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소비] '봉투살림' 덕분에 빚 없이 살게 됐다

최다혜 입력 2018. 11. 20. 20:09 수정 2019. 5. 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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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손해 없는 절약, 즐겁게 하는 법

[오마이뉴스 글:최다혜, 편집:이주영]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부부는 맨땅에 헤딩하며 자산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물려받은 재산이 없기에, 오로지 부부의 알뜰함에 의지해야 한다. 출발선에 깔고 앉은 집 한 채라도 있었다면 돈에 관심이 덜 했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쉽지 않다. 오히려 부부의 힘으로 절약하고 저축하며 한 푼 두 푼 모으면서 짜릿한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성취감에 더해, 전에 없던 경제관념도 갖추게 됐다.

'저 돈에 관심 많습니다'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월세 4만 원짜리 22평 작은 복도식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해 봤기 때문이다. 직접 아껴서 모아 봤기에 부자는 약한 사람을 괴롭혀 부를 쌓는 사람이 아닌, 합리적 미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유아 매트 두 장이면 가득 찼던 신혼집 거실
ⓒ 최다혜
가계부는 물론이고 봉투살림, 무지출 도전, 중고물품 판매하기, 냉장고 파먹기, 불필요한 물건 비우기, 자투리 적금. 절약하는 주부들이라면 한 번씩 해 본다는 것들을 다 따라해 봤다.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역시 몸에서 거부 반응부터 왔다. 격하게 피곤했다. 늘 생활비를 염두에 두며 소비하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아껴서 모아봤자 10만 원 더 저축하는 거지.'

고작 10만 원 더 늘어날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0만 원을 더 모으려면, 소비 체질을 바꿔야 했다. 하루 지나면 잊어버릴, 그저 그런 끼니를 때우는 외식을 줄였고, 호기심에 이것저것 사들이는 일도 줄였다.

'고작 소비 체질 바꾸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해? 외식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조금 더 쓰고 살자. 그래봤자 10만 원이야.'

조금 더 쓰고 편하게 살자는 마음도 들었다. 맞다. 당연한 말이다. 조금 더 써서 편하게 살 수 있다면, 선뜻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만족스러운 소비일 때는 지출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외식 몇 번 더 한다고 행복하지 않았고, 집에 물건이 많아지면 짐이 될 뿐이었다. 조금 더 쓴다고 해서 편해지지 않는다는 걸 안 다음에는 가능한 지갑을 닫았다. 특히 외식, 카페, 옷, 키즈카페가 그랬다.

하루 한 끼, 일주일에 다섯 끼 이상을 외식했을 때 몸은 편했다. 그런데 아이들 면역력이 떨어지는 게 눈에 띄었고, 우리 부부의 속도 불편했다. 결코 편하지 않았다. 옷 한 벌 더 산다고 좋지 않았다. 결국 입는 옷만 입었기 때문이다. 

키즈카페에 가면 아이들도 좋았지만, 가서 먹게 되는 온갖 과자와 젤리 때문에 죄책감만 잔뜩 짊어지게 됐다. 아이들 손발에서 땟국물이 나올 땐, '나 편해지자고 데려갔구나' 싶었다. 키즈카페도 줄일 수 있으면 줄여야 했다.

돈에 좌우되지 않는 삶

푼돈을 모으면서 소비 체질을 바꿨다. 더 썼을 때 행복해지는 소비와 독이 되는 소비를 구분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옷보다 책을 사고, 외식보다 식재료를 사고, 키즈카페보다 공원과 도서관으로 아이들을 데려갔다. 책, 정성스러운 집밥, 공원, 도서관. 꿈꾸던 우아한 삶을 절약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고작 10만 원을 더 저축하려고 했던 일이다. 푼돈을 모으려는 노력이, 삶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았다. 빚 없는 삶에 만족했고 돈 걱정이 줄었다. 미래에 대한 통제권은 부부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됐다.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지'라며 시작조차 안 했다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돈 쓰는 도전 말고, 돈 모으는 도전은 실패해도 별일 없다. 마치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쓰기 전과 다른 삶을 사는 것과 같다.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시도다. 오히려 절약을 하기 전보다 반드시 한 걸음 더 나아져 있을 것이다. 처음이 힘들다. 습관으로 잡힌 후부터는 재미삼아 놀이처럼 절약하고 집밥을 한다. 그렇기에 시작해야 한다.

가계부를 쓰고, 지출 통제를 시작하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삶을 돈으로 치장하려던 과거보다, 돈을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짜릿함을 느끼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삶의 방향키를 손아귀에 쥐는 경험을 해 봤으면 좋겠다.

절약은 실패해도 별일이 없다. 절약 훈련의 첫 출발로 내가 하고 있는 '봉투살림'에 대해 소개해 보려 한다. 모쪼록 읽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진심으로 글을 썼다.

