정황만 제시했다"며, 유출 방법조차 특정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겁니다. 변호인은 전 교무부장이 시험문제와 답을 어떻게 빼돌려서, 어떤 방법으로 자녀들에게 알려줬다는 건지 입증해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숙명여고 시험유출 사건,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아직은 더, 지켜볼 일입니다.

윤봄이기자 (springy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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