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세력 번번이 정책 발목.. '단단히 화났다'는 文대통령

황대진 기자 2018. 11. 2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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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노동위, 민노총 없이 출발.. 靑·진보진영 관계 급랭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노총 참여 없이 사회적 대타협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출범시키기로 한 것은 대화를 거부하는 민노총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당은 물론 문 대통령이 직접 민노총을 수차례 설득해왔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에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난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민노총은 21일 총파업을 예고했고 다음 달 1일 '전국민중대회'를 통해 탄력근로제 확대를 좌절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FTA, 이라크 파병 등의 문제로 지지층이 이반하는 과정을 지켜본 문 대통령이 과연 노동계와 정면 대결하는 승부수를 던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민 깊은 文 대통령

청와대는 오는 22일 민노총 없이 경사노위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민노총 참여를 기대했지만 민노총이 대화를 거부하고 투쟁을 선택한 만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민노총은 지난해 문 대통령과 만나기를 거절했고, 올 들어 2차례 만났지만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한 상태다. 문 대통령으로선 최대한 설득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순방길에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책을 읽고 공감과 소통에 대해 고민했다고 했는데 민노총에 대한 고민도 들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19일 페이스북에 "내가 생각했던 공감이 얼마나 얕고 관념적이었는지 새삼 느꼈다"고 썼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주요 지지층과 부딪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인터넷 전문 은행에 대한 '은산(銀産) 분리' 완화, 원격의료 도입 등을 추진했지만 민노총 등은 "친(親)대기업 노선"이라며 반발했다. 청와대는 "중요한 것은 무슨 원칙이나 주의(主義)가 아니라 국민 삶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이라고 했지만 여당 의원들까지 나서서 반기를 들었다. 원격의료법은 아직 처리되지 못했다.

◇盧 정부 시절의 '트라우마'

문 대통령은 이런 일을 10여 년 전 노무현 청와대에서 겪었다. 노무현 정부가 지지층이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다가 어떤 비판을 받고 어떤 길을 갔는지 지켜봤다. 노 정부의 이라크 추가 파병은 지지율을 20%대까지 끌어내렸고 좌파 진영이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미 FTA 체결 추진 때는 민노총은 물론 민변, 참여연대 등이 모두 나서서 "망국적 협약"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상황에 대해 책 '운명'에서 "진보 진영이 영원한 소수파로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와 국가 경영에 대해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미 FTA 체결은 당·청 갈등의 도화선이 됐고, 결국 열린우리당은 노 전 대통령과 결별했다.

민노총 등은 이번에도 대규모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는 촛불 민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행하는 행태까지 보인다"며 "수많은 과제가 적폐 세력의 방해로 낮잠을 자고 있다"고 주장했다.

◇갈림길에 선 文 대통령

문 대통령 입장에선 경제 난국 타개를 위해 규제 혁신과 노동 개혁이 절실하다. 그래서 민노총을 빼고 경사노위를 출범시키기로 한 것이다. 일단 '전진 앞으로'를 외쳤지만, 탄력근로제 확대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 민노총의 반대를 뚫고 정부 입장을 관철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고용노동부가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해 따로 정부안을 내지 않기로 한 것도 노동계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는 경사노위에서 타협점을 찾기를 기다린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은 은산 분리 완화 등 규제 완화 법안 일부는 뜻을 관철했지만 카풀, 원격의료 등 다른 규제 혁신 정책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지지층 반대를 무릅쓰고 국익을 생각해 노무현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촛불 지분'을 고려해 민노총 요구를 들어줄 것인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지금은 노 정부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과 매우 가깝고, 정부 정책에도 호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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