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교통지킴이 안타까운 죽음..버스 승하차 대안 '절실'

허단비 기자 2018. 11. 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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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 불법주정차 특별관리구역인 광주 한 초등학교 앞. © News1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광주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70대 교통지킴이 할머니가 수학여행 차량에 치여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부분 초·중·고 학교에서 수학여행이나 차량을 이용한 현장 체험학습을 떠날 경우 주정차가 금지된 도로에서 승하차가 이뤄지는 만큼 '승하차 공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일 광주 북구 한 초등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지도를 하던 70대 할머니 A씨(76·여)가 전세버스에 치여 숨졌다.

가해 차량은 다름 아닌 학교 학생들이 타고 있던 수학여행 전세버스였다. 버스는 학교 정문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 불법 주정차돼 있었다.

사고는 버스가 학교 정문 앞 2차선(편도 2차선)에 불법 주정차된 채 아이들을 태운 후 막 출발하던 때 발생했다.

할머니는 줄지어 선 버스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자 1차선과 2차선 사이 도로까지 나와 교통지도를 하던 중 변을 당했다.

버스 운전자 B씨(55)는 "운전석이 높아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고, 앞차가 신호를 받고 출발하니 뒤따라갔다"고 진술했지만, 애초에 불법 주정차를 하지 않았다면 시야 확보와 신호 여부 등은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광주시, 전국 최초 '수학여행 안전대진단' 실시했지만…

지난 10월24일 오전 서구 치평동 전남고등학교 앞에서 이용섭 광주시장,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김규현 광주지방경찰청장, 고윤순 안전모니터봉사단 광주시연합회장 등이 가을 수학여행 안전대진단 현장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장휘국 광주시교육감 페이스북 갈무리)/뉴스1 © News1

광주시와 광주시교육청, 광주지방경찰청 등은 지난달 24일 전국 최초로 '수학여행 안전대진단'을 실시했다.

광주시가 전국에서 처음 도입한 정책으로 차량, 숙박 시설, 위생, 보험, 안전수칙 숙지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69개 학교를 대상으로 안전위험 요소의 시정 조치를 한 바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과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등은 이날 전남고등학교를 방문해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버스 차량 안전벨트 착용과 비상탈출 망치 위치 등 안전사항을 당부한 '수학여행 안전사고 예방수칙' 안내문을 나눠주고 기념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수학여행 안전대진단'은 다양한 분야에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이 시장의 의중이 반영된 유의미한 정책이었다.

버스 운전자의 음주운전 여부, 차량 청결 시설상태, 행정지시사항 위반 여부 등을 점검하고, 차량 내 안전벨트, 소화기, 방향지시등, 운행기록증 미부착 여부, 화재 발생 시 안전하게 대처하는 법과 식중독 예방 수칙까지도 안내했다.

하지만 이 시장과 현장 점검에 참여한 장휘국 시 교육감, 광주지방경찰청장, 광주서부경찰서장, 한국교통안전공단 광주전남본부장, 안전모니터봉사단 광주시연합회장 등 관계기관 대표 중 누구도 학생들을 '어디에서 태워야 하는지'는 지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학교 앞에서 불법 주정차된 차량에 학생들을 태우고 차 안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불과 한 달 전에 대대적인 현장 점검이 있었고 지금도 안전대진단 기간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고가 더 안타깝다.

광주시 공무원 김모씨(48)는 "세월호 참사 이후 여전히 '안전사회'로 가는 길에 부족한 점이 많다"며 "이번 사고를 단순한 교통사고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광주시교육청 현장 체험학습 매뉴얼도 구멍 '숭숭'

광주시에서 배부한 '수학여행 안전대진단'(위) 앞면, 광주시교육청에서 배부한 '2018 현장체험학습 운영매뉴얼' 갈무리. (광주시청, 광주시교육청 제공)/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이번 사고는 할머니나 버스 운전기사 개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교육행정의 시스템 문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학생 안전과 관련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광주시교육청의 행정에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광주시교육청은 217쪽에 달하는 '2018년 현장 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을 각 학교에 배부했다. 안전점검과 점검표를 포함해 활동별 응급조치 사항, 각종 관련 서식까지 총망라한 종합 안내서다.

하지만 이 매뉴얼에는 '불법 주정차 승하차'라는 사고 원인과 관련한 점검표는 없다.

안전점검 및 점검표의 출발지 관광버스 탑승 의무 체크란은 Δ운행기록증 부착 여부 Δ안전벨트 정상 조작 가능한지 Δ차량 내 불쾌한 냄새가 나는지 Δ버스 내 안전수칙을 설명했는지 Δ전원 탑승 여부 확인 등이 전부다.

승하차 지점도 도로가 아니라 학교 운동장 등 안전한 장소로 제한하는 규정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일부 학교는 운동장에 대형차가 진입할 수 없는 곳도 있다.

광주 환경단체인 에코 바이크 김광훈 사무국장은 "일차적으로 교육 당국의 책임이 크다"며 "통상적으로 도로에서 승하차해 왔다는 '무사안일주의'가 사고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학여행 등 버스 운행 시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승하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대형차가 운동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쿨존 교통지원사업' 인원 구성도 보완해야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 중인 어르신. (광주북구청 제공)/뉴스1 © News1

70대 교통지킴이 할머니는 정부 지원 노인일자리 사업인 '스쿨존 교통지원사업'에 참여해 어린이 교통지도를 해왔다.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들은 교통지도를 하고 월 27만원정도 정부지원을 받는다.

사고가 발생한 광주 북구에서 스쿨존 교통지원사업에 참여한 노인은 총 3614명이다. 지난해 광주시 전체에서 1만5899명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이다.

노인들은 소양교육 4시간, 직무교육 4시간, 안전교육 2시간만 이수하면 현장에 나가 교통지도 업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교육 2시간을 받고 현장에 나간 노인들에게는 노란조끼, 모자, 깃발만 주어질 뿐이다.

2인1조로 근무할 때 노인들로만 구성할 게 아니라 성비나 연령대를 조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김광훈 사무국장은 "이번 사고로 노인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통해 삶의 활력을 주는 노인일자리 사업이 위축돼서는 안된다"며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 등에 따라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며 "'안타깝다'고 애도하는 정도로 끝날 게 아니라 긴급하게 TF 등을 꾸려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eyond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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