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통신망 관리 소홀은 '국가전복' 행위다

입력 2018. 11. 28. 09:56 수정 2018. 11. 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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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_김재섭의 뒤집어보기
통신사 경영자·정부 책임지고 관리 나서야
'통신요금 인하 탓' 사업자는 철퇴 가해야
민낯·급소 다 드러났으니 해결책만 찾으면 돼
KT 아현동 통신구 화재, 대한민국 바로잡을 기회

[한겨레]

민원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가운데)이 27일 단장을 맡은 ‘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 TF’ 첫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부 부처와 사업자들은 모두 이번 통신대란에 대한 책임을 져야 곳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잣대로 보면 ‘국가전복세력’에 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119 전화 불통으로 골든타임에 병원에 가지 못해 숨졌다. 의료보험 가입자 원격 확인이 안 된다며 진료 접수조차 안 해줘 아픈 몸으로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현금은 없는데 카드결제가 안 돼 편의점에서 물 한병 사먹을 수 없었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서 앞사람이 통화를 빨리 끝냈으면 하고 바랐다.

‘응답하라 1980’ 시절 얘기가 아니다. 재난 상황을 다룬 영화나 소설 속 장면도 아니다. 지난 24일 발생한 케이티(KT) 아현동 통신구 화재에 따른 통신대란으로 한국민들이 실제로 겪은 일이다. 2018년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시민 수백만명이 가상훈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을 경험했다. 그것도 4차 산업혁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차세대 이동통신(5G) 세계 최초 상용화를 꿈꾸는 문재인 정부에서.

그래서일까. 이번 사태를 재해석해, 대한민국 정보통신을 크게 발전시킬 ‘큰 획’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통신사 임원은 “통신망을 복구하느라 밤샘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통신대란 피해를 본 분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 바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안해하고, 실제로 통신망 품질에 걸림돌로 작용해온 ‘불편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케이티 임직원 중에서도 “터질 게 터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탄 통신망을 서둘러 복구하는 한편으로 ‘숙제’와 ‘과제’를 찾아 법·제도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데 더욱 큰 방점을 둬야 한다는 뜻이다.

통신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번 케이티 아현동 통신구 화재 건은 ‘화재’와 ‘통신대란’을 분리해서 봐야 교훈이 생긴다. 화재는 있을 수 있고, 불가항력일 수 있다. 실제로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곳을 두고 “절대 불이 날 수 없는 곳”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찰·소방서·국과수가 발화 원인 조사를 하고 있으니 맡겨두면 된다.

주목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은 통신대란 부분이다. 케이티의 설명대로라면, ‘D등급’으로 분류돼 간부급 책임자와 24시간 상주근무 체계도 없는 ‘조그만’ 통신시설의 통신구에서 불이 났는데, 서울 한복판이 1980년대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꼴이다. 더욱이 이런 상황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고, 동케이블을 사용하는 유선전화와 카드결제망은 며칠 더 걸려야 복구가 완료될 수 있단다. 뭔가 이상하다.

사실은 이렇다. 이번에 통신구 화재가 발생한 아현국사는 D등급 통신시설로 분류돼왔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인터넷 집중국이었다. 서울 시내 상당부분을 커버하는 인터넷 통신망 설비가 이곳에 집중돼 있었다. 애초에는 소규모였으나, 이석채 전 회장 시절부터 본격화한 부동산 유동화 전략에 따라 주변 지사·지점 건물들이 다른 용도로 재개발되면서 부동산 개발 가치가 떨어지는 이곳으로 시설들이 옮겨지면서 인터넷 집중국으로 커졌다. 하지만 케이티는 여전히 이곳을 D등급 시설로 유지하며 소홀히 관리했고, 화재예방 설비는 물론이고 사고 발생 시 우회로 확보에 필요한 백업체계 등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현장 직원들은 이런 곳을 ‘폐쇄형 전화국’이라고 부르는데, 케이티의 D등급 통신시설은 전국에 835곳에 이른다.

통신망은 정보통신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주는 근간이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인터넷·인터넷텔레비전·이동통신·카드결제·온라인게임·국가정보화·클라우드·인공지능·빅데이터 등 통신망을 통해 제공되거나 그 위에서 돌아가는 모든 서비스가 헛것이 된다. 그런 통신망 관리를 이처럼 허술하게 해온 것이다. 통신 비전문가들이 ‘낙하산’ 형태로 와 생색 안나는 통신 공공성보다 수십억원의 성과급을 챙길 수 있는 수익성 위주의 경영에 치중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더욱이 정부는 이런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웅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확인하니, D등급은 아예 정부 관리 대상이 아니어서 전체 개수밖에 모른다고 한다. 정부가 계속 대책을 세운다고 하는데, D등급 위치도 모르면서 어디 가서 점검을 하겠다는 건지 참 갑갑하다”고 했다.

‘정보통신기술 강국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급소가 드러났다’ ‘화재 한방이 대한민국 수도를 원시사회로 되돌렸다’…. 당시 언론 기사 내용이다. 사실 이는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엘지유플러스(LGU+)도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통신사들도 할 말이 없었던지 12월1일로 예정된 차세대 이동통신(5G) 첫 전파 발사 행사를 띄우려고 예정했던 기자간담회를 일제히 취소했다. 말로는 통신대란 복구가 우선이라고 하지만, 이번 사태로 불편한 진실들이 속속 드러난 게 불편했기 때문일 거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민원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근본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에선 행정안전부·방송통신위원회·소방청·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가, 민간에선 케이티(KT)·에스케이텔레콤(SKT)·엘지유플러스(LGU+)·에스케이브로드밴드(SKB)·씨제이(CJ)헬로 등이 참여했다. 이번 케이티 아현동 통신구 화재로 드러난 통신재난 대응체계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재발방지와 신속한 재난대응을 위한 근본대책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단다.

태스크포스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 대한민국 정보통신의 수준이 한 단계 도약할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급소로 남을 것인지다. 혹시라도 통신사들이 요금인하 요구 때문에 투자를 못하겠다고 하면 정말 이번에는 ‘철퇴’를 가해야 한다고 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케이티 노조가 파업을 결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국가전복세력’이라고 했다고 한다. 통신망에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읽힌다. 그 말을 빌리면, 통신망 관리 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통신사 경영자나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정부 관리들 역시 국가전복세력과 다름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질책도 필요해 보인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거나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 서둘러 시행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통신대란 사태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케이티 새 노조의 경고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만약 자율주행 차나 원격의료 서비스 등이 대중화된 상황에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끔찍한 상황이다. 뒤집어보면, 이번 사태는 ‘사고’지만 분명히 ‘기회’이기도 하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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