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군 재판부, 성폭행 피해 여군에 "그때 상황 그대로 해보세요"

정희완 기자 2018. 11.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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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해군장교 항소심 2차 가해
ㆍ세세한 행동·진술까지 요구
ㆍ징역형 1심 뒤집고 무죄 석방
ㆍ정치권 등 “군사법원 폐지를”

군 재판부가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해군 장교의 항소심 재판에서 여군에게 피해 상황을 시연해보라고 요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 여군과 시민단체는 군 재판부의 명백한 2차 가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성폭력 가해 장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판결하면서 성범죄에 관대한 군사법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21일 “피해 여군은 진술의 신빙성을 증명하기 위해 항소심 법정에서 증언하는 가운데 피해 상황을 시연해보라는 반인권적인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는 가해자의 숙소 가구배치 묘사뿐 아니라 가해자가 어떻게 옷을 벗겼는지 증언하는 수모도 겪었다”고 했다. 여군이 수사기관과 1심에서 충분히 피해 상황을 진술했는데도, 항소심에서 피해 상황을 재현하고 세세한 진술을 요구받아 2차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앞서 해군 박모 소령과 김모 대령은 2010년 부하 여군 대위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강간치상)로 지난해 7월 구속 기소됐다. 박 소령이 상관이라는 지위와 피해 여군이 성소수자라는 점을 악용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군 검찰은 봤다. 여군은 성폭행으로 임신한 뒤 중절 수술까지 받았다. 여군이 지휘관인 김 대령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지만, 김 대령은 외려 여군을 강간했다는 게 군 검찰의 판단이다.

두 사람은 지난 4월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8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진행된 김 대령의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피해 여군에게 당시 상황을 재현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피고인의 변호인이 여군에게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여군이 답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됐다”며 “이에 여군 스스로 일어서서 일부 재현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소령과 김 대령은 지난 19일과 8일 항소심에서 각각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피해 여군의 진술 신빙성에 의심이 든다거나 폭행과 협박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군 검찰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이다.

군인권센터는 재판 결과에 대해 “군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무죄로 풀어주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유체이탈 판결로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준 군사법원을 즉시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군사법원이 성범죄를 관대하게 처벌하고 고등군사법원에서 감형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국방개혁 2.0의 일환으로 고등군사법원 폐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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