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러시아, 중국의 고작 2배..왜 지도에선 더 커 보일까?

2018. 11. 2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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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지도
공간 정보 기록이 지도 탄생 이유
현존 최고 지도는 약 4500년 전 제작 된 것
적도 가까운 지역일수록 작게 그려져
산업혁명 이후 제국주의 시대엔 수탈의 증거
지도 위 지명은 그 땅의 역사 반영한 얘기
나폴리·사르데냐가 대표적
정보화 기술과 결합한 지도, 진화 중

‘길치’라는 단어가 있다. 길에 대한 감각이 무뎌서 길을 찾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운전 기술의 절반 이상은 ‘길눈’에 있다는 말도 있다. 군대 같은 곳에서는 ‘독도(讀圖)법’이라는 것을 학습하기도 한다. 지도를 읽는 요령은 작전 수행에도, 생존에도 직결되는 중요한 생사 판단 수단이었다. 이런 단어들이 죽은 말이 될지도 모르는 세상이 도래했다. 위치나 방향 감각이 젬병인 사람도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열어서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목적지의 방향을 파악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두꺼운 종이 지도책을 굳이 보지 않아도 내비게이션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회전 정보만 따라가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갈 수 있다. 이제 지도는 손가락만 움직이면 확대?축소?이동?회전해가면서 조작할 수 있으며, 굳이 깨알 같은 지명을 훑어보지 않고서도 간단히 분류를 선택하거나 검색어를 입력해서 원하는 곳을 쉽게 찾아낼 수 있게 변했다.

인류는 공간에 관련된 각종 정보를 지도라는 그림 형태를 빌어서 기록했다. 사냥을 한 후 사냥감의 위치를 남겨서 다음에 활용하기 위해서 동굴 벽을 긁어서 지도를 그렸으며, 별의 운행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농산물이 바뀌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은 별자리의 변화상을 지도로 남겼다.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나섰던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곳에 대한 기록을 땅의 모양과 산과 강, 각종 동?식물 정보를 담은 지도로 남겼으며, 그 기록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호기심과 흥분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했다.

현존 최고의 지도는 약 4500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제작되어 현재 영국박물관에 보관된 것을 들 수 있으니, 문자의 역사만큼이나 인류와 함께 생활했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에라토스테네스, 프톨레마이오스 등 실험적인 선각자들은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경도와 위도라는 개념으로 파악해서 꽤 근대적인 지도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서양의 중세지도 중 흔히 ‘티오(T-O) 지도’라고 불리는 지도를 보면, 그 당시 세상을 지배한 신학의 개념에 따라 세계를 아주 단순하게 아시아·유럽·아프리카로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각은 물길로 나뉘어 있으며 전체가 물 위에 갇혀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원거리 무역과 전쟁 등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과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한 항해술과 측량술이 진화했고, 이로 인해 지도 역시 본격적으로 발전됐다. 국가의 효율적인 통치 등을 위해 지도가 활용되면서 지도 제작이 국가적인 정책 산업으로 진행됐다. 특히 산업혁명은 생산이 수요를 초과하는 혁명적 국면을 이끌면서 지도가 수요 창출 시장을 위해서 다른 국가로 진출하고자 하는 기초 자료 조사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1791년 창립된 영국의 육지측량부를 비롯하여 독일 덴마크 등에서 본격적인 삼각측량을 활용한 지도 제작이 활성화됐다. 미처 밟아보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땅이 존재할 것 같은 곳에는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라는 지명 아닌 지명을 붙였었으며, 인류는 그것을 하나하나 지워가면서 지구상의 여백을 촘촘히 지도로 메워갔다. 항공기가 전 세계 하늘을 날아다니고, 수많은 인공위성이 별처럼 지구 주변을 떠돌면서 지구의 사진을 전송하는 요즘에 이르러서는 지구상의 모든 땅이 지도에 샅샅이 실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도를 펼치면 세상이 펼쳐진다. 하지만 세상이 곧이곧대로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지도는 둥근 공 모양의 지구를 납작한 종이나 모니터에 표현해야 하는 태생적인 오류를 갖고 있다. 울퉁불퉁한 구형 표면을 해체하여 평면 위에 늘리고 줄여서 펼쳐놓은 탓에 실제 크기나 모양과는 달리 왜곡된 모습을 띠고 있다. 세계지도에서 우리나라의 위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러시아의 위상은 실로 위풍당당해 보이지만, 실제 면적(약 1710만㎢)은 그에 비해서는 다분히 왜소해 보이는 중국의 면적(약 957만㎢)에 비해서 고작 2배 크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흔히 우리가 보는 지도가 위도와 경도를 직각으로 교차하게 그리다 보니, 적도에 가까울수록 작게 그려지고 극점에 가까울수록 크게 펼쳐 그린 탓이다. 국가별 실제 면적을 간단히 비교해 보고 싶다면 ‘더트루사이즈’(thetruesize.com) 누리집에 접속해서 국가 명을 검색한 후 다른 국가의 영토 위로 드래그해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도의 왜곡이 얼마나 심했는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지도 위에는 수많은 경계와 지명이 존재한다. 이러한 경계와 지명들은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마치 언어나 숫자처럼 통용되는 약속으로 합의에 의해 정의되고 사용된다. 물리적으로 한 덩어리인 땅에 가상의 경계선을 그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편의 혹은 이권에 따라서 나누고, 각각 이를 부르기 위한 이름을 붙여 두었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물리적인 담장과 철조망 등을 설치하기도 한다)

