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시원서 자란 딸.."악취나는 방 알고봤더니" 털썩

입력 2018.11.18. 20:56 수정 2018.11.2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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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점검 -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 ①]
'비주택 대물림 모녀 이야기'
비닐하우스에서 고시원으로
대물림 된 '비주택' 삶
비주택 떠돌던 25살 예지씨네
"하교때 날 맞아준건 바퀴벌레
악취나던 방, 나중에 알고보니
사람 죽은채 며칠동안 방치돼"
"세상과 단절되고 꿈도 사라져"

[한겨레]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은 적게는 40만, 많게는 228만가구로 추정된다. 불이 나서 여러 명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시선에 들어온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지난여름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집 아닌 집’에 사는 203가구를 면접조사했다. <한겨레>는 이 가운데 16명을 추려 심층 인터뷰를 했다. 이들의 삶과 구조적 문제점을 추적해 3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이명순(가명·57)씨는 상가 교회 건물 안에 산다. 이씨가 잠자는 곳 옆에 세탁실 등이 있다. 그의 딸도 고시원 등 ‘집 아닌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5살 박예지(가명)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 입학 전까지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살았다. 원래는 가족과 함께 월세 60만원짜리 주공아파트에 살았는데, 부모의 이혼과 생계의 어려움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박예지는 같은 고등학교에 계속 다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시원에 가야 했다. 월세 28만원은 아르바이트로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보증금이 없다는 점이 컸다.

고시원 방은 침대를 빼면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책상을 쓰려면 침대 위에 테이블을 겹쳐야 했다. 수납공간이 없어 이사하면서 액세서리는 전부 버리고 책가방만 챙겼다. 옷은 교복과 생활복을 포함해 다섯 벌이 전부였다.

박예지의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불이 나 대피할 때 창문이 있는 방과 없는 방에 사는 것으로 생사가 갈렸던 국일고시원처럼, 작은 창이라도 있는 방에 살려면 5만원을 더 내야 했다. 아르바이트로 월 33만원을 감당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대신 감당해야 하는 건 곰팡이와의 생활이었다. 한 층에 50여개의 방이 벌집처럼 빽빽하던 고시원에는 세탁기가 한 대뿐이었다. 50여명의 빨래를 돌리는 세탁기라 그런지 빨래를 해도 냄새가 났다. 말릴 공간도 마땅치 않아 방 안에 세탁물을 널어놨다. 지나가는 사람이 볼까 싶어 문을 열어 놓지도 못했다. 그렇게 볕이 들지 않는 방에 들어찬 습기와 냄새는 곰팡이가 서식하기 적합한 환경이 됐다. 박예지는 고시원에 살던 시절 내내 피부병에 시달렸다. “나중에 고시원 방을 뺄 때 침대 밑을 보니까 곰팡이가 잔뜩 슬어 있더라고요.”

곰팡이만이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고시원 방문을 열면 ‘사사삭’ 재빨리 사라지는 것들의 소리가 들렸다. 박예지가 방문을 열면, 창이 없어 내내 어둡던 방에 복도 불빛이 스며들었다. 이때 바퀴벌레들이 재빨리 어둠 속으로 피하면서 내는 소리였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바퀴벌레들이 방 한구석을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어느 날 문득 바퀴벌레들이 귀로 들어올까 두려웠어요. 그래서 잠을 잘 때 귀마개를 끼고 잤어요.”

원래 공부하는 공간인 고시원에 학생은 박예지와 또래 여학생 한 명, 남학생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일용직 노동자들이거나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방 배정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고, 방음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밤이 되면 성인 남성 여럿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옆방에선 알 수 없는 언어로 밤늦게까지 통화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누군가가 “조용히 하세요”라고 다그쳐도, 통화 당사자는 외국인이어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수라장이었다. 50명의 거주자가 만드는 각양각색의 소음에 박예지는 밤마다 잠을 설쳤다. 생활비를 아끼려 저녁을 컵라면과 바나나로 때우던 박예지는 어느 날부터 영양부족으로 손을 떨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아예 의식을 잃기도 했어요. 선생님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제가 일어나지 못했던 거죠.”

