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연학] KT, 기본으로 돌아가라

2018. 11. 29.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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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아현지사 화재로 야기된 통신장애는 서울 서부지역의 풍경을 한나절 동안 5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공중전화 앞에 이어진 줄은 이동전화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1970년대를 연상케 했고, 신용카드 기계가 먹통인 상황도 현금이 유일한 결제수단이었던 오래전 모습이었다. IT 강국이라고 자부하며 차세대 이동통신망 5G 전파 발사를 불과 며칠 앞둔 우리 시스템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자그마한 지하 통신구에서 생긴 화재 한 건이 수십만 시민의 일상을 멈춰 세운 사태는 초연결 시대에 당연시했던 통신 인프라의 정상 작동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깨워줬다.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고 초연결 시대를 온전히 향유하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있다. 도대체 왜 18년 만에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난 것인지, 이처럼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통신시설에 방재장치는 왜 없었는지, 화재가 나도 신속하게 우회할 백업망이 왜 없었는지의 의문이 그것이다. 해답을 찾아야 5G 시대를 제대로 맞을 수 있다.

우선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불이 난 통신구는 통신전용시설로 일반인 출입이 제한돼 방화나 실화 가능성은 낮은 곳이다. 더구나 통신 케이블은 불이 잘 안 붙는 불연재로 돼 있다. 1994년 종로와 2000년 여의도 통신구 화재는 각각 배수펌프와 한전의 전기 케이블에서 발화한 것이어서 이번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확한 화인은 감식이 끝나야 알 수 있겠지만 필자는 유선 통신망 투자비 감축으로 인한 시설 노후화가 원인이 아닐까 추측한다. 통신사들은 최근 요금 인하로 이익이 줄어든 상황에서 5G나 미래 신사업 위주로 투자하다 보니 기본통신망(backbone network)으로 사용하는 유선망에 대한 재원 투입을 많이 줄인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격언을 되살려야 한다. 통신의 기본은 끊김 없이 연결되는 유선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와 유지·보수다. 기본통신망이 제대로 구축되고 운용되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도, 5G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둘째로 아현지사 통신구에 화재감지 및 방화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소방법에 의하면 길이 500m 이내의 통신구나 전력구에는 방재시설 설치 의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400m이든 500m이든 화재로 통신·전력이 끊겼을 때의 혼란은 똑같이 엄청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는 현재에도 이런 아날로그적인 규제가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다. 이번 사태를 겪은 KT가 의무화되지 않은 구간도 CCTV와 스프링클러를 설치한다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당국은 실태 조사와 함께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셋째로 아현지사에 백업망이 없었다. 관련 규정에 의하면 통신지사를 A∼D등급으로 나눠 C등급까지만 백업망 구축을 의무화하고 D등급은 그런 의무가 없다고 한다. 중요성이 덜하거나 가입자가 적은 지역의 통신지사에 백업망 설치 의무를 면제한 것이다. 이번 피해 규모를 감안할 때 아현지사를 D등급으로 분류한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과거 KT 현장 조직은 300여개 전화국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합리화(통폐합) 작업을 추진하면서 56개 광역지사로 통합했다. 아현지사도 아마 과거 소규모 지사여서 D등급으로 분류됐고 이후 통합 작업을 거쳐 규모가 커졌음에도 과거 등급을 계속 유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모든 통신사의 지사에 대해 규모와 중요도를 재검토해 등급을 조정하고 그에 따른 백업망 의무를 부과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다만 모든 통신망에 백업망을 구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엄청난 비용이 들고 그것은 결국 이용자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번 사고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목전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통신사업자와 당국 모두 원인을 냉철히 분석하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고 유형을 면밀히 검토해 투자에 반영하고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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