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양승태 사법부의 음험한 '김동진 판사 찍어내기' 공작

박원경 기자 2018. 11. 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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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도가 지나쳤다"는 말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 경우들이다. 양승태 사법부가 김동진 부장판사에게 한 일도 이런 경우다. 멀쩡한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한,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이 사법부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경우들보다 더 충격적이다.

● 허위 사실로 멀쩡한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몰아간 양승태 사법부

최근 검찰이 확보한 양승태 사법부 인사 문건 중에는 지난 2015년 4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김동진 판사 대응 문건'이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2015년 4월쯤, 당시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은 김동진 판사와 관련한 문건을 작성했다. 해당 문건에 김동진 판사가 과거 다른 판사의 판결을 비판해 징계를 받았던 점과 과거 불안 증세로 진료를 받았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법원행정처가 김 판사에 대한 정서 상태에 대한 의사 소견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 걸로 알려졌다.

그리고 해당 의사가 불안 증세 있다는 취지의 소견을 전했다며, 대응을 위해 김 판사의 소속 법원장인 인천지방법원장에게 이런 내용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담긴 걸로 알려졌다. 실제 관련 내용은 당시 김동진 판사의 소속 법원장인 인천지방법원장에게 전달된 걸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김 부장판사에 대한 소견을 전달한 의사가 최근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김 판사에 대한 병력 기록을 확인하거나 대면 진료라도 하고 그런 소견을 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해당 의사는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김 판사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불안 증세가 있다는 취지의 소견을 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해당 의사는 전화를 걸었던 당시 인사총괄심의관실 관계자의 지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 '국정원 댓글 사건 비판'→'상고법원 추진'의 걸림돌 제거 위한 계산된 공작?

우선 김동진 판사가 과거 불안 증세로 치료를 받았다거나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김 판사를 불러 조사한 검찰도 해당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꿔 말하면, 허위 사실을 근거로 김 판사를 정신질환자로 몰았던 것이다. 범죄영화에서나 볼법한 음험한 공작이 대한민국 판사, 그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가 모여 있다는 양승태 사법부 법원행정처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런 공작은 김동진 판사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과 직결되어 있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사건 1심 판결에 대해 비판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9월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이범균)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은 인정하면서도 선거법 위반은 인정하지 않고 실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만약 선거법 위반까지 인정됐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통성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대 숙원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의 심기를 살피고 있던 양승태 사법부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1심을 각별히 챙기고 있었다. 1심 재판의 방향이나 분위기 등과 관련해 당시 법원행정처가 생산한 것으로 확인된 문건만 4건이다. 그런데 1심 선고 다음날인 2014년, 9월 12일 김동진 부장판사는 '법치주의는 죽었다'며 1심 판결에 비판적인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린다. 이른바 '지록위마' 글이다.

양승태 사법부에겐 김동진 판사의 비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외부도 아닌 내부에서 제기된 비판, 그리고 틀린 말이 없는 김 판사의 글이 박근혜 정부의 심기를 살펴야 하는 양승태 사법부의 입장에선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4월, 김 판사의 비판 취지대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까지 최종확정했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오더가 왔을 가능성도 있다.

● '직무배제' 메모 이후 진행된 일련의 공작

1심 판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故 김영한 씨의 업무수첩에는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이라며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필요(김동진 부장)'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1심 판결을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를 비위 법관으로 규정하며, 직무배제 방안을 사실상 지시한 것이다.

이 메모 이후인 2014년 9월 26일, 김 판사의 소속 법원장은 대법원에 김 판사에 대한 징계를 청구한다. 다른 판사의 판결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함으로써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징계위원회가 열린 11월 7일, 법원행정처는 김 판사에 대한 중징계를 전제한 듯한 취지의 문건을 작성했다. '김동진 부장판사 징계결정 후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이다. 이 문건에선 법원행정처는 김 부장판사에 대해 징계 후 '세심하고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며, '지나친 위로로 반감을 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대응 방침도 세웠다.


2014년 12월 3일, 대법원은 김동진 부장판사에 대해 정직 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대법원에서 최종 파기된 1심 판결에 대한 공개적 비판의 대가치곤 너무 혹독한 것이었다. 이후인 2015년 1월,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은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보고서'에서 김동진 부장판사에 대해 '조울증이 있다'고 기재한 것으로 SBS 취재결과 확인된다. 故 김영한 수석 업무 수첩에 '직무배제 방안'이라는 말이 등장한 이후, 징계 청구와 징계 확정, '조울증'이라는 말까지 이어진 것이다.

