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병원 이용 불가"..KT 화재로 '가택연금'된 약자들

2018. 11. 2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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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케이티 화재가 부른 '디지털 재난'
거동 불편한 중증장애인·독거노인 등
약자에게 더욱 가혹..두려움 계속

[한겨레]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케이티(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26일까지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디지털 재난’은 장애인·홀몸(독거)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했다.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의 손발이 묶였고, 전화기 하나에 의지해 사는 홀몸노인은 ‘통신 장애’가 일어난 줄도 모른 채 고립됐다.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가 끊기자 이들은 ‘투명인간’이 됐다. 취약계층일수록 ‘우회로’ 또는 ‘대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로 가는 길이 모두 두절됐었다. 당황한 마음에 119를 눌러봤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다.”

지체장애 2급인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이번 화재로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이씨의 전화, 인터넷, 아이피티브이(IPTV) 등은 모두 케이티에 가입돼 있다. 이씨는 화재 이튿날인 25일 오후 5시께 인터넷이 연결된 뒤에야 화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는 “연락이 끊겨 이동할 생각 자체를 못했다. 바깥세상과 완벽하게 고립됐다는 사실이 제일 두려웠다”고 했다.

자신을 희귀난치성 질환과 중증장애 등을 겪고 있다고 소개한 한 장애인은 25일 저녁 8시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저는 케이티 화재로 통신이 두절돼 고립된 장애인입니다. 병원 예약도 할 수 없고, 장애인 콜택시도 이용할 수 없고, 응급상황이 생겨도 외부로 연락할 수단이 없어졌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이날까지 <한겨레>가 취재한 장애인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장애인들은 평일보다 휴일에 장애인용 콜택시나 목욕 서비스 등을 많이 이용한다. 통신망이 토요일 오전에 끊겨 장애인들의 불편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케이티 이외의 통신망을 사용하는 장애인도 불편을 겪었다. 장애인용 콜택시 기사들이 케이티를 사용한 탓에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지체장애인 오상만(54)씨는 24일 오전 10시께 마포구 공덕동 직장으로 가려고 에스케이(SK)에 가입한 휴대전화로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다. 콜택시는 하루에도 한두번씩 이용하는 주요 이동수단이다. 오씨는 낮 12시에 콜센터에서 ‘배차’ 통보를 받고 오후 1시께 집 앞에서 차량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자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뒤늦게 콜센터로부터 ‘기사가 케이티를 이용해서 연락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량 내비게이션 역시 케이티 통신망을 쓰는 탓에 기사는 오씨의 집을 정확히 찾지 못했다. 오씨는 3시간을 기다리고도 기사와 만나지 못했고 결국 지하철을 탔다. 평소 휠체어를 타고 활동보조인과 함께 움직이는 오씨는 “그날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나. 활동보조인한테는 더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라 끝까지 콜택시를 기다린 것”이라며 “내가 케이티 전화 가입자였다면 비상연락조차 못 했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장애인복지관 등도 큰 혼란을 겪었다.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은 2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4일 오전 10시부터 유선전화, 내선전화, 내부 서버가 모두 멈췄다. 사흘째인 26일에도 유선전화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지관은 평소 유선전화로 하루 200~300통씩 장애인 셔틀버스 이용 등에 대한 상담·문의를 받는데 이 통로가 ‘먹통’이 된 셈이다. 중증 장애인들의 독립적인 삶을 지원하는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도 “(회원들로부터) 불편사항이 들어온 게 없다. 사무실 전화가 케이티라 연락을 못 받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 혼자 사는 백아무개(79)씨는 케이티 화재 관련 재난 안내 문자를 당일 오후 4시55분에야 받았다며 자신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목록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사진 장예지 기자

홀몸노인들은 ‘통신 장애’도 모른 채 하염없이 전화를 기다린 경우가 많았다.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은 이들이 많아 주말 동안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 홀로 사는 백아무개(79)씨는 인터넷도, 유선전화도 쓰지 않는다. 케이티에 가입된 휴대전화가 유일한 연락 수단이다. 백씨는 화재가 발생한 지 6시간이 지난 24일 오후 4시55분께 ‘재난 안내 문자’를 받았고, 휴대전화는 이튿날 오전까지 먹통이었다. 자식이 걱정할까 마음을 졸이던 백씨는 전화가 되자마자 따로 사는 큰아들에게 “나는 잘 있다”고 알렸다.

같은 마을에 사는 전아무개(85)씨는 케이티 집 전화가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전씨가 먼저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은 경기도에 사는 아들 부부뿐이다. 아들 부부는 화재 당일 지방에 볼일을 보러 내려가면서 일요일까지 화재 사실을 알지 못했고, 일요일 밤 9시가 넘어서야 전씨와 연락이 닿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 혼자 사는 전영순(75)씨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목록. 화재가 난 24일에는 재난문자가 오지 않았고 25일 사과문자만 받았다고 전씨는 전했다. 사진 장예지 기자

홀몸노인을 관리하는 생활관리사들은 분주한 월요일을 보냈다. 생활관리사 49명을 두고 마포구 홀몸노인 1037명을 관리하는 마포어르신돌봄통합센터는 이날 오전 9시부터 홀몸노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안부를 묻고, 연락이 되지 않는 가구는 직접 확인 방문에 나섰다. 인근 서대문구노인종합복지관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는 관리 대상 홀몸노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실제로는 더 많은 홀몸노인들이 불편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유진 장예지 기자, 24시팀 종합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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