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복구 외주노동자 "통신선 새로 깔 KT 정직원은 없다"

2018. 11. 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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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복구 현장 외주노동자 인터뷰
"구조조정 과정서 현장직 모두 감축
신규 선로 까는 일은 100% 외주화"
효율화에 밀려난 이들이 '대란' 수습

[한겨레]

케이티(KT) 서울 아현동 통신국사의 통신구 화재 현장에서 27일 오후 노동자들이 통신 케이블을 꺼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케이티(KT) 서울 아현동 통신국사(통신망 관리거점)의 통신구 화재로 24일 ‘통신대란’이 일어난 지 사흘이 흘렀다. <한겨레>는 사고 직후부터 현장 복구에 참여하고 있는 외주업체 노동자 ㄱ씨와 26일 늦은 밤 통화해 복구 현장 상황과 이번 사고의 문제점 등을 들었다.

ㄱ씨는 26일 밤 기준으로 “(인터넷 등을 연결하는) 광케이블은 접속 오류 등을 제외하고 99% 복구가 되었지만, 아현동 관내 유선 전화는 복구가 하나도 안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현 통신구와 광케이블로 연결만 되면 유선 전화 작동이 가능한 서울 용산 등은 대부분 복구되었지만, 아현 지역 내에서 구리선으로 연결된 유선 전화는 하나도 복구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다. 구리선은 통신구 내에서 복구 작업을 해야 하지만, 현재 현장 감식 등으로 통신구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또 구리선의 경우 두께가 두꺼워 도로 등으로 우회해 매설 작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만 광케이블은 도로 매설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은 빠른 복구가 가능했다.

1. D등급 아현국사 화재에 21만 인터넷 암흑 된 이유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30년 가까이 선로 작업을 한 ㄱ씨도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합선이 원인이라면 전기가 원인이어야 하는데, 누전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동선이나 광케이블에서는 스파크가 나지도 않는다. 30년 가까이 일했지만 어떻게 화재가 일어났는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ㄱ씨는 앞서 경찰이 밝힌 대로 사람의 실수로 인한 화재 가능성도 없다고 봤다. 그는 “통신구는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아니다. 작업에 들어갈 때는 작업자 이름과 연락처 등을 다 적어놓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출입 통보를 한 뒤에야 들어갈 수 있다. (당시 통신구로 들어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람 때문에 화재가 벌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이주민 서울경찰청장도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문도 이중이고 자물쇠 장치 등으로 담당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형태”라며 방화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재는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 피해 규모가 크다는 점이다. 통신구 화재로 기지국 2833개가 연결이 끊기고, 인터넷 21만5000여 가입자(아이피티브이 포함)가 통신 암흑 상태에 처했다.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20%인 5개 자치구에서 ‘통신대란’이 벌어졌다. 복구도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사연을 보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통신구 등급부터 살펴야 한다. 과기부는 통신구를 에이(A)부터 디(D)등급으로 나눠 관리하는데, 아현 통신구는 가장 등급이 낮은 디등급이다. 에이부터 시(C)등급은 정부가 직접 관리하지만 디등급은 통신사가 자체 관리를 한다. 또 에이부터 시등급의 경우 정부가 백업망을 갖추도록 권고하지만, 디등급의 경우 그런 지시조차 없다. 서울 5분의 1을 마비시킨 아현 통신구가 디등급에 머문 이유를 ㄱ씨는 케이티의 통신국사 통폐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석채 전 회장 때부터 전화국을 많이 매각했다. 사실 아현국사가 그렇게 중요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통신국사가 매각되면서 시설이 그쪽으로 이전됐다. 디등급인 국사가 갑자기 대형화된 셈”이라고 말했다.

경영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통신국사를 팔아 디등급이었던 아현국사가 대형화됐지만, 누구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채로 방치돼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해관 케이티 새노조 대변인은 2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예전에는 한국의 땅값이 싸고 통신 장비값이 비쌌다. 그래서 대규모 장비가 아닌 작은 장비를 여러 곳에 분산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이익이었다. 하지만 점점 땅값이 비싸지고 장비 가격이 싸졌다. 이 때문에 케이티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동산(통신국사 등)을 팔거나 임대업에 사용했다. 대신 아현국사처럼 상대적으로 싼 곳에 장비와 시설을 집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대변인은 “원효, 신촌, 가좌, 은평 등 이번 화재로 통신장애가 발생한 지역의 국사들에도 다 장비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그걸 다 아현으로 집중화시킨 것이다. 지금 원효 등에는 장비는 다 빠지고 요금 등을 받는 직원들만 남았다”고 덧붙였다.

