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미로 찾기' 한·일관계

허영섭 2018. 11.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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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또다시 벽에 부딪쳤다. 잠시 대화의 길을 찾았는가 싶다가는 여지없이 반복되는 긴장 국면이다. 이번에는 우리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결정이 실타래를 헝클어트린 원인이 됐다. 양국 간에 끌어오던 위안부 합의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이던 2015년 어렵게 타결됐고, 그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2년여 만에 간판을 내린 것이다. 합의의 상대방인 일본이 그냥 넘어갈 리는 없다.

역사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에 생겨난 일이다. 일본 측은 그만하면 지난날 잘못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인 반면 우리 정부는 인류적 양심에 호소하며 사죄의 진정성을 추궁한다. 식민지배의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인식 차이다. 재단 해산에 따른 파장을 뻔히 내다보면서도 정부 나름대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일 관계의 악순환은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반복돼 왔다. 위안부 문제가 아니라도 교과서 파동, 독도 영유권 문제, 야스쿠니 참배 등을 둘러싼 여러 갈등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잊힐 만하면 일본 정치 지도자들도 망언을 앞세워 응어리진 우리 국민적 자존심을 건드리곤 했다. 오죽하면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감정적인 표현까지 청와대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왔을까.

앞으로도 당분간은 과거사로 인한 갈등이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게 양국 관계의 엄연한 현실이다. 식민지 시절의 기억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는 한 크고 작은 마찰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대한 위자료 배상 판결까지 내려졌다. ‘군함도’나 오무타 탄광 막장 노역에 대한 당연한 댓가다. 1965년 양국 국교 정상화에 따른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던 일본 측으로서는 수긍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양국 관계가 긴장 상태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 방송사들의 거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끝난 방탄소년단의 도쿄 공연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한국말 가사로 떼창까지 부르면서 한류의 높은 인기를 확인시켜 주었다. 한국인 관광객들도 잦은 지진이나 태풍 위협에도 불구하고 줄지어 일본을 찾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몰리는 서울의 번화가마다 일본어 간판이 즐비한 모습이다. 서로 이해하며 소통하려는 과정이다.

그렇게 본다면 양국 정부 사이에 노출된 표면적인 갈등은 일부에 국한된 반한(反韓) 및 반일(反日) 정서를 지나치게 반영한 측면이 없지 않다. 내부 결속을 꾀하려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들려온다. 물론 양측 국민들 사이에 극우적 여론이 존재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보조개도 곰보’라는 일본 속담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서로 상대방을 헐뜯고 폄훼하는 분위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이어서는 한·일 관계가 미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미래지향적인 관계 성립은 더욱 그러하다. 양국 정치 지도자들이 만나서 악수를 나눌 때마다 이런저런 약속을 제시하지만 속빈 강정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최소한 보조개는 보조개로 인정해 줘야 한다. 보조개를 얽힌 자국이라 흉봐서는 대화의 여지가 쉽게 허락될 수 없다. 얼룩자국일망정 예쁘게 봐줄 수 있는 아량도 그런 바탕 위에서 길러지게 될 것이다.

이제 위안부 합의는 폐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의 출연으로 설립된 재단이 해산되고 합의 기록이 아무런 존재 가치도 인정받을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일본 측이 출연한 10억엔의 기금도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 아직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가급적 조속히 미로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양국 국민들의 정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논설실장>

허영섭 (gracia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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