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가는 대서양동맹..유럽의 홀로서기는 가능할까

2018. 11. 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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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프 "미국에 안보 더 이상 의존 않겠다"
트럼프 압박에 70년 대서양동맹 갈수록 균열
유럽 통합의 미제 '유럽군' 추진에 박차
러시아의 위협 증대에 '미국 부재' 위기론
정치적 반발·독일 재무장 경계 한계도 뚜렷

[한겨레]

미국 해병대원들이 지난달 아이슬란드에서 상륙 훈련을 하고 있다. 나토의 31개 회원국 병력 5만여명이 참가한 냉전 종식 이래 최대 훈련인 ‘트라이던트 정크처 2018’ 훈련의 일환이다. 나토 누리집 갈무리

지난 70년간 유럽의 안보는 미국이 주도하는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책임졌다. 이 체제는 소련(러시아)을 견제하고, 유럽대륙 안에서는 더 이상 분열해서 싸우지 않는 구조를 굳혀 영구 평화의 가능성을 높였다. 2000년 전 팍스 로마나(로마제국하의 평화) 이후 최장기 평화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을 비난하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의 주축이 반발하면서 대서양동맹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유럽의 안보 환경과 나토의 위상 변화는 미국의 군사 헤게모니 및 세계 차원의 세력 균형과 연결된 문제라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대서양동맹의 요란한 파열음 유럽의 안보에서 전통적으로 결정적인 요소는 세력 규합이다. 미국과 유럽은 1949년 나토라는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했다.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의 확장 저지를 지상 목표로 유럽의 대부 구실을 해왔다. 나토는 헤이스팅스 이즈메이 초대 사무총장이 말한 대로 “소련을 막고, 미국을 끌어들이고, 독일을 억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이 도전 과제를 안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분담금이나 제대로 내라”며 유럽 정상들을 거듭 꾸짖었다. 사실은 틀린 주장이다. 회원국들은 정해진 분담금을 낸다. 그의 말 중 틀리지 않은 것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늘리라는 주장이다. 냉전이 한창일 때 40만명에 이른 유럽 주둔 미군은 현재 6만명대로 줄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부담이 여전히 부당하게 높다고 주장한다. 그가 지난 7월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3차대전을 감수하면서까지 발칸반도의 소국 몬테네그로(지난해 나토의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를 지켜줘야 하느냐고 말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개별 회원국이 공격받으면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자동 개입한다는 나토의 핵심 규약에 의문을 제기한 셈이라서다.

유럽은 ‘안보 홀로서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한테 꾸중을 들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달 6일 “우리는 중국, 러시아, 심지어 미국에 대항해 자신을 지켜야 한다” “진정한 유럽군을 갖지 못하면 유럽인들을 보호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어 유럽연합은 19일 ‘상설 구조적 협력체제’(PESCO) 사업으로 미사일·장갑차·드론을 공동 개발하고 군사정보학교도 만들겠다며 구체적 움직임에 나섰다. 28개 회원국 중 25개국이 지난해 12월 만든 이 협력체는 유럽연합의 헌법 격인 리스본조약에 따라 국방정책 통합을 본격화하며 ‘유럽군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가운데)이 지난달 ‘트라이던트 정크처 2018’ 훈련에 참가한 미국 항공모함 해리 트루먼호에서 연설하고 있다. 나토 누리집 갈무리

러시아, 유럽의 숙명 유럽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만이 문제가 아니다. 내년 3월이면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떨어져나간다. 나토와 유럽연합 회원국 명단은 상당히 겹치지만 영국이 나토에서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프랑스와 함께 유럽의 양대 핵무기 보유국이자 해군력이 강한 영국이 유럽대륙과 멀어지는 것은 불안 요소다. 1·2차대전에서 유럽을 구원한 미국과 영국이 ‘영예로운 고립’으로 돌아가는 상황이다.

위협은 러시아에서 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90년대 소련 붕괴와 러시아의 수난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를 침공하고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크림반도 합병은 냉전 종식 뒤 러시아가 주변국 영토를 빼앗은 첫 사례다. 과거에 소련 영토였고 지금은 유럽연합·나토 회원국인 러시아 주변국들은 신경이 예민해졌다. 러시아가 25일 우크라이나의 해군 함정들을 나포한 것도 심상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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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게 말하자면, 양쪽 갈등이 러시아만의 잘못도 아니다. 19~20세기의 나폴레옹전쟁, 크림전쟁, 러시아혁명 간섭전쟁, 1·2차대전은 모두 유럽 강국들이 러시아를 공격한 경우다. 소련·러시아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국경을 서쪽으로 옮기고 동유럽을 이용해 1차 방어선을 되도록 멀리 두려고 했다. 그들에게는 광활한 국토 자체가 ‘전략적 무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나토를 동진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동유럽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것도 나토 가입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강력한 핵무장과 지상군으로 유럽 안보에 큰 위협 요소다. 그러나 유럽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러시아의 경제력이 장기적으로 군사적 우위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벅차 보인다.

러시아가 유럽 방면 전쟁에 대비해 실시하는 ‘자파트 2017’ 훈련에서 전차가 이동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누리집 갈무리

미국이 발을 뺀다면…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1년 전 ‘상설 구조적 협력체제’ 발족 때 “숲속의 공주가 깨어났다”고 환호했다. 리스본조약의 군사 관련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미국에 크게 의존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유럽 지도자들의 공통 인식을 드러낸 표현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만이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국력은 상대적 쇠퇴를 거듭한다. 미국의 포퓰리즘은 나토에 대한 불만을 계속 키울 수 있다. 냉전 때는 유럽이 주된 방어선이었지만 이제 중국이 미국의 주적으로 떠올랐다.

유럽 지도자들 발언은 아직은 허세에 가깝다. 미국의 힘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유럽 국가들의 군사력이 약한 탓이기도 하다. 데탕트(긴장 완화) 분위기에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 군사력은 1980년대에 견줘 병력, 전차, 함정 수가 절반 아래로 줄었다. 대규모 군축은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유럽 국가들이 국방비를 늘리더라도 두개의 장벽이 존재한다. 첫째, ‘통합 유럽군’은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지기 어렵다. 유럽 국민국가들은 초국가를 지향하는 유럽연합에 많은 것을 양보했지만 국방과 사법 등 본질적으로 국가가 독점하는 권한은 내놓지 않았다. 다음은 독일의 ‘재무장’과 군사적 주도권을 주변국들과 미국,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1990년 “나토를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시키지 않겠다”(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는 약속에 독일 통일에 합의해줬다. 이때 아버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통일 독일을 나토에 남겨두도록 소련과 협상한 것에는 독일의 손발을 계속 묶어둔다는 포석도 있었다. 지금도 독일 주둔 미군은 3만5천명으로 유럽에서는 가장 많다. 동맹국을 방어하는 동시에 과거의 전범국에 족쇄를 채우려는 목적은 주일미군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정상들은 미국을 배제하는 안보 체제를 쉽게 얘기하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아래 단계에서는 설명이 다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기고에서 “우리가 차근차근 추진하는 것은 ‘유럽의 군대’다. 군대는 국가의 책임 아래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더 긴밀히 연결되고, 같은 장비로 무장하고, 합동 작전에 대비해 훈련할 것”이라고 했다. 각국 군대를 합치는 게 아니라 끈끈하게 연결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나토가 있는데 딴살림을 차릴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강력하다. 잇따른 ‘안보 독립’ 발언은 장기적으로 강한 유럽을 염두에 두면서, 당장은 ‘그만하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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