봉투살림, 이것만 알면 끝
 
 봉투살림 준비물.현금화한 식비, 포스트잇, 현금을 나눠 담을 곳(필자의 경우 통장수첩 사용)
ⓒ 최다혜
 
 잔액 봉투
ⓒ 최다혜
기본 준비물 : 열흘 치 식비 현금, 통장수첩(봉투), 잔액 봉투
선택 준비물 : 접착메모지

1. 열흘 치 식비 현금을 준비한다

한 달 식비 예산을 계산한다. 4인 가구인 우리 집 한 달 식비 예산은 45만 원. 하루에 15000원이다. 하루 식비 예산을 열흘 치(15만 원) 현금화한다.

2. 통장수첩(봉투)에 넣는다

현금화한 식비 예산을 봉투에 하루씩, 혹은 이틀씩 나눠 담는다. 나는 집에 잠자고 있던 통장수첩을 활용하고 있다.

봉투살림의 원리는 두 가지다. 첫째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아닌 '현금' 쓰기. 둘째는 한 달 예산이 아닌 하루 예산으로 움직이기. '현금'을 '하루 예산'으로 나눠 담을 수 있다면, 봉투든, 통장수첩이든, 지퍼백이든, 클리어파일이든, 생활비 달력이든 같다. 편한 대로 선택하면 된다.

내가 통장수첩을 쓴다고 굳이 통장수첩을 사진 않길 바란다. 집에 있는 거로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미 있는 물건을 이용해서 '봉투살림'을 시작해야 한다. 봉투살림 준비물 챙기기부터 소비 욕구를 꾹 눌러 참는 시작이다.

현금을 뽑아 봉투에 만 원 한 장씩 나눠 담는 순간, 우리 뇌는 기억한다.

"하루 예산은 15000원이다."

계좌 잔액은 잘 잊어버리는 데 비해, 현금 잔돈만큼은 수월히 기억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제부터 머릿속에 '15000원'이 둥둥 떠다니게 된다. 마트 갈 때 실수로 현금을 들고 오지 않아도, '15000원 안에서 써야지' 의식한다. 넉넉한 액수가 아니다 보니, 물건을 허투루 사지 않는다. 꼭 필요한 재료만, 계획적으로 사게 된다.
 
 하루 예산을 현금으로 나눠 하는 봉투 살림
ⓒ 최다혜
 
식재료를 메모해서 마트로 가는 게 알뜰한 장보기 정석이다. 그러나 매번 식재료를 안 적어갈 뿐더러, 적어 가도 결국 사고 싶은 게 생긴다. 문제는 사서 잘 쓰면 되는데, 집에 오면 예쁜 쓰레기가 되곤 한다. 돈 쓰고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루 식비 예산 안에서 장을 보게 되면, 식재료 메모 후 장을 봤을 때보다 더 절약하게 된다. '소비의 제한선'이 생기니, 그 이상 낭비하지 않게 된다. 하루 예산으로 작게 쪼개진 식비 안에서 식재료를 사거나 외식을 한다.

3. 잔액 봉투를 마련한다

쓰고 남은 돈을 잔액 봉투에 넣는다. 잔액 봉투에 있는 돈은 다음 식비 예산에 더해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15000원 중 1만 원만 쓰고 5천 원이 남았다고 하자. 그러면 이 5천 원 덕분에 다음 날 식비 예산은 2만 원이 된다.

잔액 봉투에는 매일 '잔액'과 '누적 잔액'을 적는다. '잔액'은 하루 15000원 안에서 소비 후 얼마가 남았는지를 뜻하고, '누적 잔액'은 하루의 잔액들이 쌓여 지금까지 얼마 남았는지를 뜻한다. 마이너스가 될 때도 있고, 플러스가 될 때도 있다. 보통 카드를 들고 나간 날, 마이너스가 된다. 현금은 과지출을 막는 중요한 수단이다. 

4. 접착 메모지에 기록한다

접착 메모지에 그날 샀던 물건의 목록을 적고, 얼마를 썼는지, 그리고 예산 안에서 얼마가 남았는지를 확인한다. 식비 전용 미니 가계부를 쓴다 생각하면 된다.

가계부 쓰듯 적는 이 과정을 안 해도 된다. 이미 잔액 봉투에 했기 때문이다. 살림을 머리 아프게 하지 말자. 번거로워지고 귀찮아지는 순간, 더 안 하게 된다. 최대한 각자의 취향에 맞춰, 습관으로 이어나가는 게 더욱 중요하다. 그렇지만 매일매일 가계부를 적으면서 다음 날은 더욱 나아지듯, 따로 메모하면 다음 날 소비가 더 섬세할 수 있다.

봉투살림 덕분에 깨달은 '필요'
 
 봉투살림 포스트 잇
ⓒ 최다혜
 
봉투살림을 시작하기 전에는 한 달 예산을 짜놓고 생활해 왔다. 그러나 한 달 식비 '60만 원'을 책정한 게 민망할 정도로 일단 질렀다. 예산이 있으나마나, '이거 필요해!' 중얼거리며 소비했다. 따져 보면 하루 2만 원씩 쓰면 된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알았지만 의식하지는 않았고 체크카드를 죽 긁었다. 

