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홍기가 뭐기에.. 中 마라톤 대회 빗나간 애국주의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2018. 11. 2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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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中국기 건네려 난입.. 선두 경쟁하던 中선수 우승 놓쳐
국기 떨어뜨렸다고 비난도 봇물
18일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에티오피아 선수와 선두 경쟁 중인 중국 허인리(오른쪽) 선수에게 한 여성 자원봉사자(가운데)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건네 주려 하고 있다. /CCTV


마라톤 결승선을 바로 눈앞에 두고 치열하게 선두 다툼을 벌이는 선수에게 막판 스퍼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중국의 한 여성 마라톤 선수가 결승선 직전 자원봉사자가 건넨 오성홍기(五星紅旗)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놓쳤다가 대중의 혹독한 애국심 검증 논란에 휩싸여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외국 선수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던 이 여성 마라토너는 무리하게 오성홍기를 쥐여주려는 자원봉사자 때문에 레이스를 방해받아, 결국 우승도 놓치고 국기도 놓쳤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한 마라톤 대회에서 중국 선수 허인리(何引麗)는 결승선을 500여m 앞두고 에티오피아 선수와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접전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한 여성 자원봉사자가 불쑥 도로로 나와 허 선수에게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건네주려다 실패했다. 그러자 이 자원봉사자는 국기를 들고 허 선수를 필사적으로 쫓아가기 시작했다. 생중계 중이던 중국 CCTV 헬기 카메라에 그 모습이 고스란히 잡혔다. 해설자는 "쫓아가서는 안 된다"라며 혀를 찼다.

뒤쪽에서 국기를 든 자원봉사자가 쫓아오는 가운데 이번엔 결승점 앞 100m 지점에서 다른 자원봉사자가 불쑥 튀어나와 허 선수에게 기어이 국기를 건넸다. 하마터면 에티오피아 선수도 자원봉사자와 충돌할 뻔했다. 오성홍기를 왼손으로 받아든 허인리는 큰 국기를 들고 뛰는 게 버거운 모습이었다. 몇 초 뒤 결국 국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허인리는 이때부터 에티오피아 선수에게 뒤처지기 시작했고, 결국 5초 차이로 준우승에 그쳤다.

레이스 직후 일부 네티즌이 허인리가 국기를 놓치는 장면만 담은 동영상을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에 올렸다. 이들은 "국기를 땅바닥에 내던진 것은 국기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며 "성적이 국기보다 중요하냐"고 비난했다. 허인리는 대형 오성홍기를 몸에 두르고 시상대에 올랐지만 웨이보에선 "국기가 비에 흠뻑 젖은 데다 팔이 뻣뻣해 떨어뜨린 것이지 절대 내던진 게 아니다. 정말 죄송하다"라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허인리가 국기를 받아들고 뛰게 된 전후 맥락을 보여주는 CCTV 중계 동영상이 온라인에 추가로 오르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선수가 이를 악물고 뛰는 시점에 사소한 방해도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CCTV 해설자의 비판이 담긴 동영상을 접한 네티즌의 분노는 이번엔 자원봉사자들의 무분별한 애국주의로 향했다.

논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그토록 무리하게 국기를 건네려 한 이유가 1~3위를 기록한 중국인 주자는 반드시 중국 국기를 걸치고 결승선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는 방침 때문임이 드러난 것이다. 네티즌들은 "과도한 형식주의이자 가짜 애국" "레이스를 방해한 데 대해 두 선수에게 사과하라"며 뒤늦게 주최 측을 비난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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