경계로 나눠진 단위는 행정구역이 되기도 하고, 국가 단위가 되기도 하고, 대륙 단위가 되기도 한다. 역사나 문화와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서 이 경계가 그어진 경우도 많다. 산업혁명 이후 제국주의의 수탈이 심했던 시절, 경쟁적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나섰던 열강들은 거주하는 원주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경을 자로 잰 듯 자신들의 이권과 편의에 따라 설정해 두기도 했다. 세계 곳곳의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타인에 의해 ‘반듯하게’ 그려진 국경에 의해서 국가가 나뉘고 수준이 바뀌고 삶이 바뀐 채 현재까지도 그대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마을에 있는 산에 대해서 각자 마음대로 앞산, 큰 산, 둥근 산, 바위산 등으로 불러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지명이라는 약속을 두어서 모든 땅에 이름을 붙였다. 지명의 유래를 보면 그 땅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난지도와 삼각지, 살피재, 잠실, 압구정, 구파발 등 지명의 근원을 찾아 나서다 보면 그 땅 위에서 펼쳐졌던 선인들의 모습과 자연 풍경 등이 새삼 느껴진다. 나폴리(Neapolis)는 그 당시 최첨단 뉴타운(new town)이라는 의미에서 기원전 600년 전에 붙여진 이름이 아직도 ‘신시가지’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섬 사르데냐(Sardegna)의 경우는 이름만 들어도 정어리(sardine)가 풍성하게 잡혔던 지역과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국내에서는 이 지명에 대한 약속을 관리하는 역할을 국토지리정보원과 국립해양조사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지명을 신설하기도 하고, 경계 변경 또는 통·폐합 시 이에 맞는 지명을 선정하기도 하고, 지명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를 조정 및 중재하기도 한다. 동해와 독도의 사례도 있듯이 지명의 문제는 단순히 자국 내에 국한된 약속을 넘어선다. 유엔에는 국제 지명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에 유엔지명전문가그룹(UNGEGN. United Nations Group of Experts on Geographical Names)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지도는 땅의 모양만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각종 정보를 함께 넣어두었다. 흔히 사용하는 생활지도처럼 맛집, 주유소, 편의시설 정보가 포함된 지도도 있으며, 각종 통계를 조회할 수 있는 통계지도, 땅의 소유 정보와 가격 등을 제공하는 지적도 및 부동산 지도, 식생 및 환경을 중점으로 조사 자료를 그린 산림지도 및 토지피복지도 등 다양한 목적과 용도에 따라서 수많은 지도가 제작되고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지도가 정보화 기술과 결합하면서 누구나 쉽게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손안의 기술로 바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 사용자가 아닌 사물 사용자를 위한 기술로 확장되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어느덧 상용화를 앞둔 세상이다. 이 자동차는 도로나 건물 등을 표시한 지도를 읽을 뿐만 아니라, 도로 위 각종 시설물(신호등, 교통표지판, 차선 등) 정보와 주변에 움직이고 있는 자동차, 보행자, 신호종류 등을 파악해서 스스로 주행하게 된다. 사물이 스스로 지도를 읽고 판단하고 행위 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임영모(<맵인사이트 : 지도를 보는 따스한 시선:> 저자)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위 기사에서 제작상의 실수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가 들어갔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 뒤 온라인 기사에서 지도를 삭제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고개숙여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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