● 양승태 사법부의 눈엣가시, 상고법원의 걸림돌

인사총괄심의관실 관계자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있지도 않은 것을 근거로 김동진 판사에 대해 의사의 소견까지 받은 것은 2015년 4월쯤의 일이다. 아무리 김동진 판사가 당시 양승태 사법부가 신경을 쓰고 있던 사안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냈다고 해도, 멀쩡한 사람을 정신질환자로까지 몬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2015년 1월과 2015년 4월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5년 2월 9일,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김동진 판사의 비판대로 국정원법 위반뿐만 아니라 선거법 위반까지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눈치를 보며 상고법원을 추진하고 있던 양승태 사법부는 선고 하루 전, 원세훈 전 국정원장 2심과 관련한 문건을 생산한다. 선고 하루 전인 2015년 2월 8일 작성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검토'와 선고 다음날인 2월 10일 작성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동향'이라는 문건이 그것이다.


이 문건을 살펴보면, 당시 양승태 사법부는 김동진 판사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월 8일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1심 판결 당시 김동진 부장판사의 비판 글에 적지 않은 수의 법관이 동조를 보냈다’, 또 2심에서 선거법 위반을 인정할 경우 ‘김동진 판사 징계조치에 대한 논란이 일 수 있다’며 대응책으로 법관 정기 인사를 최대한 빨리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2월 10일 문건에 사법부 내부 분위기라며 ‘김동진 부장님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셨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나온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은 인정한 2심 판결 이후, 실제 법원 내외부에서는 다시금 김동진 판사의 글이 회자됐다. 김 판사에 대한 징계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여론도 일었다. 김 판사를 '정신질환자'로 몰고 의사 소견까지 받은 것은 이 이후의 일이다. 박근혜 정부 눈치 살피기에서 나아가, 틀린 말이 없었던 김동진 판사를 징계했던 것에 대해 내부 비판이 일 것을 우려해 김 판사를 조직 내에서 고립시키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 김 판사를 '정신질환자'로 몰았을까. 왜 동료를 정신질환자로 모는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공작을 벌인 것일까.

● 양승태 사법부는 왜 김동진 판사를 정신질환자로 몰았나?

판사는 10년 마다 연임 심사를 받는다. 그런데 법원조직법 제45조의 2의 2항은 판사 연임 제한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신체상 또는 정신상의 장해로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연임발령을 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김동진 판사를 조직 내에서 고립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정신질환자로 몰아 조직 내에서 내치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실제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비판적 의견을 내던 김동진 판사에 대한 인사 자료를 허위로 조작해 연임 때 탈락시키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김동진 판사에 대한 양승태 사법부의 공작은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가 아니었다면 성공했을 지도 모른다. 2019년도 연임 심사 대상인 김 판사는 올해 심층 심사 대상에 올라가 있는 걸로 알려졌다. 심층 심사 대상은 연임 신청을 한 판사 중 인사 평정에 문제 사항이 기재된 사람 등 극히 일부가 대상이 되는데, 서기호 전 의원이나 정영진 전 판사 등 심사 대상에 오른 판사 상당수는 연임에 탈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판사가 심층 심사 대상에 오른 것 최근 소속했던 법원장의 근무 평정에 '정서 불안' 등의 평가가 기재된 것이 주된 이유인 걸로 알려졌다. 양승태 사법부가 김 판사를 근거도 없이 '조울증'이라고 규정하고, '정신질환자'로 모려고 공작한 이후에 이뤄진 근무 평정 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김 판사에 대한 서류 심사 때는 양승태 사법부의 범죄와 다름없는 공작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때문에 법원장의 인사 평정 등만 심사위원 등에게 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심사 때는 최근 드러난 김 판사와 관련된 문건이나 언론 보도 등이 심사 위원 등에게 제공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양승태 사법부의 공작이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연임 탈락 위기 김동진 판사…공작의 희생양 되나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 농단과 관련해, 법원 내에서는 시키는 것을 열심히 하다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당사자들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그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 했을 것이라며, 실제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될 지라도 법리적으로는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냐는 의견에 적지 않은 사람이 동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각이 김동진 판사 건에는 적용될 수 있을까. 동료를 정신 질환자로 몰아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행위를 한 판사들에 대해서도 '시키는 것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행위를 했던 판사들이 현재도 법대 위에서 다른 사람을 심판하고 있는 상황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바로 '모난 돌'이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어떤 폭력들이 자신에게 향할지를 알고서도 문제가 있기에 그것을 지적하고 나서는 것이다. 김동진 판사를 법원 내에서는 '모난 돌'이라고 보는 시각들이 있다. 왜 괜한 분란을 일으키느냐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김 판사의 비판은 대게 틀리지 않았고, 그 결과 판사 대부분, 아니 사법부는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라는 측면에서 김 판사에서 적지 않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 김 판사가 공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들로 인해 연임 탈락 위기에 몰려 있다. 김 판사에게 빚진 사법부는 김동진 판사를 구제할 수 있을까. 김동진 판사에 대한 심층심사는 12월 초로 예정돼 있다.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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