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배명복 칼럼] '문재인 골프'에 담긴 요즘 저잣거리 민심

배명복 입력 2018.11.20. 00:32 수정 2018.11.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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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엘리제 궁 정부라면
한국은 청와대 정부
말로는 포용과 협치 외치면서
당과 정부 위에 군림하며
독주하는 것이 문제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지난주 친구 몇 명이 모인 저녁 자리에서 한 친구가 ‘문재인 골프’를 아느냐고 물었다. 네 명이 한 조를 이뤄 라운드할 때 적용하는 내기 골프의 최신 규칙이라고 한다. 그 친구 설명은 이렇다. 각자 10만원씩 내서 모은 40만원의 상금을 갖고 출발해 각 홀이 끝날 때마다 10만원을 성적순으로 나눠 갖는다. 네 홀을 돌고 나면 상금은 바닥난다. 그때부터는 돈을 딴 사람들로부터 매번 상금을 거둬 홀마다 나눠 갖는 식으로 18홀까지 진행한다.

골프도 안 치는 문 대통령 이름을 딴 내기 골프? 그 자체로 난센스다. 이 방식대로 경기를 할 경우 원만한 진행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골프가 술자리 안줏거리로 회자(膾炙)되고 있는 이 세태는 뭘 말하는 걸까. 일단 있는 돈 다 쓰고 나서 나중 문제는 가진 자로부터 빼앗아 해결하면 된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이라고 냉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 아닐까. 농담 같은 얘기에 정색할 건 아니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사회 일각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최근에 만난 한 친구는 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라면 치를 떨었던 그 친구는 광화문 촛불집회에도 열심히 나갔었다.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상당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불통’에 단단히 화가 나 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해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더니 ‘자기 사람’만 쓰는 모습에 너무 실망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 의견에는 귀를 막고, 자기 생각대로만 밀어붙이는 ‘고집불통’에서 박 전 대통령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는 말까지 했다.

소득주도 성장을 핵심으로 한 경제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한 책임을 물어 문 대통령은 얼마 전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경질했다. 정책실장에는 자신의 최측근이자 ‘왕(王) 수석’으로 통하는 김수현 전 사회수석을 임명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그 사람은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결국 자기 뜻대로 밀어붙였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아집과 독선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다가는 부러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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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 대통령을 보면 촛불을 들었던 자신의 열성 지지자들만 보고 가기로 작정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 모두가 ‘문빠’는 아니다. 대한민국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우국충정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문빠’만 믿고, 그들에 의지해 국가를 경영한다면 그것은 그가 강조하는 ‘포용국가론’에 맞지 않을뿐더러 위험하다. 지난해 대선 때 문 대통령의 당내 유력 경쟁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정치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몰린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만 볼 수 있을까. 잘못에 대한 추궁과 처벌은 당연하지만 홍위병식 여론몰이가 돼서는 곤란하다.

북·미 대화가 지지부진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도 제자리걸음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의 활로를 찾는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도 흔들리고 있다. 경제는 갈수록 악화일로다. 이 기회를 틈타 야권은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나의 정체성은 ‘반문(反文)’인데 당신의 정체성은 뭐냐”고 당 대표에게 따지며 달려드는 야당 의원까지 등장했다. 문 대통령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편 가르기식 프레임을 자기 정체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이자 코미디다. 반대하는 이유가 정체성이 돼야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입으로는 포용과 협치를 말하면서 발로는 독주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국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 광범위한 개혁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율은 20%대로 추락했다. 지지율만 놓고 보면 아직 문 대통령이 월등히 높지만 하락하는 추세로 보면 안심할 건 아니다.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이 곤경에 처한 이유는 같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독주하고 있다면 마크롱은 엘리제 궁을 중심으로 독주하고 있다. 한국이 청와대 정부라면 프랑스는 엘리제 궁 정부다.

출구는 하나뿐이다. 진짜 협치를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막강하고 비대한 청와대 조직으로 당과 정부 위에 군림해선 협치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열성 지지층에 기대는 운동권 정치의 구태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국회를 존중하고, 여당과 내각에 힘을 실어줘야 야당도 여당 및 내각과 협력을 모색하게 된다. 모든 걸 청와대가 틀어쥐고 흔드는 상황에서 야당이 여당이나 정부와 머리를 맞대려 할까. 정당 대표들 불러 밥 먹고 환담한다고 협치가 되는 게 아니다. 청와대부터 힘을 내려놓아야 한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