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아기 버리려고 배 타고 16시간 걸려 올까요?"

박보희 기자 2018. 11. 2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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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축복과 절망 사이] ⑧ 김윤지 비투비 대표 인터뷰 "다양한 가족 형태 존중받는 사회 되길"
사진=김윤지 비투비(BtoB) 대표

"정말 '버려진' 아기들일까?"

'베이비박스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들을 언급할 때 대부분 사람들은 '버려진' '원치 않는' 등의 단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김윤지 비투비(BtoB) 대표는 세간의 인식에 의문을 던졌다. 2013년 베이비박스에 대한 기사를 보고 처음 이곳을 찾은 뒤 베이비박스에 온 부모들의 사례를 접하면서다.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왔대요.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는 비행기를 못타니까. 낙태하지 않고, 또 태어난 아기를 배를 타고 16시간 걸려 베이비박스까지 데려온 거죠. 이 아기가 정말 버려진걸까요? 굳이 버리려했다면 이렇게 어마어마한 노력을 들여야 했을까요?"

의문은 이곳에 온 부모들은 누구일까를 찾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들과 그들의 부모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512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이곳을 찾은 부모들은 대부분 사회 시스템 밖에 있는 취약계층이었다.

◇가난·장애·무지…그리고 대물림

김 대표의 '베이비박스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이곳을 찾는 부모들의 대다수는 20~25세 청년들이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집이 없어 PC방이나 찜질방이나 고시원, 자동차, 친구 집 등에서 생활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집이나 가정이 없는 경우 부모나 아기 아빠가 가정폭력을 행사해 집에서 가출했거나 결손가정에서 자라 홀로 있는 경우가 주를 이뤘다. 부모가 있어도 가난하거나, 아기를 반대해 지원받을 수 없는 이들이 많았다. 친구와 함께 아이를 키우다 도저히안돼 베이비박스를 찾은 미성년자, 친구 집에서 아기를 낳고 119를 불러 탯줄을 자른 엄마도 있었다.

임신과 피임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임신한 것을 모르고 있다가 8개월만에 양수가 터져 친구의 도움으로 아기를 낳은 미성년자도 있었다. 이는 이들이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책임감이 없다기보다 가정과 학교 등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장애가 있으면 상황은 더욱 어려웠다. 임신 중 아기에게 장애가 있는 것이 확인되자 병원에서는 아기 상태가 위험해 출산이 불가능하다며 다른 곳으로 갈 것을 종용했다. 입양기관이나 복지시설 등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아기는 장애가 없더라도 부모나 다른 가족에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입양기관에서 거절당한 사례도 있었다.

미혼이나 별거 등 '전형적인 혼인' 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나 이곳을 찾은 경우도 107건에 달했다. 상담 기록이 없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이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폭행 등 원치않은 성관계로 아기를 낳은 경우도 14건 발견됐다. 성폭행으로 임신했는데 형편이 어려운 부모에게 말하지 못해 홀로 출산한 10대 미혼모, 업무 중 고객에게 성폭행을 당해 출산한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대부분은 이같은 상황들이 중첩돼 있었다. 미성년자인데 집단 강간으로 임신돼 장애가 있는 아기를 낳거나, 아기 아빠의 폭력 때문에 아기와 집을 나와 찜질방을 전전하는 경우 등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대물림되고 있었다.

"저의 부모님은 사고로 저를 가지셨다. 나도 사고쳐서 아기를 낳게 됐다. 아이가 저의 모습과 같다고 느껴져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혼자 키워봤지만 상황이 악화돼 키울 수 없다. 절대 버리지 않는다. 꼭 찾아갈테니 그때까지만 부탁드린다." (베이비박스에 아기와 함께 남겨진 자필 편지)


◇"베이비박스 존폐 논란 넘어 '부모가 아기 키울수 있도록 하는 방법' 고민해야"

김 대표는 이들에게 베이비박스가 '임시보호소' 역할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혼모시설에 연락을 했지만 "입양을 보낼거냐"는 재촉에 베이비박스를 찾아와 아기를 맡기고 몇달 후 아기를 다시 찾아가 직접 키우고 있는 한부모도 있었다. 다른 방법을 끝내 찾지 못한 부모들이 베이비박스를 찾았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이들이 아기를 낳고 충동적으로 베이비박스를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었어요. 이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본 뒤 최후의 선택으로 이곳에 온 거예요."

분석 결과,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긴 부모 중 16%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아기를 찾아갔다. 14%는 정부를 통해 아기를 되찾아갔다. 보육 시설에 맡겨진 아기를 찾아 데려갔다는 얘기다.

"다시 찾아가는 비율이 30% 밖에 안 된다고 볼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30%나 되는 부모들이 아이를 되찾아가 갔다고 봐야 해요. 정말 키우려는 의지가 있는 거죠." 김 대표는 아기를 키울 의지가 있는 이들이 직접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논란은 수년째 똑같아요. 베이비박스의 존폐 문제죠. 그 사이 베이비박스를 찾은 아기들은 1300명을 넘어섰어요. 하지만 고민해야 할 진짜 문제는 어떻게 하면 베이비박스를 찾는 상황을 줄이고, 아기를 키울 수 있게 도울까여야 해요."

◇"다양한 가정 형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되길"

김 대표는 부모들이 대부분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쉽게 각종 지원 정보를 찾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른바 '품(puum)' 프로젝트다. 앱에서 각 부모의 상황에 맞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원책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막상 찾아도 이해가 안 가고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정부 사이트에 나온 설명을 봐선 내가 지원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알 수 없었어요. 쉽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모바일 솔루션을 만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지금 개발 중이에요"

'품'에는 △주거가 없는 부모들이 갈 수 있는 전국의 기관 정보 △물품, 일자리 등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 △긴급 지원이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에 관한 정보 등이 담겼다. 출산과 육아, 자립에 관련된 정부, 기업, 비영리 단체 등을 포괄한 각종 정보들을 '원스톱'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실제 전국에 위치한 관련 기관들을 직접 방문해 정보를 취합하고 있다. 내년초 오픈할 계획이다.

김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런 과정을 통해 부모와 부모, 아기와 아기를 연결해주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이들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 출산·양육하는 경험을 통해 서로가 자립에 대한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하겠다는 것. 이를 아기를 뜻하는 영단어 '베이비(Baby)에서 따서 'BtoB'라는 이름에 담아냈다.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아주고, 정보를 찾는 시간을 줄여 실질적인 삶의 질을 올려주는 것이 목표에요. '해마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들 200여명과 매년 보육원으로 가는 아이들 4000여명의 절반이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자, 부모들을 도와 더 많은 아기들이 건강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자'는 거에요. 내 아이를 키우고 싶은 부모가 사랑을 쏟을 수 있게 하고, 아기가 가정에서 사랑 받으며 자랄 수 있게 하자는 거죠. 무엇보다 이를 통해 비혼 한부모들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하고 싶어요.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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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희 기자 tanbbang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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