그렇게 1년6개월 정도 꾸역꾸역 버티던 박예지가 한순간 무너져내린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날 고시원으로 돌아오는데 바깥에 119구급차가 와 있었다. “누가 아픈가 했는데 알고 보니 고시원에 사람이 죽은 채로 며칠 동안 방치돼 있었던 거예요.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지만, 악취가 나서 들어가 보니 사람이 죽어 있었다고 전해 들었어요.” 죽음에 이르러서야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때 박예지에게 각인됐다. “‘아, 여기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죽음을 직면하고서야 고시원에서 탈출한 박예지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는 ‘집 아닌 집’에 사는 이들의 처지를 다시 세상의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가난을 없애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하는 오늘날의 도시 개발은 주거 빈민들을 고시원과 비닐하우스, 쪽방과 옥탑방 같은 ‘집 아닌 집’, 즉 ‘비주택’으로 밀어냈다. ‘비주택’이란 ‘사회적으로 주택으로 인정받지 못할 정도의 열악한 곳’으로서 고시원, 비닐하우스, 쪽방, 컨테이너, 판잣집, 여인숙과 같은 숙박업소 등이 이에 해당한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를 보면,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에 사는 ‘비주택’ 가구는 39만1245가구에 달한다. 재난·재해의 희생자가 되어 참혹한 ‘스펙터클’로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는 이들이 40만가구나 된다는 말이다.

박예지는 한국도시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올해 7월23일부터 9월20일까지 수행한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연구의 면접조사 대상자 가운데 한 가구에 속해 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이 연구를 통해 ‘비주택’ 거주 가구의 주거실태를 파악하고 ‘주거권’ 실현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비주택’에 사는 203가구를 면접조사했다. <한겨레>는 203가구에 속한 이들 가운데 16명을 추려서 심층 인터뷰를 했다. 박예지는 이 가운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시원에 살기 시작해 지금까지 ‘비주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그런데 박예지의 삶을 들여다보려면, 그의 어머니 이명순(가명·57)의 삶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비주택’을 낳은 빈곤이 이명순으로부터 박예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됐기 때문이다.

교회 한쪽에 쳐진 가림막 뒤편으로 이명순씨가 거주하는 공간이 있다.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진 날이었지만 방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무허가 비닐하우스에서 상가 교회로, 대물림되는 ‘주거빈곤’

30년 전인 1988년, 27살 이명순은 부천시의 한 무허가 비닐하우스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누군가 비닐하우스 안에 집을 지어서 월세를 놨다. “장미꽃을 재배하는 장미하우스 옆이었어요.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7만원이었죠. 거기서 시어머니랑 같이 살았어요.”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 샤워실 같은 건 사치였다. 부엌에서 아이들을 씻겼다. 그곳에 2~3년 살다가 이사한 곳은 부천 상동의 무허가 주택이었다. 월세는 7만원으로 똑같았지만, 보증금이 50만원 오른 100만원이었다. 단칸방이었지만 비닐하우스에 견주면 “멀쩡한 기와집”이었다고, 이명순은 돌아봤다. 박예지는 이 “멀쩡한 (무허가) 기와집”에서 태어났다.

비닐하우스와 무허가 주택, 반지하를 떠돌던 이명순의 가족이 온전한 ‘주택’에 입성한 것은 2006년이었다. 보증금 3천만원을 남동생에게 빌려 월세 60만원에 5년 만기 분양 조건으로 부천의 한 주공아파트에 살게 됐다. 임대아파트였지만, 그래도 아파트였다. 고도성장기를 살아온 이명순의 또래들에게 아파트는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길 수 있는 상징 같은 공간이었다. “넓고 좋았죠.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어요. 아파트에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각자의 방과 분리된 부엌, 온전한 화장실, 적절한 냉난방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이 주공아파트에서 산 5년은 이명순의 가족이 주거권을 온전하게 누린 짧은 절정이었다.

‘화양연화’는 길지 않았다. 화물차를 몰던 남편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가족의 경제 사정도 나빠졌다. 아파트를 분양받아야 하는 5년 만기 기간도 점점 코앞에 다가왔다. 나빠지는 살림살이는 다툼을 낳았다. 이명순은 결국 집을 나와 부천 외곽의 한 교회 상가에서 별거에 들어갔다. 분양 비용을 댈 수 없었던 남은 가족은 결국 주공아파트를 나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하나같이 ‘비주택’으로 내몰렸다. 이명순의 남편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 원룸으로, 첫째 아들은 교회 기숙사로, 둘째 아들과 딸 박예지는 고시원으로 갔다.

이명순이 2010년부터 머물고 있는 교회 상가 건물 1층에는 세탁소가 있다. 2층에 이명순이 거주하는 교회가 있고, 3층은 세탁소 주인이 사는 가정집이다. 교회는 이명순의 신학대학원 은사가 소개해준 곳이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40만원인데, 보증금은 지인들에게 꿔서 알음알음 마련했다. 66㎡(20평)짜리 예배 공간과 지하 창고로 구성된 이 교회는 원래 선교사와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머물던 곳이었다.

