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老犬 모시는 사회..'5분 대기조' 된 가족들

김유신 2018. 11. 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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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인구 1000만시대의 그늘
고령 반려견 온갖 질병 취약
새벽에도 동물병원 응급실行
수술비·치료비 부담 크고
사망하면 상실감에 우울증
병들어 버려질 확률도 급증
日선 '노견홈' 서비스 성황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 모씨(55)는 최근 한 달간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4시간도 채 안 된다. 밤마다 우는 반려견 '다미' 때문이다. 16년간 키워 온 시추인 다미는 고령으로 앞을 못 보고 뒷다리를 쓰지 못한다. 거동이 어려워지면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패드를 착용하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 다미는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 이씨를 찾아 운다. 패드를 갈아주고 안아서 달래도 보지만 다미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동물병원에도 데려가 봤지만 수의사는 "강아지가 나이가 많이 들어 지금은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어머니 건강부터 챙기시라"고 오히려 이씨를 걱정했다.

반려동물 사육 인구 1000만명 시대가 오면서 고령 반려동물을 돌보는 사회적 비용이 점차 커지고 있다. 애완견 붐이 불었던 2004년 이후 가정 내 반려동물들이 고령화하면서 새로운 풍속도가 펼쳐지는 셈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도 나이가 들면 질병에 취약해져 훨씬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나이 든 반려동물을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상상 이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2년 전 19년간 키운 강아지를 떠나보낸 박 모씨(30)는 "강아지가 말년에 많이 아파 가족이 당번을 정해 저녁에 일찍 집에 들어와 간병했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새벽에 갑작스럽게 아파 24시간 동물병원을 찾은 적도 여러 번"이라며 "노견을 키우는 가족은 언제든 출동하는 '5분 대기조'와 같다"고 전했다.

윤홍준 월드펫동물병원 원장은 "반려동물은 나이가 들면서 심장질환이나 신부전 등 질환에 걸리기도 하고 당뇨가 오기도 한다"며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고령 반려동물의 수술비와 치료비에 대한 부담도 견주들의 어려움을 키우는 요소다. 키우던 반려동물 2마리를 모두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최 모씨(28)는 "한 마리는 배 쪽에 종양이 생기고, 나머지 한 마리는 심장병이 생겼다"며 "심장병이었던 강아지는 평생 약을 먹었고 한 달 약값만 20만원씩 들어 비용 부담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이런 부담을 견디다 못해 나이 든 반려동물을 버리는 주인들도 속출하고 있다.

이웅종 이삭애견훈련소 대표는 "고령 반려동물들은 질병에 걸리면 치료가 잘되지 않고 비용 부담도 상당하다"며 "반려견이 나이 들수록 유기될 확률도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추세를 읽고 '펫 보험'을 상품으로 내놓는 보험사도 늘어났다. 메리츠화재,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 대형 보험사들은 올해 반려동물을 위한 새로운 보험상품을 줄줄이 내놨다. 그러나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 한 보험회사 사이트에서 만 6세 수컷 강아지의 한 달 보험료를 계산해본 결과, 6만7510원이 나왔다. 웬만한 사람 보험료보다 비싼 셈이다.

고령화 사회인 일본은 노견을 위한 서비스 시설도 우리나라보다 앞서가고 있다. 나이가 많은 반려동물을 보살펴주는 '노견홈'이나 '노묘홈' 시설이 전국적으로 증가하고 사단법인 협회까지 설립되고 있다.

오랜 기간 함께해 온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일은 그 충격이 부모가 자식을 잃었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른바 '펫로스 증후군'이 심하면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오랫동안 함께해 온 동물을 떠나보내고 느끼는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며 "이후 느끼는 상실감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트라우마를 돌보기 위한 프로그램 등을 마련하는 것도 애완견 고령화 시대에 고려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나이 들고 병에 걸려 통증이 심한 반려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키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반려동물이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반려인과, 이를 감내해야 하는 반려견 모두 힘든 시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려견 행동전문가인 강형욱 씨는 "미국과 일본은 반려동물을 안락사시키는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2~4배 높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미국은 안락사를 사회적으로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있어 비율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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