2. 2002년 민영화 이후 KT 직원 수 2만 줄어

2002년 민영화 이후 케이티는 국사만 줄이지 않았다. 인력 감축도 함께 진행했다. 케이티 사업보고서를 보면, 민영화 직전인 2001년 12월 기준 직원 수는 4만4094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에는 2만3817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 중에는 통신선로를 까는 직원도 포함됐다. 그런 이유로, 현재 불이 난 아현국사 현장에서 통신선로를 까는 작업은 케이티 직원들이 아니라 외주업체 직원들이 전담하고 있다. 1100여명의 화재 복구 작업자들 가운데 케이블 포설 등 현장 복구를 하고 있는 작업자 중에는 케이티 정직원들이 없다는 얘기다. ㄱ씨는 “케이티가 구조조정이 들어가면서 현장직을 다 감축했다. 이제 신규 선로를 까는 작업은 100% 외주화됐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이번 화재 뒤 케이블 포설 작업자 가운데 케이티 정직원은 없다. 케이티 직원 등의 말을 종합하면, 본사에도 통신선로 작업을 하는 직원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신규 충원을 하지 않고 있으며 주된 업무는 긴급 복구 정도다. 이번 처럼 선로를 새로 까는 일은 외주사가 다 맡는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케이티 관계자는 “현재 현장에 포설 작업을 하는 본사 직원이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네트워크 업무를 담당하는 본사 직원도 여럿이 나가 함께 복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케이티 외주업체 직원들은 대부분 일용직이다. 올 5월 전주시비정규노동자지원센터가 전주 지역에서 일하는 78명의 케이티 용역업체 통신노동자를 상대로 한 ‘긴급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실태 보고서)를 보면, 64.1%가 일용직이었고, 기간제가 11.5%를 차지했다. 정규직은 7.7%에 불과했다. ‘케이티 상용직 노동조합’이 소속되어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관계자는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올해 하반기 통신외선공 평균 공임(일당)은 28만1811원이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케이티 외주업체 평균 임금은 16만원 수준이다. 외주업체들은 평균 낙찰률이 80% 수준(22만원가량)이라 일당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 주장을 따르더라도 하루 6만원을 덜 받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케이티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맨홀 밑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케이티 용역업체 통신노동자 긴급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전주시비정규노동자지원센터)

근무일은 일정치 않다. 여느 일용직처럼 공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 실태 보고서를 보면, 이들의 한 달 평균 근무일은 16.8일이다. 경영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통신국사는 통폐합되면서 발생한 ‘대란’의 뒷수습을 하는 것은 모두 ㄱ씨와 같은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평소에도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늘과 땅밑을 오간다. 높은 전봇대 위를 올라 전선을 정리하고 차량이 오가는 도로 밑 미끄러운 맨홀을 기어 내려가 끊어진 선을 잇는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한다며 대접을 받았던 것은 너무 오래전 일이다.

3. “고된 일 하는 케이블 매니저보다 휴대전화 더 파는 직원 우대”

케이티 직원 ㄴ씨는 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케이블 매니저(통신선로 관리) 일이 좀 지저분하다. 맨홀이나 지하통신구 들어가야 하니까 기피 직업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여기서 일을 잘하면 우대하는 전통이 있었다. 고된 일을 하니 존경받은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회사가 아무런 대우를 안 해준다. 오히려 휴대전화 몇 대를 더 파는 사람들을 더 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케이블 매니저들이 있는 부서에서도 휴대전화를 몇 개 팔았냐를 가지고 회의를 한다. 담당 부서에서조차 전문가가 우대받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를 팔아 매출에 기여한 직원이 우대받는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ㄴ씨는 또 “(민영화 전인) 1999년 삼각지역 공사장 근처 지하통신구에서 불이 났을 때는 복구 작업에 투입된 직원 대부분이 본사 소속이었다. 물론 외주업체 직원도 있었지만 주축은 본사 ‘케이블 매니저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현장에 파견된 본사 소속 직원은 홍보팀 등 일부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케이티는 2002년 민영화 이후 본사 소속 케이블 매니저는 한 명도 안 뽑고 모두 외주로 돌렸다”고도 했다. 이젠 케이티 본사에서 현장에 나가 통신선로 복구 작업을 할 수 있는 직원 중 막내가 50대 중반이라고 한다.

케이티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전봇대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케이티 용역업체 통신노동자 긴급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전주시비정규노동자지원센터)

ㄱ씨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바라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케이티다. 우리는 약자라 회사(외주업체)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회사는 케이티 눈치를 봐야 한다.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고 일당이라도 좀 더 올랐으면 하지만 현장 개선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ㄱ씨는 이틀 동안 24시간 넘게 통신선로 복구에 매달린 뒤 26일 밤 겨우 퇴근을 했다. 자신을 “우리는 일용직이다. 일당에 일한 날짜를 곱해서 받는”이라고 설명한 ㄱ씨와 같은 일용직들 덕에 서울 지역 다섯개 자치구는 통신 마비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밀려난 이들이, ‘효율화’ 때문에 일어난 ‘통신대란’을 앞장서 수습한 셈이다.

정환봉 선담은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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