교회 건물 역시 ‘비주택’이기 때문에 ‘주택’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 난방용 보일러도 없고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다. 머리를 감으려면 겨울에도 상가 계단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버너를 사용해야 한다. 입주 전부터 떨어져 나가 있던 창문에는 비닐을 얼기설기 덧대었지만 한겨울 삭풍에는 무력했다. 전기난로를 사용해 몸을 조금 데울 수 있지만, 사용시간이 길어지면 전기차단기가 내려가며 꺼지길 반복했다. 한여름에는 아예 비닐을 떼고 창문을 없앤 채 지냈다. 그래도 올여름에는 교회가 너무 더워 밤에는 습기와 곰팡이로 가득한 지하 창고에 내려가 누워야만 그나마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치안도 문제였다. “상가 교회에 여성이 혼자 산다는 게 알려졌는지 노숙인이 찾아와 찜질방 갈 돈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그랬어요. 그래서 몇천원씩 쥐여주면 더 달라고 ‘땡깡’ 부리고, 성에 안 차니까 화분을 깨고 가고…. 무서워서 혼났죠.” 도둑도 수시로 들었다.

몇년 전부터 저혈압 등으로 건강이 악화됐다. 한동안 몸의 절반이 마비돼 누워서 지내기도 했다. 병원비를 낼 여유가 없었다. ‘기도’로 버텼다고 한다. 한달 수익은 딸과 아들들이 조금씩 주는 생활비가 전부다. “40만원 월세를 한동안 내지 못했으니 보증금 1천만원은 까먹었을 거예요. 지금이라도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면 방법이 없는 처지예요. 그저 연락이 없으니 이렇게 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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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매개로 대물림되는 빈곤

빈곤은 ‘집’을 매개로 대물림된다. 2014년 한국도시연구소에서 만 16~34살 이하 서울 거주 청년 10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절반이 넘는 청년들이 관리비를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발생하는 주거비 전액을 부모로부터 지원받았다. 특히 자가주택 구입비와 월세 보증금은 부모 전액 지원 비율이 60%가 넘었다. 자가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청년 16명 가운데 14명(87.6%)이 부모로부터 전액을 지원받거나 부분적으로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을 가진 청년들의 대부분은 ‘부모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것이다.

‘보증금’은 주거빈곤 대물림의 중요한 요인이다. 이현정 충북대 주거환경학과 교수가 진행한 ‘2014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나타난 청년 1인 임차가구의 가족 지원 및 주거비 부담에 따른 주거실태 및 주거 기대’ 연구를 보면, 분석 대상 청년 가구 가운데 46만5310가구(27.4%)는 보증금을 치르기 위해 가족 지원금을 사용했고, 32만3922가구(19.1%)는 보증금 전액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주거 형태를 택할 때 부딪히는 첫번째 문턱이 ‘보증금’을 위한 목돈임을 생각하면, 보증금을 지원받을 수 없는 청년들은 보증금이 적거나 아예 없는 ‘비주택’을 주거 형태로 선택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한국도시연구소의 이번 실태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비주택 거주 가구의 점유 형태는 88.2%가 ‘월세’인데, 80.8%는 ‘보증금이 없는 월세’였다. 앞서 얘기했듯, 박예지가 ‘비주택’인 고시원을 택한 이유도 무엇보다 보증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 친구 중 한 명도 그나마 괜찮은 원룸에 살고 있었는데, 그 원룸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원을 받아서 제가 감당이 안 되겠더라고요. 제가 고시원을 택한 이유는 결국 보증금 부담 때문이에요.”

■‘노오력’해도 보이지 않는 ‘비주택 출구’

부지런하게 노력하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건 1970년대에나 통할 법한 얘기다. 박예지도 꿋꿋하게 부지런했다. 고시원으로 내몰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카페 종업원, 콜센터 직원, 건물 주차요원으로 일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대학 등록금과 고시원 월세, 부모 생활비 등을 치르면 금세 바닥이 보였다. 최소한의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는 ‘종잣돈’은 허락되지 않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제도는 박예지에게 가닿지 않는다. 일말의 여유도 없이 부지런하게 노력하는 삶을 산다는 건 그만큼 정부 제도를 활용할 시간이 적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월세를 일부만이라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저한테 거의 없어요.”

정책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지원 방식이 너무 복잡하거나 형식적이라고 했다. “한번은 경기도에서 시행 중인 ‘일하는 청년 통장’에 신청하려고 했는데, 낮 동안에 점심도 잘 못 먹고 콜센터 일을 하는 입장에서 지원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회사와 학교에 쫓기면서 겨우 신청하긴 했는데, 결국 서류 미비라고 연락 오더군요. 다시 신청할 엄두를 못 냈어요.”

실제로 한국도시연구소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비주택 거주민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받을 곳’으로 ‘공공기관’(13.3%)을 꼽은 응답자보다 ‘없음’(23.6%)을 꼽은 응답자가 갑절 정도 더 많았다. 주거 관련 정보를 얻거나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는 가구도 40.9%에 불과했다.

