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오토칼럼] 자동차번호판 변경, 졸속행정이 되지 않으려면

모클팀 2018. 11. 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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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번호판 변경, 이번에는 정말 잘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전국번호판이 도입된 지 15년만에 자동차등록번호판 체계가 다시 바뀐다고 한다. 과거 지역별로 번호판을 부여하던 것에서 모든 지역을 통합하여 등록번호를 발급하게 되면서 가용한 번호 조합의 수가 2,200만개에 불과하게 되었고, 자동차등록대수가 2,000만대를 훌쩍 넘어서게 되자 발급 가능한 번호의 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자동차등록번호판 체계는 앞자리 숫자를 세 자리로 변경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내년 9월부터 시행된다고 하는데, 최근 국토부에서는 번호판의 디자인 변경에 대해 선호도 조사를 한다고 한다. 번호판 체계를 변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10여년 전에 변경된 번호판 디자인을 다시 바꾼다는 것이다.

전국번호판을 도입할 당시, 번호판 규격은 그대로 둔 채 지역 명칭이 사라진 자리에 글자체만 늘여 빈 공간을 채운 기형적인 디자인으로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3년여 만에 현행과 같은 형태로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그 당시의 아픈 기억 때문일까?

이번에는 단지 숫자 하나만을 추가하는 것일 뿐인데도 디자인까지 변경하겠다고 하면서 국민들을 상대로 선호도 조사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국토부에서 제안한 안들을 보면, 규격만 유럽형 번호판을 따른 것이 아니라 디자인까지도 유럽형 번호판을 따라가고자 애쓴 것처럼 보인다. 즉, 번호판 좌측에 세로로 띠를 넣어 태극문양과 KOR이라는 글자를 삽입하고, 한글과 숫자 사이에도 별도의 문양을 넣겠다는 것인데, 얼핏 보아도 유럽의 번호판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다른 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도의 본질은 무시한 채 외형만을 모방하는 것은 흔히들 말하는 ‘짝퉁’과 다를 것이 없다.

유럽의 번호판에서 좌측 푸른색 바탕의 띠는 EU기를 형상화 한 것으로 유럽연합 회원국에 등록된 자동차임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고, 하단에 알파벳은 국가기호를 나타낸다. 유럽연합이 출범하면서 국경간 이동이 자유롭게 되자 자동차등록번호판에 EU 표시와 국가 표시를 나타냄으로써 식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 번호판 가운데에 별도의 문양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디자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단부의 문양은 해당 차량의 정기 검사 완료 여부를 나타내는 일종의 필증으로서 검사가 완료되면 새로운 필증으로 교체하여 부착하여야 하고, 하단부는 차량이 등록된 주의 문양이라고 한다. 즉, 등록번호판만 보더라도 자동차의 등록여부뿐만 아니라 등록지역, 검사 완료 여부 등의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유럽의 자동차 번호판에 디자인 요소처럼 보이는 것들은 디자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각각 고유의 기능이 있고, 이는 자동차등록번호판의 본질적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정보 전달”이라는 역할에도 충실하다. 그런데 국토부의 안을 보면 “정보 전달”이라는 자동차등록번호판이 갖는 본연의 역할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통일을 대비해 국외로의 자동차 육로 이동까지 고려하여 등록번호판의 디자인을 변경하겠다는 복안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내에서만 운행되는 자동차의 번호판에 KOR이라는 국가 기호를 집어넣는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다.

게다가 숫자가 한 자리 추가되면서 자간과 여백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다 좌측에 삽입되는 띠로 인해 자간과 여백이 더욱 좁아져 번호판의 글자를 인식하기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이는 자동차등록번호판이 가지는 본래의 기능에도 오히려 역행한다.

최근의 전기자동차 및 수소전기자동차 전용 번호판의 경우에도 푸른색 바탕에 검은색 글자를 사용함으로써 시인성이 떨어지고 폭우에는 지워지기까지 하는 해프닝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자동차등록번호판의 기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단지 “보기 좋아 보이는” 디자인으로 변경하겠다고 하는 것이라면, 이는 또 다른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자동차등록번호판의 디자인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면, 자동차등록번호판이 가지는 “정보 전달”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변경되어야 한다. 차라리 독일과 같이 자동차 정기검사 완료 증명서나 자동차세 납세증명서 등을 보기 좋은 형태로 디자인하여 번호판에 부착하도록 하는 것이면 모를까, 지금 제시된 안과 같이 정보 전달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오히려 시인성까지 떨어뜨리는 형태로의 디자인 변경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법무법인 제하 변호사 강상구

* 강상구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을거쳐 현재 법무법인 제하의 구성원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자동차 관련 다수의 기업자문 및 소송과 자동차부품 기업 로버트보쉬코리아에서의 파견 근무 경험 등을 통해 축적한 자동차 산업에 관한 폭넓은 법률실무 경험과,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얻게 된 자동차에 대한 기술적 지식을 바탕으로 [강변오토칼럼]을 통해 자동차에 관한 법률문제 및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분석과 법률 해석 등을 제시하고 있다(skkang@jeh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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