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빈곤국 땅 임대해 난민 위기 막는다?

입력 2018.11.26. 15:06 수정 2018.11.26. 15:46

8년째 지속된 유럽의 난민 위기가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등 정치 지형도까지 바꿔놓는 가운데, '아프리카 식민지 도시 개발'이 해법으로 언급되면서 논란을 낳고 있다.

독일의 귄터 누케 아프리카 담당 장관은 최근 영국 <비비시> (BBC) 방송 인터뷰에서, 유럽행 난민 물결을 차단하기 위해선 유럽연합(EU)이나 세계은행 등 국제사회가 아프리카에 도시들을 건설하고 직접 경영해 현지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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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아프리카장관, BBC 인터뷰 논란
"EU 등 국제기구의 임대도시 건설로
현지 일자리 창출, 경제개발 도와야"
아프리카연합 등은 "신식민지" 반대
중미 '특별경제구역'.."중미판 홍콩" 반발

[한겨레]

2014년 6월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 수백명이 작은 고깃배에 발디딜 틈 없이 올라타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달 초 유엔난민기구(UNHCR)의 집계를 보면, 올해 들어서만 2000여명이 지중해를 건너다 조난 사고 등으로 목숨을 잃는 등 최근 5년 새에만 지중해에서 1만75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출처 유엔난민기구

아프리카의 자발적 ‘식민지’ 건설이 유럽 난민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8년째 지속된 유럽의 난민 위기가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등 정치 지형도까지 바꿔놓는 가운데, ‘아프리카 식민지 도시 개발’이 해법으로 언급되면서 논란을 낳고 있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들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이 내전으로 번지는 등 사실상 실패하면서, 유럽은 이들 지역에서 전쟁과 박해, 빈곤을 피해 들어오려는 수백만명의 난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독일의 귄터 누케 아프리카 담당 장관은 최근 영국 <비비시>(BBC) 방송 인터뷰에서, 유럽행 난민 물결을 차단하기 위해선 유럽연합(EU)이나 세계은행 등 국제사회가 아프리카에 도시들을 건설하고 직접 경영해 현지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국 영토를 국제기구에 50년간 임대해 자유로운 개발을 허용”하도록 하자는 방안이다.

이런 구상은 즉각 격렬한 찬반 논란을 불러왔다. 55개 회원국이 참여한 아프리카연합(AU)은 외지인들의 도시 건설은 신식민주의라며 반대하고 있다. 유럽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의 악몽 때문이다. 아프리카연합의 레슬리 리처 공보국장은 “(누케 장관의 제안은) 이주 문제에 대한 나태한 대답”이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권을 포기하고 국제기구들의 도시 경영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케냐 스타라스모어대의 카롤 무시오카 교수(경영학)는 <비비시>에 “많은 아프리카 정부들이 자국민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며 “외세가 아닌 아프리카인들의 혜택을 보장하기 위한 진정한 시도라면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말했다.

2013년 유엔난민기구(UNHCR)가 튀니지 북서부의 지중해 연안 지역에 세운 난민캠프. 출처 유엔난민기구

‘자율형 식민지’ 발상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당사국들뿐 아니라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도 시각은 엇갈린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는 유럽 난민 위기가 본격화하기도 전인 2009년에 비슷한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개발도상국들이 외국에 영토 일부를 내주고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하게 ‘임대 도시’를 건설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앞서 2008년엔 아프리카 동남부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의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이 로머 교수를 만난 뒤 그런 계획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당시 그는 내국인과 외국 이주자들을 위한 임대 도시 2곳을 건설할 수 있다고까지 밝혔다. 그런 구상은 그러나 야당이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을 ‘반역죄’로 고발하고 대대적인 반대 시위에 나서면서 물거품이 됐다.

2011년엔 중미 온두라스의 포르피리오 로보 소사 대통령은 “임대 도시가 경쟁력 있는 일자리와 양질의 보건 및 교육, 최고 수준의 법과 치안 시스템을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며 이런 안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역시 실행에는 못 미쳤다. 현지 신문인 <라 프렌사>가 “그런 계획은 나라를 중미의 홍콩으로 만들 것”이라고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온두라스 정부가 영토 주권을 잃을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1842년 중국이 아편전쟁에 패배하고 영국에 홍콩을 넘겨준 난징조약의 전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미국 조지타운대의 켄 오팔로 교수는 “엔클레이브(타국 영토에 둘러싸인 고립 영토) 경제를 만든다는 건 미친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도시들은 역내 이주만 촉발할 뿐 전체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고군분투 중인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엉망이고 부패하더라도 당사국의 제도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장 낫다”며 “아프리카를 돕는 최선은 역내의 중소기업들이 고용을 창출하도록 투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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