대물림된 주거 환경은 25살 박예지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응당 기대하는 “꿈” 같은 건 박예지에게 없어진 지 오래다. “원래는 이화여대를 목표로 공부하다가 2년제 학교로 목표를 낮췄어요. 선생님들이 대학 진학에 대해 아무리 조언을 해줘도 ‘저는 괜찮아요. 그냥 4년제 안 가려고요. 2년제 갈 거예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환경 때문에 학업적 목표가 낮아진 건데, 그 괴리감이 너무 컸어요.”

고시원 생활은 10대의 박예지에게 그저 “창피함”으로 남아 있다. 고시원에 살게 됐다는 걸 단짝 친구에게마저 알리지 않았다. “제가 원래 주공아파트에 같이 살다가 어느 날부터 하교 때 다른 길로 가기 시작했잖아요. 그때 친구가 의아해하며 묻는 거예요. 어디로 가는 거냐고. 그때 그냥 이사했다고 얼버무리곤 했어요.”

숨기는 것이 많아지면서 관계는 단절되기 시작했다. “제가 말을 안 하니까 친구들이 어려워하고 점점 단절되고, 고시원에서의 삶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고시원 사는 게 자랑은 아니니까. 하굣길 고시원으로 돌아올 때 느꼈던 ‘외로움’이 가장 괴로웠던 것 같아요.”

이제 남은 건은 관계를 피하면서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였다. “다른 친구들을 보면 옷도 사고 여행도 다니고 그러는데요. 저는 주거에 대한 부담감이 크니까 사치가 될 수 있는 비용은 완전히 줄여야 했어요. 목표는 큰데 환경은 안 받쳐주니까 사람 만나기도 싫어졌고요. 점점 소심해지는 것 같아요.”

온몸이 수축하듯 쪼그라든 박예지의 몸에 이명순의 삶이 겹쳐 보였다. 삶의 그늘도 그렇게 대물림된다.

비주택 40만가구에겐…최저주거기준 ‘맹탕 선언’

주거기본법 제2조는 ‘주거권’을 “물리적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만든 최소한의 장치가 ‘최저주거기준’이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설정·고시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가 156만가구다. 여기에 40만가구에 이르는 ‘비주택 인구’와 최저주거기준을 웃도는 ‘지하·옥상 거주 인구’를 포함하면 ‘주거빈곤’ 인구는 228만가구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문제는 최저주거기준마저 실효성 없는 ‘맹탕 선언’에 그친다는 점이다. 최저주거기준은 가구 구성별로 최소 주거면적과 용도별 방의 개수를 정하고 있다. 가구원이 1명이면 ‘방 1개에 부엌 1개, 전용면적 14㎡ 이상’, 가구원 수가 3명이면 ‘방 2개에 부엌 1개, 전용면적 36㎡ 이상’이어야 한다. 40만에 이르는 비주택 가구는 ‘집’에 살지 않기 때문에 최저주거기준 적용조차 받지 못한다.

최저주거기준은 주거면적과 방의 개수를 제외한 다른 조항들이 모호한 문구가 대부분이다. 집의 품질에 대한 규정도 없다. 방음·환기·채광 등에 대해선 ‘적절한’ 설비를 갖추도록 했을 뿐이다. 소음·진동·악취·대기오염 등 환경 요소도 구체적 기준이 없다.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주택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규정도 없다. 비주택 가구는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4일 ‘최저주거기준 현실화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채광과 환기, 난방, 전기, 화재 시 비상구 등 32개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근본적으로는 가구 구성원 수를 기준으로 삼는 최저주거기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현행 최저주거기준은 집 자체의 품질과 상관없이 가구 구성원 수에 따라 기준 미달 여부가 가려지다 보니 열악한 집도 사람 수에 견줘 크기만 하면 기준을 충족하거나, 멀쩡한 집도 기준 미달이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며 “‘주택과 비주택’을 통틀어 ‘품질에 따른 최저주거기준’을 기준으로 하한선을 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집의 품질’을 기준으로 강행 규정을 둬, 창문 없는 고시원이나 난방 안 되는 쪽방 등 주거권을 침해하는 주거환경을 제재해야 한다는 얘기다.

영국에서는 다중주택은 라이선스 발급 뒤 5년 이내에 ‘주거 건강 및 안전에 대한 평가’를 받도록 돼 있다. 긴급상황에서는 건물 철거를 명령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주택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집에선 주거 급여 등을 지원받을 수 없다. 최 소장은 “종로 고시원 화재로 숨진 이들 상당수가 주거 급여 수급자였다. 정부가 주거 급여를 받는 이들이 사는 ‘주거공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