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칠순 맞는 보안법, 역사에서 퇴장하라 / 박진

입력 2018. 11. 26. 18:06 수정 2018. 11. 2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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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1월9일 법사위가 5개 조항으로 보안법 초안을 제출하자 바로 폐지안이 재개의되었으나 부결되는 등 몇 차례 폐지안이 제기되고 부결되는 과정을 거듭한다.

보안법은 탄생부터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보여준다.

그 이후로 보안법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잡아먹었는지, 한반도 평화와 역주행하는지 따져 묻는 것은 식상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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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1948년. 한반도 분단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남에는 제1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건국을 선포했다. 남한 땅의 대통령은 이승만, 북한 땅 수상은 김일성이었다. 그해 10월19일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은 제주 4·3항쟁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 순천 등 전남 동부지역에서 군사반란을 도모한다. 정부는 철저한 진압을 결정하고 지도부뿐 아니라 여성과 아동 가리지 않고 일일이 조사해 불순분자를 제거하라 명령한다. 점령에 성공한 진압군은 협력자 색출에 나서는데 ‘손가락 총’에 의해 지목된 이들은 즉석에서 참수되거나 사형 또는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협력자 색출은 12월 중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여순사건 진압 후 이승만 정부는 경찰관을 증원하고 우익 청년단체들을 대한청년단으로 통합한다. 학교에는 학도호국단을 창설했다. 군대는 좌익세력을 색출하는 숙청작업을 시작했다. 국회에서는 좌익척결법이 만들어진다. 국가보안법이었다. 형법보다 먼저 만들어진 법이었다. 11월9일 법사위가 5개 조항으로 보안법 초안을 제출하자 바로 폐지안이 재개의되었으나 부결되는 등 몇 차례 폐지안이 제기되고 부결되는 과정을 거듭한다. 1960년 민주당 집권 시 폐기되었다 박정희 시대에 다시 강화되는 등 우여곡절도 겪는다. 보안법은 탄생부터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보여준다. 그 이후로 보안법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잡아먹었는지, 한반도 평화와 역주행하는지 따져 묻는 것은 식상할 지경이다. 다만 현재 보안법의 영향은 어떤가. 지난 10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4 선언 11돌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방북한 평양에서 “평화체제가 되려면 국가보안법 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하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폐지하거나 개정하려는 게 아니라면 보안법을 강화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집권당 대표면 대표답게 분명하고 명확한 입장 밝혀달라”고 밝혔다. 보안법의 존재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검증 대상이 될 만큼 여전히 보안법은 위력적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보안법은 있으나 없으나 큰 문제 될 것이 없다. “당신이 북한 체제와 사상에 대하여 어떠한 동경도 하지 않는 상식적인 사람이고 당시 박정근처럼 우리민족끼리를 하루에도 몇차례씩 리트위트하던 파워 트위터리안(?)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나무위키의 전반적인 형사법 관련 항목의 서술 태도들에 비해 너무 쫄 필요는 없으므로 걱정 말 것”이라는 위키리안의 설명처럼 말이다. ‘김일성보다 더한 놈’ ‘김일성 만세~’라고 하다 끌려가 고문당하고 구속되는 시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상검증 시험대에 한 사람이 오른다는 것은 누구라도 같은 경우를 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제사회가 보안법은 물론 특히 7조 ‘찬양·고무’ 조항의 반인권성을 끝없이 지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편적 권리에 균열을 내기 위해 특별한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결국 한 사람의 사상과 양심을 검증하는 그것은 만인의 족쇄다. 그 한 사람은 언제라도 당신이 될 수 있으니 보안법은 모든 이들의 ‘자유’의 문제다. 보안법은 그러기 위해서 태어난 법이기 때문이다.

그해 12월10일 유엔 총회는 세계인권선언을 제정했다. 세계는 이날을 인권의 날로 기념한다. 하나의 법과 하나의 선언…. 같은 해 태어났으나 끼친 영향은 사뭇 다르다. 남북 정상이 금단의 경계를 오가는 오늘, 보안법이 존속할 필요가 있겠는가. 전쟁과 야만을 끝내자고 약속한 오늘, 12월1일. 보안법 칠순을 기념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을 명령하자. 자유를 향했던 손가락질 총을 거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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