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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실용외교냐, 외교참사냐.. 체코 순방의 오해와 진실

정지용 입력 2018. 12. 0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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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가 28일 오후(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힐튼 호텔에서 열린 회담에서 대화하고 있다. 프라하=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27~28일 체코 방문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체코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떠나 정상회담을 갖지도 못한 데다가, 국내에선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해외에 원전을 팔겠다는 건 ‘자기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논란이 이어지자 외교부가 30일 오전 4시 2,050자 가량의 장문의 자료를 내고 반박에 나섰다. 이미 문 대통령에게 각종 비판이 쏟아진 후의 뒷북 내지 늑장 대응이다. 다만 ‘실리외교’와 ‘정상외교의 격’을 놓고 고민할 지점은 있어 보인다. 팩트 체크 형식으로 문 대통령의 체코 방문을 둘러싼 ‘외교 참사’ 및 ‘원전 세일즈 논란’의 오해와 진실을 풀어봤다.

◇체코 대통령을 못 만난 건 외교 참사?

문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안드레이 바비쉬 체코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순방 중이었다. 야당은 일제히 ‘문 대통령이 외교 결례를 당했다’고 맹비난했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 외교 역사상 해당 방문국 정상이 부재중인데 정상 외교를 목적으로 방문한 사례가 있느냐”고 지적한 게 대표적이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 “체코는 헌법상 내각책임제로 실질적 정부 운영 권한을 총리가 갖고 있다”고 했다. 총리와의 면담이 사실상 정상회담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또 “체코측이 올해 10월 아셈(ASEM) 정상회의 계기에 양자회담을 제안했지만, 우리측 사정으로 회담을 갖지 못한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외교부는 문 대통령이 바비시 총리와 정상회담이 아닌 ‘면담’을 가진 데 대해, “체코 측에서 제만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공식적인 정상회담을 갖는 것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했다. 체코 역시 대통령이 없어 격을 갖추기에 부담이 있었다는 사실을 외교부도 인정한 셈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당이 발간한 ‘국정감사백서’와 ‘문재인정부 112대 실정’ 책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 탈원전 하니 해외 세일즈 안 된다?

문 대통령의 ‘국내 탈원전-해외 원전 세일즈’는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우리는 위험해서 안 쓴다며 사형 선고해놓고, (남에게는) 질 좋으니 내 물건 사라고 하는 일이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체코에서 원전 세일즈를 한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 같으면 안 먹을 텐데 너나 먹으라는 식으로 장사를 하면 안 된다”(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말도 나왔다.

다만 정부는 국내 정책과 국익을 위한 해외 비즈니스는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랑스나 미국도 자국 땅에는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거나 비중을 줄여가면서도 해외에 원전을 판매하고 있다. 성윤모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은 “원전에 대한 정책적 판단은 각국의 상황에 따라 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원전 건설을 원하는) 나라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세일즈를 약하게 했다는데?

문 대통령이 체코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원전 세일즈를 ‘약하게’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탈원전을 의식해 해외에서도 움츠러든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 “체코 정부가 아직 원전 건설에 필요한 재원 확보 등 사유로 구체 계획을 확정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었다”고 답했다. 아직 원전 입찰이 공식화 되지 않아 체코 정부에 부담을 주기 어려웠다는 취지다.

G20 정상회의 중간 기착지인 체코 프라하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8일 오전(현지시간) 프라하 성내 비투스 성당을 둘러보고 있다. 프라하=연합뉴스

◇외교부 대응 아쉽기만…

문 대통령의 체코 순방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발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대만이 최근 탈원전 정책 포기를 선택하면서, 국내 탈원전 정책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한국의 탈원전 정책은 대만과 다르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은 가동중인 원전을 당장 폐쇄하는 게 아니라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6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감축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또 2023년까지는 원전 5기가 신규 추가 돼 가동 원전이 오히려 27기로 증가한다. 정부가 ‘탈원전’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정책’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다.

외교가에서는 “실패한 정상외교는 없다”는 말이 있다. 순방에 앞서 실무진들이 물밑에서 조율을 끝내놓기 때문에 정상 간 만남에서는 좋은 결과만 나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논란 거리가 생기는 데 대한 지적도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실용주의 외교를 추진해 이따금 격식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며 “외교라인이 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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