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몰이 단속 멈춰라" 스님들,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2018. 11. 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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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반 피하려다 숨진 딴저테이 죽음 진상규명 촉구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 대책 비판도

[한겨레]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이 단속을 피하다 숨진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씨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청와대 사랑채까지 오체투지로 행진했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승복과 상복을 입은 9명이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 몸을 엎드렸다.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뻗어 배가 땅에 닿도록 절하는 오체투지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살인단속 규탄 및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씨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대책위) 등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종 일주문에서 출발해 청와대 사랑채까지 약 1시간 20분 동안 오체투지로 이동하며 “딴저테이 살려내라”, “살인단속 중단하라”고 온몸으로 외쳤다.

25살이던 딴저테이씨는 올 8월22일 경기도 김포시의 한 건설 현장에서 점심을 먹던 중 갑작스레 들이닥친 인천출입국·외국인청 단속반을 피하려다 8m 아래 지하로 추락했다. 5년 전 가족을 부양할 돈을 벌기 위해 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의 여러 공사 현장을 전전했던 그는, 사고가 있기 6개월 전 취업 비자가 만료되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 되었다.

이날 딴저테이씨보다 앞서 4명의 이주노동자가 도주하는 과정에 이 창문으로 뛰어내렸지만, 지하로 추락한 이는 딴저테이씨 한 명이었다. 목격자들은 “단속반이 창틀을 뛰어넘는 그의 다리를 붙잡았고 그 영향으로 딴저테이씨가 중심을 잃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119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20여분 동안 단속반이 딴저테이씨에 대한 구호 조처를 하지 않고 단속 활동을 계속했다는 증언, 병원 이송 뒤 초기 기록에서 사인이 ‘자살’로 기록됐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던 딴저테이씨는 사고 보름 뒤인 9월8일, 한국인 4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이 단속을 피하다 숨진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씨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청와대 사랑채까지 오체투지로 행진했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시민사회단체 등은 딴저테이씨의 죽음이 ‘토끼몰이식’ 단속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혜찬 스님은 이날 오체투지에 앞서 “단속 과정에서 단속원들이 (신분을) 위장하고 토끼몰이라는 방법을 썼다는데 이주노동자는 토끼가, 짐승이 아니다”라며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법에 의해서, 토끼몰이식 단속에 의해서 죽임당하는 일이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딴저테이씨는) 스물다섯밖에 안 된 노동자다.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느냐”며 “함정단속, 토끼몰이 단속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를 맡은 경찰과 단속의 책임이 있는 법무부의 태도가 지나치게 안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졌다. 딴저테이씨 단속 과정의 과실 여부를 수사하던 경찰은 지난달 31일 딴저테이씨가 발을 헛디뎌 추락한 것으로 보고 단속반에 대해 ‘혐의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법무부는 딴저테이씨가 사망하고 며칠 뒤인 9월20일 “불법체류 외국인이 건설업 등에서 국민 일자리를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의 ‘불법체류취업 외국인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활동가는 “이렇게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건설업계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한 것, 아무런 반성과 사과도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봉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앞으로도 고용허가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근본 대책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권은 촛불 정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주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미얀마 이주노동자 딴저테이 살인단속 무혐의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책위는 이달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단속반이 찼던 바디카메라 영상 원본을 제출받았다고 하는데, 이런 자료들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며 “실제로 사건 현장의 창문 밖은 비좁은 통로 너머 바로 낭떠러지였다. 이런 곳에서 기습적인 토끼몰이식 단속을 벌인 것이 과연 딴저테이씨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부 대책에 대해서도 “건설업의 고용불안은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과 70%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이득을 얻는 건설업체들과 이를 방조하는 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며 “서민 일자리 보호라는 거짓말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 한국 사회에 발언권을 제대로 가질 수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희생양 삼는 기만적인 행태를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인권기구들도 이 사건 규명을 위해 나선 상황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22일 이 사건을 직권조사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유엔(UN) 인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 대응 시민사회공동사무국’도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적인 단속 문제와 관련해 이주인권단체들은 올해 8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으로 인해 사망한 미얀마 노동자의 문제를 위원회에 적극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민정 박윤경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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