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한국의 지도를 극찬한 이유

김선흥 입력 2018.11.1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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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인간사] 평창 올림픽과 함께 소개된 강리도

[오마이뉴스 김선흥 기자]

▲ 강리도 류코쿠대본
ⓒ <카토그라피아CARTOGRAPHIA>
   
▲ 강리도 항아리 모양의 사진
ⓒ 김선흥
 
우리 선조들이 맨 처음 지도에 유럽을 그린 것이 언제였을까요? 개항 후인 19세기? 아닙니다. 15세기 초 1402년(태종 2)에 유럽을 그렸습니다. 지중해 등대와 섬도 그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도에 대해 서양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 걸까요? 이번 호의 주제입니다.

거꾸로 이렇게 가정해 봅니다. 만일 1402년 그 깜깜하던 시절에 우리가 전혀 몰랐던 서양의 어떤 나라 사람이 한반도를 지도에 그려 놓았고 그 사실을 우리가 최근에 알게 되었다면? 그 지도에 1402년 시절의 한양도 표시되어 있고 압록강이나 낙동강도 그려져 있다면? 강리도가 바로 서양인들에게 그런 경우일까요? 그렇습니다. 강리도에는 다뉴브강도 그려져 있고 지중해와 대서양도 나타나 있습니다. 파리, 로마, 마르세이유, 지브롤타 등의 도시명도 적혀 있습니다.

또 이런 가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만일 1402년에 남아프리카 사람이 그린 지도에 우리나라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한강도 나타나 있고 땅끝 해남 일대의 해안선이 정확히 그려져 있다면? 강리도가 아프리가 사람들에게 그런 경우일까요?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아프리카 국회의장 진왈라 여사가 2001년 11월 강리도를 케이프타운 소재 국회의사당에 전시한 스토리는 예전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강리도가 저 멀리 남아공 케이프 타운에 등장하기 꼭 10년 전인 1991년 10월 12일 위싱턴에 그 모습을 홀연히 나타낸 것입니다.

이듬해 1992년의 1월 12일까지 꼬박 3개월간 강리도는 워싱턴의 국립미술관(NATIONAL ART GALLERY)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일본 교토의 류코쿠(龍谷)대학 오미야(大宮) 도서관 지하의 수장고에 있던 우리의 강리도가 수백 년의 침묵을 깨고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미국이 콜럼버스 항해 5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야말로 세기적인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1492년 즈음 CIRCA 1492'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15세기를 전후해 각 문화권에서 성취된 걸작품 600여 점을 선별하여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 강리도가 출품된 것입니다.

강리도 실물이 지하에서 나와 해외에 전시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고 아마도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강리도의 미국 행차는 강리도 부활의 역사에서 분수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까닭입니다. 과연 그 당시 워싱턴에서 강리도는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요? 뉴욕 타임스 및 잡지 등에서 강리도의 반향을 찾아 볼 수있습니다. 그 요지를 여기 옮깁니다.
 
지도와 지구의 및 기구들이 전시회에서 가장 특별한 품목에 속한다. 프랑스로부터는 1375년의 카탈란(Catalan) 세계지도가 출품되었다. 이 지도는 유럽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당시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세계였던 동방을 환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독일로부터는 1507년의 마르틴 발트제뮐러 세계지도가 왔다. 이 지도는 신대륙을 유럽인들이 최초로 묘사한 것이다. 

일본으로부터는 1402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지도가 왔다. 이 지도는 당시 알려진 세계를 그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동아시아발 세계지도이다. 이 지도에 그려진 유럽은 당시 어떤 유럽인들의 지도에 나타난 아시아보다 월등히 낫다. 하지만 이 지도는 한국의 세계상이다. 한국은 아프리카만큼 크게 그려져 있고 숙적 일본은 남쪽바다 멀리로 추방되었다. - Michael Kimmelman, <뉴욕 타임스> 1991년 10월 20일자
 
콜럼버스 이전에는 세계의 형상이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국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Circa 1492"는 사람들의 사고를 영원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1402년에 한국인들이 <강리도>라는 새로운 세계지도를 완성하였다. 이 지도에는 정확한 걸프만이 그려져 있고 어설프지만 식별할 수 있는 아프리카, 지중해, 남유럽이 나타나 있다.- Kay Larson, <New York Magazine> 1991년 11월 11일자
 
워싱턴 D.C.의 국립 미술관은 초대형 전시회 "1492 즈음: 탐험시대의 예술(Circa 1492: Art in the Age of Exploration)"의 개막으로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을 기념하였다. 콜럼버스 항해 즈음에 탄생한 세계 5대륙의 예술품을 보여주는 이 전시회는 많은 대중과 열정적인 비평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전시회를 통해 우리는 동아시아가 서양의 르네상스기에 과학적 천재성으로 빛났음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신흥 조선 왕조에서 세계지도가 만들어졌다. 국립 미술관에 전시된 깜짝 놀랄(startling) <강리도>에는 어느 정도 정확한 아프리카와 유럽이 포함되어 있다. 이 세계도는 이태리의 계몽 지식인들이 지도학과 기하학을 숙지하기 한 세기 전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즉, 왜 조선은 500년 동안 존속하면서도 자신의 봉건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는가? - Richard Ryan(호주 카톨릭 대학 교수), 미국 월간지 <COMMENTARY> 1992년 5월호
  
