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검토위원장 "국어 31번, 이렇게 어려워할 줄은.."
검토하면서도 지장없다 판단.. 아이들에 미안하고 자괴감 들어"
"어렵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어려워할 거라곤 예상을 못 했어요. 결과적으로 출제진, 검토진 다들 마음이 안 좋고 미안하기도 하고 자괴감도 듭니다." 지난 15일 치러진 수능 시험에서 논란이 된 '국어 31번'에 대해 검토위원장을 맡았던 경인교대 김창원 국어교육과 교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31번은 동서양의 우주론, 만유인력, 질점 등 생소한 개념들이 버무려진 데다 지문도 길어 '고교 수준을 벗어난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검토하면서 이게(31번이) '쉽지 않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45문항을 난도(難度)에 따라 최상·중상 등으로 나눠 안배했는데, 31번은 애초 '킬러 문항'(최고난도)으로 냈다는 것이다. 이번 수능은 출제진 300여 명, 검토진 200여 명이 냈다. 출제진이 낸 문제는 대부분 고교 교사인 검토진들이 살핀다. 31번은 "어려운 축에 속하지만 문제 풀이 근거가 자료에 다 들어 있으니 꼼꼼하게 확인하면 푸는 데 지장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수능 이후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고 하는 반응이 나오자 김 교수는 "(난도를) 정확히 맞추기가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난도 조절의 어려움을 '사격의 영점 맞추기'에 비유했다. "사격에서 크리크(영점 조절 장치)를 조금만 옮겨도 총알 방향이 확 바뀌듯, 선택지 하나만 바꿔도 정답률이 크게 달라진다"고 했다.
국어 영역은 3~4년 전부터 비(非)문학 지문 길이가 길어지고 문제도 어려워져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수험생들이 불만이다. 김 교수는 "변별력도 필요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주어진 시간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느냐'를 정하기는 참 어렵다"고 했다. 김 교수는 "아이들을 괴롭히려 문제를 내진 않는다"면서 "경쟁 구도이긴 하지만 시험지에 적힌 '필적 확인 문구'처럼 모든 아이가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문제를 냈다"고 했다. '필적 확인 문구'는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수험생들이 따라 쓰게 하는 것이다. 올해는 김남조 시인 '편지'의 첫 구절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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