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응원한 MBC 이런 모습 아냐".. 최승호 사장은 왜?

김윤정,김혜주 입력 2018. 11. 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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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언제든 오라'던 최승호 MBC 사장, 방송스태프노조 문전박대

[오마이뉴스 글:김윤정, 사진·영상:김혜주]

▲ 장시간 촬영 및 턴키 계약 강요하는 MBC 규탄 기자회견 장시간 촬영 및 턴키 계약 강요하는 MBC 규탄 기자회견
ⓒ 김혜주
 
"여기 있는 모두, MBC 57년 발전하는 길에 함께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문전박대당할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가 여기 테러하러 왔습니까!"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로비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최승호 사장에게 'MBC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 요구 서한'을 전달하려던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방송스태프노조) 조합원들은 보안 요원들에게 가로막혔다. 유리문 밖에서 "요구 서한 전달하겠다는 건데 왜 막느냐, 이 종이가 테러 장비냐"고 소리치는 조합원들 너머로, MBC를 구경하러 온 듯한 청소년 여러 명이 로비 안을 유유히 지나갔다. 

MBC 로비는 누구에게나 오픈된 공간이었지만, 그 '누구나'에 방송스태프 노조원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노조가 밖에서 '노동인권 침해하는 턴키계약 거부한다', '주 52시간제 취지 역행하는 탄력근무제 거부한다'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유였다. 보안 요원은 이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의 출입까지 제지해 기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최승호 '언제든 오시라' 말 믿은 스태프 노조, 문전박대한 MBC 
 
 MBC 로비 출입이 제지 당한 방송스태프노조 최오수 조직국장이 바닥에 주저 앉아 있다.
ⓒ 김혜주
방송스태프노조는 지난 9월 20일과 10월 15일, MBC <배드파파>의 초장시간 노동 문제와 턴키계약(일괄도급계약)을 지적하며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방송스태프노조 최오수 조직국장은 "장재훈 MBC 드라마 부국장과 면담도 진행했지만, 하루 2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은 계속됐다.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MBC의 총책임자인 최승호 사장과의 직접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10월 25일과 11월 5일,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도 보냈다"고 주장하며 이날 방문이 '공식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1월 9일 '상생 방송제작을 위한 독립창작자 인권선언문 선포식'에서 노동조합은 최승호 사장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최 사장 역시 '언제든 오시라'고 흔쾌히 응했다. 그런 말들은 공식적인 자리라 시선을 피하기 위한 립서비스였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보안 요원들은 "최승호 사장은 자리에 없다. 요구 서한을 두고 가시면 전달해드리겠다"는 말만 반복했고, "보안 팀장에게 전달하고 가라는 건 말도 안 된다. 최 사장이 없으면 드라마국 내에 책임 있는 사람이라도 내려와 받아가라. 최 사장의 메시지라도 가지고 오라"는 스태프 노조와 보안 요원들 간의 대치가 40여 분 이어졌다.

퇴근-출근 텀이 2시간 30분... "최소한의 수면 시간 보장하라" 
 
 방송스태프노조가 공개한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 촬영 스케줄표에 따르면 <배드파파> 스태프들은 하루 최대 22시간 40분, 근무일 기준 하루 평균 17시간 40분을 일했다.
ⓒ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이날 방송스태프노조는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의 촬영 스케줄을 공개하며 "제대로 자고,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달라. 최소한의 노동권 지켜 달라"고 요구했다.

촬영 스케줄 기록에 따르면 7월 18일부터 9월 18일, <배드파파> 스태프들은 근무일 기준 하루 평균 17시간 40분을 일했다. 이 중 하루 20시간 일해야 했던 날이 11일이나 됐고, 11시간 미만 노동한 날은 하루에 불과했다. 스태프들은 스태프 버스를 이용해 이동하는데, 이 버스의 전날 도착 시각과 이튿날 출발 시각 텀이 2시간 30분에 불과한 날도 있었다. 취침은커녕 근처 찜질방에서 휴식을 취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다. 

노조는 <배드파파>가 촬영 첫날부터 하루 18시간이 넘는 촬영을 진행하고, 11월 초부터는 하루 16시간 이상씩 주당 5~6일(주당 100시간 내외) 장시간 촬영했다고 지적하며 이 모든 초과 노동이 제작 현장 노동자들의 개별 근로계약 요구를 무시한 채 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방송스태프노조 김두영 지부장은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건 최소한의 잠잘 시간, 밥 먹을 시간"이라면서 "수많은 세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던 노동자였다. 여러 사회단체나 공청회를 통해 수없이 말했지만, 방송사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힘내라 응원하던 마봉춘, 이런 모습 아니다" 
 
 <배드파파>의 초 장시간 노동과 불공정 턴키 계약에 대해 항의하는 방송스태프노조원들의 뒤로 MBC <배드파파>가 방송되고 있다.
ⓒ 김혜주
지난 2017년 MBC 파업 당시 MBC 본사 앞에서 '힘내라 마봉춘' 피켓을 들고 MBC를 응원하던 언론개혁시민연대 최성주 대표는 "오랜 시간 MBC 정상화를 바라고 응원했다. MBC를 지키기 위해 많은 힘을 보탰기에 착잡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내가 힘내라고 외쳤던 MBC는 여기 이 노동자들의 곁에 서 있어야 했다"면서 "MBC 노동자들만 '자유 언론'을 이야기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존중받자고 MBC를 응원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최소한의 노동 조건 향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면서 "최승호 사장은 이런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분이다. 당장 해결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함께 시작해 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최 대표를 비롯한 방송스태프 노조원들이 맞닥뜨린 건 모두에게 오픈된 로비에 입장할 수조차 없다는 보안 요원들이었다.

당초 방송스태프노조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최승호 사장을 만나 요구 서한을 전달하고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노조원들의 MBC 로비 출입이 제지되면서 충돌이 생겼고, 40여 분 이어진 대치 상황은 이동애 비서팀장이 등장해 방송 스태프 노조 대표 3인과 대화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노조 대표 3인은 이동애 비서팀장에게 요구 서한을 전달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최오수 사무국장은 <오마이뉴스>에 '답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으니 내부 정리 후 면담할 수 있도록 답을 주겠다', '면담 자리에 최승호 사장이 나올지 여부도 논의 후 알려주겠다'는 이 비서팀장의 말을 전했다.  

최 사무국장은 이어 "최승호 사장처럼 책임 있는 사람이 대화에 나서야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사장 면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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