필요하니까 사야 했다. 그뿐이었다. 결국 한 달 뒤 가계부 정리할 때,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심정이었다. 후회하거나, 안도하거나. 늘 둘 중 하나였다. 가계부를 쓰기 전까지는 내가 후회할지, 안도할지도 모르고 깜깜했다.

한 달 예산은 있으나, 소비의 기준은 늘 '필요'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출은 언제나 정당했다. 필요한 만큼 썼더니 예산을 초과했거나, 필요한 만큼 써도 예산 안에서 썼거나. 예산을 초과했을 때 속이 쓰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고? 필요해서 샀기 때문이다.

그나마 예산을 책정하고, 가계부를 쓴다는 자체가, 지나친 지출을 막아주긴 했다. 그러나 봉투살림은 '예산 책정+가계부 기록'보다 더 힘이 셌다. 머릿속에 하루 치 식비 '15000원'이 둥둥 떠다니는 건 엄청난 변화였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필요'에 대한 생각이었다.

봉투살림을 시작한 첫날,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좋아하는 팽이버섯 3봉, 느타리버섯 2봉, 총알새송이버섯 1봉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합치니 5천 원 정도였다. 남은 돈은 1만 원 정도. 역시 고기가 빠질 수 없다. 만 원 안에서 고기를 사기로 했다. 돼지 목살을 들었다. 늘 사던 거였다. 돼지 앞다리나 뒷다리도 쫄깃한 맛이 다르지 않음을 알지만, '목살'이 주는 후광이 있다. 대신 식비 15000원을 살짝 초과해야 했다. 그렇지만 난 목살이 '필요'했다.

목살을 냉큼 집어 가려던 중 가격 행사 중인 돼지 앞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목살보다 양도 두 배, 하루 예산 15000원 안에서 해결할 수도 있었다. '15000원'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아무렇지 않게 목살을 내려놓고, 돼지 앞다리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날, 된장을 진하게 풀고, 통마늘과 생강을 과감하게 털어 넣어 보드라운 수육을 해 먹었다. 온 가족이 맛있게 먹었다. 목살의 '필요'가 진짜 '필요'는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돼지 앞다리 사건뿐이랴. 봉투살림하면서 진짜 '필요'에 대한 선택지를 자주 접했다. 무엇보다 카페 발걸음을 줄인 일이다. 아늑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기분 좋다. 그렇지만 '매일' 그럴 필요는 없었다. 행복은 '습관'이 아니라 '기대'다. 카페 커피로 행복해지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매일 가는 카페는 행복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됐다. 크게 행복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안 가는 날 허전했다.

이제 카페를 주말에 가족 나들이로 간다. 애들은 모래놀이하는 동안 우리는 바다 보며 커피 한잔 하는 아지트로 삼는다. 그게 진짜 내게 '필요'한 행복이었다.
 
우리는 "이거 진짜 합리적으로, 굉장히 고민 많이 했어"라면서  사는데, 사실 그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사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살 이유를 찾을까 하는 고민이에요. 그래서 그 이유를 다행히 찾으면 편한 마음으로 충동구매를 하는 거고요, 그 이유를 못 찾으면 불편하게 충동구매를 하는 거지요. - 정재승 <열두 발자국>

절약의 기쁨
 
 절약 덕분에 아이와 더 자주 가게 된 공원
ⓒ 최다혜
 
2년 전 봉투살림을 시작했을 때는 힘들었다.

'이렇게까지 아껴 살아야 해?'

돈을 써서 물건을 소유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오염된 착각'을 씻어버리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절약하는 삶이 흥미로우면서도, 괜히 피곤하고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계좌 탈탈, 지출 여왕'으로 살던 과거를 청산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돈을 쓰고, 물건을 갖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느끼는 삶을 여전히 살고 있었을 거다.

봉투살림이 몸에 익으니, 이젠 '필요'와 '불필요'를 가릴 수 있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물건을 사기 위해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억지 필요', 변명이었을 뿐이다. 그저 난 돈을 쓰고 싶을 뿐이었다.

하루 예산 15000원이 없었다면 여전히 잘 거르지 못 했을 거다. 산다고 기분 좋을 것들도 아닌데, 충동구매를 했을 거다. 이젠 충동구매를 줄여 차곡차곡 저축한다. 이게 진짜 재밌다. 물건 사는 것보다 더 재밌다. 빚 없이 사는 21세기 천연기념물 현대인이 될 수 있어 즐겁고,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원하는 미래를 내 힘으로 계획할 수 있다는 게 설렌다.

더욱 기쁜 사실은, 이 '봉투살림'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거다. 많은 분들이 시작해서, 경제적 자유를 얻고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설렘을 얻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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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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