▲ Circa 1492 전시회 도록
ⓒ 김선흥
 
전시회 작품을 소개하는 대형 도록이 제작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예술사가, 역사학자 및 고고인류학자들이 국제적인 팀을 이루어 만든 이 책에 미국의 레디야드(Gari Keith Ledyard, 콜럼비아대학 석좌교수)가 강리도 논고를 실었습니다. 첫 부분의 요지를 옮깁니다.
 
"콜럼버스가 미지의 바다로 출항했을 당시 그는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들었겠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일 당시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가장 완전한 세계지도를 구해보려 했다면, 마땅히 조선왕국이라는 나라를 찾아갔어야 했다. 그 지도에는 중국과 일본이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인도, 이슬람 국가들, 아프리카 대륙, 그리고 몹시 놀랍게도 유럽까지도 그려져 있었으니 말이다.

콜럼버스가 그 지도를 보았다면, 스페인을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고 구불구불한 지중해 해안선에서 자신의 고향 제노아를 또한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유럽 지역은 불완전하게 그려져 있고 한국은 너무 크게 그려져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 만들어진 어떤 지도가 <강리도>가 아시아를 그린 것만큼 자신들의 유럽을 잘 그릴 수 있었다는 말인가?"
    
▲ Circa 1492 강리도 논고
ⓒ 김선흥
   
서양인들이 동방의 지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15세기 초에 한국인들은 이미 서양을 그렸다는 사실을 강리도는 증언했습니다. 서양중심주의적 사고와 역사관을 간단히 뒤집을 수 있는 문헌이 출현한 것이지요.
  
▲ 강리도 유럽 부분
ⓒ 류코쿠대 도서관
 
강리도의 유럽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미흡하고 오류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동방에서 유럽을 그렸다는 사실 자체가 서양인들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발견입니다.

강리도가 일천강을 비추다

강리도가 서양 지식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깊은 것으로 보입니다. 금년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소개하면서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지는 한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강리도를 들었습니다. 글의 요지를 여기 옮깁니다.
 
동계올림픽으로 한국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때, 수세기 동안 지도 제작자들이 한반도를 묘사한 흥미로운 방식에 주목해 보자.
   
금년 한국의 평창동계올림픽으로 한반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불꽃놀이로수놓인 개막식으로부터 미소 짓는 호돌이 마스코트에 이르기까지 동계올림픽 행사는 한국인들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호기가 되었다.

한국은 흥미롭고도 오래된 지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가 한국에서 1402년에 만들어졌다. 강리도라 불리는 이 지도는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세 개(네 개가 맞음-기자 말)의 사본이 전해온다. 모두 15세기, 16세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여기 지도는 그 중의 하나로 1560년 이후의 것이다. 보다시피 지도의 맨 오른쪽에 한국이 굉장히 크게 그려져 있다. 맨 왼쪽의 아프리카 정도의 크기이다. 한반도에 비하면 남서쪽에 있는 일본은 왜소하게 보인다. - Betsy Mason, <내셔널지오그래픽> 2018년 2월 18일

참고로 여기 실린 지도는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88년 일본 나가사키의 혼코지(本光寺)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네 개의 강리도 사본(모두 일본에 있음)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한지에 그려져 있습니다. 가로 276.8cm, 세로 219cm. 이 지도의 사본 하나가 저 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회에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갓난이라면 모를까 김정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15세기 초 최고의 세계지도인 강리도를 남기신 위대한 조상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을 보았습니다.

지난 10월 20일 미국, 뉴질랜드 등지에서 온 몇몇 서양인들이 강리도 제작을 주도하셨던 익원공(김사형의 시호)의 묘역을 탐방한 것입니다. 한국 역사문화 탐방 스케쥴의 일환으로 '강리도 유적지'가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기자는 익원공 후손님들의 배려로 묘소를 참배하고 서양인들에게 강리도에 대해 설명하는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존경이 빛나고 있음을 또한 보았습니다. 실로 문화의 힘은 시공과 국경을 초월하는 것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뉴턴은 말합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 탔기 때문에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었다고. 그 옛날 세계지도를 만드셨던 거인들께 경의와 감사를 바칩니다. 
  
▲ 익원공 묘역 서양인에게 강리도 설명
ⓒ 김발용
▲ 익원공 묘역 서양인 탐방객
ⓒ 김선흥
 
다음 호에서는 강리도에서 지중해 최대의 섬 시실리(Sicily)를 탐험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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