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학이요? 어차피 공무원 할건데요"..수능날 노량진 찾은 공딩족

최정훈 입력 2018.11.16. 05:00 수정 2018.11.1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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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공딩족'
대졸 실업자 50만명 넘어.."대학 나와도 취업 안돼" 확산
"공직은 국민에 봉사하는 자리" 묻지마 지원 우려도
14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공무원 학원가 인근에서 수험생들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사진=최정훈 기자)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수능봐서 대학가도 취업하기 어렵잖아요. 그럴 바엔 차라리 일찍 공무원 준비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죠.”

2019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5일.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이정훈(19)군은 수능시험장이 아닌 노량진을 찾았다. 내년 4월에 있을 9급 공무원 시험을 대비해 학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이군은 “수능을 한 달정도 앞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며 “부모님은 대학에 가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일찍부터 준비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능과 취업을 뒤로 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을 뜻하는 ‘공딩족’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졸 실업자가 50만명을 넘어서는 등 대학을 졸업해도 진로가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일찌감치 대학 입학 대신 공무원 시험 준비에 나선 이들이다.

◇ 대졸실업자 50만 시대…10대 공시족 증가추세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올 3분기 대졸 이상 실업자는 50만 1000명에 달했다. IMF외환위기 이듬해인 1999년 3분기 대졸 실업자 27만6000명보다 2배 가까이 많다.

매해 수천명이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공무원시험에 뛰어드는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는 최연서(19·여)양은 “친오빠가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다”며 “4년 동안 열심히 준비해도 어려운 취업보다 차라리 빨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숙명여고 사태 등으로 불거진 대입전형에 대한 불신도 한 몫을 한다. 서울 노량진 H공무원학원 앞에서 만난 전모(18)군은 “시험지 유출이나 수상실적 몰아주기 등 특정 학생한테만 유리한 대학 입시보다 열심히 공부만 하면 합격할 수 있는 공무원시험이 훨씬 공정한 거 같다”고 말했다.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P공무원학원 관계자는 “수능이 끝나는 시즌 뿐 아니라 방학 때면 공무원 시험 과정을 듣는 고등학생들이 많다”며 “공무원 시험을 위한 전체 상담인원 중에 20%정도는 학부모와 함께 상담 받으러 오는 고등학생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졸 공무원의 경우 재직하다가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도 있어 둘다 염두에 두고 도전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고 덧붙였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가직공무원 9급 공채시험에 응시원서를 접수한 18~19세 인원이 △2014년 2631명 △2015년 2153명 △2016년 3156명 △2017년 3202명이다. 2018년에는 2213명이 국가직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올해 국가직 공무원 지원이 줄어든 것은 지역 가산점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고졸 지원자들에게 유리한 지방직 공무원에 대거 응시자가 몰린 때문으로 풀이된다.

9급 공채 시험의 18~20세 합격자수는 2017년에는 13명, 2018년 23명이다. 수습 기간을 거쳐 정식 9급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지역인재 9급 수습직원’의 17~20세 합격자수는 2017년에는 151명, 2018년에는 171명으로 늘어나는 등 공무원시험에 뛰어드는 공딩족들이 늘어남에 따라 합격자 역시 증가세다.

인사처 관계자는 “국가직 9급과 시험과목이 유사하고 채용인원이 많이 증가한 지방공무원에 응시자가 많이 몰렸다”며 “소방 등 특수직까지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10대 공무원 합격자는 증가세”이라고 말했다.
◇“공직은 직장 이상의 의미…소양 부족 우려”

전문가들은 공딩족이 증가하는 배경으로 고용불안으로 인해 심화하는 공무원 선호현상과 공무원 시험 과목과 수능 과목이 다수 겹치는 점을 꼽았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공딩족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노동 시장에 안정적인 직장이 없다는 현실과 함께 공무원 시험 자체가 지난 2013년 개편을 통해 고교 과목인 사회, 과학, 수학 등이 선택과목으로 추가되면서 고교생들이 학업과 병행할 수 있다는 현실이 만나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른 시기부터 안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우려스런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 경기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은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이기 전에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많은 직업”이라며 “대학 등 공무원이 되기 위한 소양과 교육 그리고 직업을 선택하기 위한 고민 없이 이른 시기부터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이유로 공무원을 준비하는 것에는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남승하 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은 “공딩족 증가는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악재“라며 ”공직사회는 교육기관이 아닌 만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직하는 친구들의 현장 적응에도 애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정훈 (hoonism@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