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무너지는 가족의 삶] "돈들곳 많은데 직장도 관둬야..극단적 생각땐 한없는 자책감"

양사록 기자 2018. 11. 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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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회,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④치매환자]
80세 이상 4명 중 1명은 치매
요양보호사 쓰기엔 부담 크고
직접 간병해도 정신적 고통 상당
2024년 환자수 100만명 넘어서
3050서도 혈관성 치매 증가세
실질적 지원·예방책 서둘러야
[서울경제] 박순희(57)씨의 어머니는 몇 해 전 치매 진단을 받았다. 상태가 악화되며 멍하게 있다가 욕설을 내뱉는가 하면 별다른 이유 없이 괴성을 지르고 하던 행동을 제지하면 적개심을 보이기도 한다. 박씨는 20년 넘게 운영해온 부동산중개업소도 다른 사람에게 팔고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요양보호사도 알아봤지만 전담 요양보호사를 쓰기에는 비용이 부담됐다.

박씨는 “자식이니 당연히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간병을 시작했지만 갈수록 몸도 마음도 지친다”며 “어머니에게 화를 내거나 어머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견딜 수 없는 자책감이 밀려든다”고 말했다.

중앙치매센터가 최근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7보고서’ 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환자는 70만여명이다. 전체 65세 이상 인구의 열 명 중 한 명에 해당하며 80세 이상으로 대상을 한정하면 네 명 중 한 명 꼴로 치매를 앓고 있다.

한 번 발병하면 꾸준히 관리하며 상태의 악화를 늦추는 것 외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치매의 특성상 환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누군가 옆에서 돌봐야 한다. 결국 이 짐을 떠안는 것은 주로 가족이다. 서울시가 치매 관리 사업소에 등록한 치매 환자의 가족 36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지난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보호자는 배우자가 39.0%로 제일 많고 이어 딸(23.6%)과 아들(14.6%), 며느리(12.9%) 순이었다.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사후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 환자의 괴로움이 가장 크겠지만 환자를 돌보는 가족구성원 역시 이 못지않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대한치매학회에 따르면 치매 환자 보호자의 71%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로 큰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박은철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치매 환자를 배우자로 둔 남녀 모두에게서 일반인과 비교해 최대 1.5배에 달하는 우울 경향이 발견되기도 했다. 치매 환자를 간호하며 우울감과 만성 스트레스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치매 환자의 가족을 ‘숨겨진 환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치매 환자가 있는 가정에는 어김없이 생활고가 따라붙는다. 치매 환자의 치료비가 막대할 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직장이나 학교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이어가기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치매학회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 보호자의 78%가 치매 환자의 간병을 위해 직장 관두거나 근로시간을 줄였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의 치매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치매 노인 1인당 연간 치료비는 2,074만원에 달한다. 직접의료비와 간병비, 장기요양비용과 치매로 인한 퇴직 등 환자 자신의 생산성 손실로 인한 비용 등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이렇게 치매와의 힘겨운 싸움을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는 치매 환자와 그들의 가족은 국내에 이미 총 350만명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치매 환자의 간병을 견디지 못해 발생하는 비극적인 사건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2월 대구에서 치매에 걸린 남편(75)을 흉기로 찌른 이모(74)씨가 붙잡혔다. 이씨는 재판에서 5년간 남편을 간병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으며 최근 자신도 초기 치매 진단을 받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5월에는 중증 치매 환자인 어머니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살해한 50대가 서울 송파경찰서를 찾아 자수했다. 홀로 어머니를 모셨던 아들은 죽은 어머니를 1년여간 방치한 채 고시원을 전전하다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했지만 장례만큼은 꼭 치러드리고 싶다”며 경찰서를 찾았다.

이렇게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통계에 잡힌 치매 환자보호자의 치매 환자 살인은 173건에 달한다. 김기웅 중앙치매센터장은 “치매 환자의 보호자는 치매 환자를 돌보면서 경제적으로 좀 근무시간이 줄어든다든지 또는 사회생활이 줄어들면서 보호자의 2차적인 피해를 겪는다”며 “치매 환자의 조기 검진에서 더 나아가 치매 환자와 보호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지원과 예방사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고령화로 65세 이상 치매 환자의 수는 오는 2024년에는 100만명, 2041년에는 2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15조원의 비용이 치매와의 전쟁에 사용됐는데 이 비용이 2050년에는 연간 78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에는 65세 이하에서도 치매 진단을 받는 환자가 늘면서 치매가 성인병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젊은 치매 환자라고 불리는 ‘초로기 치매’ 환자가 지난해 1만8,622명으로 전체 치매 환자의 4%를 기록했다. 치매 진단을 꺼리는 초로기 치매 환자의 특성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전체 치매 환자의 20%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체 치매 환자 가운데 노화에 따른 알츠하이머 치매가 70%를 차지하지만 최근에는 혈압·스트레스·미세먼지·음주·흡연·우울증과 같은 이유로 발병하는 혈관성 치매가 50대는 물론 30대와 40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노인병이라고 흔히 여겨졌던 치매가 더는 노인들만의 질환이 아닌 셈이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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