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 의료사고' 낸 의사 처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심층기획]

김주영 2018. 11. 2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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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작년 1162건 중 오진 68건 / 올해 지난 9월까지 60건.. 분쟁 증가 / 의사협, 처벌 면제 특례법 제정 요구 / 환자단체 "의사면허, 살인면허 만드나" / 의료계 "복수 감정인제도 도입하고 보다 중립·객관적 시스템 만들어야"
“오진으로 인한 의료사고라도 고의가 없었다면 형사처벌을 해선 안 된다.” vs “사람이 죽어도 의사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이냐.”

법원이 8세 어린이가 오진으로 숨진 사건에서 의사 3명에게 금고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뒤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지난달 24일 이 사건 1심 판결에서 “구속된 의사들이 고의는 없었지만 중대한 진단오류, 즉 오진을 해 어린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구속된 의사들은 최근 보석으로 석방됐지만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판결 이후 대한의사협회가 들고 일어났다. 의협은 지난 11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주최 측 추산 1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의료행위에 대해선 형사처분을 면제해주는 내용의 가칭 ‘의료분쟁특례법’을 제정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집단휴업 등 강경투쟁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환자 단체들의 모임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의협의 이런 집단행동과 요구를 규탄하고 나섰다.

◆의료사고 분쟁 매년 증가… 오진 연간 57건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 앞서 한국의료분쟁조정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의료사고 분쟁은 2013년 462건에서 2014년 827건, 2015년 753건, 2016년 831건, 지난해 1162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이 가운데 오진으로 인한 의료사고 분쟁은 2013년 40건, 2014년 81건, 2015년 45건, 2016년 48건, 지난해 68건 등 매년 평균 57건이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9월까지 의료사고 분쟁은 1143건, 오진으로 인한 분쟁은 60건이 각각 발생했다. 2013년부터 올해 9월까지 오진으로 환자가 사망한 사례는 총 46건이다. 김승희 의원은 “유방암을 ‘일반 혹’으로 또는 전립선암을 ‘전립선비대증’으로 오진하는 바람에 치료가 지연돼 환자가 사망한 사례가 대표적”이라며 “의료진의 과오가 명백한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들은 “오진에 의한 의료사고가 확실할지라도 형사처분까지 하는 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 겸 홍보이사는 “의료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행위에는 실수할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며 “오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분을 받아야 한다면 누가 위험한 수술을 하겠다고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처벌보다는 의료환경 개선 등을 통해 오진율을 낮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1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 의료 바로세우기 제3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이들은 오진으로 실형을 받고 구속된 의사들의 석방과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을 위한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 의사의 진료선택권 인정, 저수가 문제 해결 그리고 한의사의 의과 의료기기 사용 및 건강보험 적용 불가 등을 촉구했다.

◆갈등 악화일로 치닫는 의사협회·환자단체

환자단체연합회는 이를 정면 반박하고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사들이 해서는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의협이 요구하는) 의료분쟁특례법은 일종의 ‘의사 특권법’으로, 그러잖아도 의사들의 권한이 막강한데 형사처분까지 면제해 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지금도 의사가 환자 측과 조정이나 중재를 하면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환자단체연합회는 이달 7일 서울 용산구 의협 임시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의사들이 기본적인 주의 의무를 지키지 않아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구속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지만, 의협은 적반하장격으로 환자를 선별하는 진료거부권 도입과 특례법 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며 “의사면허를 살인면허로 변질시키려는 의사협회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에 의협은 환자단체연합회의 ‘살인면허’라는 표현을 문제삼았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같은 날 반박 성격의 기자회견을 열고 “한계를 뛰어넘는 악의적 망언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손해배상소송 등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편 의협은 총파업 성격의 집단휴업 대신 의사들의 근무시간 준수와 대리수술 근절 등을 골자로 하는 ‘준법진료 실시’를 선언했다.

◆“‘의사가 의사 재판’ 감정 시스템 개선해야”

보건복지부는 이 논란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행정부가 사법부 판단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법원 판결을 놓고 정부가 가타부타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의사협회가 법 제·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국회에서 논의가 의뤄지면 그때는 우리 부도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현행 의료감정제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젊은 의사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바른의료연구소는 “이 사건 재판부가 인용한 감정 결과 등이 객관적이지 않다”며 “법원의 감정 시스템부터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같은 사건도 1·2심에서 다른 감정 결과를 인용해 판결이 엇갈리는 경우가 있다”며 “의사가 의사를 재판하는 꼴”이라고 전했다.

최민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형법 논리대로라면 의사가 오진으로 상해나 사망 사고를 냈을 경우 과실치상이나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감정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의협 산하기관인 의료정책연구소는 2014년 작성한 한 보고서에서 복수의 감정인을 두는 ‘복수 감정인 제도’를 활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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