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푸틴은 정말 우크라이나를 집어삼키려는가?

박에스더 2018. 12. 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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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지난 세기 최대의 재앙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를 원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한 뒤 빠르게 세계사에서 사라져간 미-소 냉전시대 때 구소련의 '힘'을 복원하기를 꿈꾼다.

그렇다고 그가 뿔뿔이 흩어진 소비에트연방을 되붙이기라도 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비슷한 수준으로라도 국제적 영향력을 되찾고 싶어하는 거다. 문제는 그가 그를 위해 하는 일들이 항상 국제법적으로 합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을 결코 무모한 모험가가 아니라고 평한다. 오히려 그는 득실을 철저히 따지는 실용주의자로 통한다. 군사력 사용에도 꽤 신중하다. 기회를 보고 쓴다는 것이다. 분명히 잃을 것보다 얻을 게 많아보이는 순간에, 비록 합법적이지 않아도, 그는 과감하게 군사력을 쓴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뒤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와의 충돌에 공식적 공개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군함 무력으로 나포

지난 25일 러시아가, 흑해에서 아조프해로 가기 위해 케르치해협을 통과하려던 우크라이나 해군함정 2척과 예인선 1척을 나포했다. 군용기까지 동원했고, 해안경비함정이 우크라이나 군함을 들이받으며 발포까지 했다. 우크라이나 승조원 3명이 부상했으며, 러시아측은 승조원 24명 전원을 체포한 뒤 '집단적 무단 월경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우크라이나는 케르치 해협 통과를 러시아에 미리 통보했다고 하고, 러시아는 통보를 받은 적이 없으며 오히려 케르치 해협 폐쇄를 통보했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배가 러시아 영해 12마일 밖에 있었다고 하고 러시아는 배들이 러시아 해상 경계 안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법적으로 보면 잘못은 러시아측에 있다. 지난 2003년 쌍무협정에 의해 아조프해와 케르치해협은 양국의 공동 영해로 돼있기 때문이다. 양국에는 해협 통과를 사전에 통보해야 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러시아측은 크림반도 병합 뒤 2015년 일방적으로 케르치해협 통과를 사전 통보하란 규정을 발표했고, 크림반도가 여전히 우크라이나 땅이라고 주장하는 우크라이나는 당연히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고조돼온 케르치해협의 긴장

이번 사건은 결코 돌출적이지 않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는 러시아의 오랜 시도의 연장선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2004년 오렌지혁명 뒤 계속 친서방 노선이 강화한 우크라이나에서, 지난 2014년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러시아는 즉각 개입했다. 크림반도에, 친러 분리주의자 시위를 지원하며 군대를 투입한 뒤 찬반투표를 실시해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병합시켰고,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의 '돈바스 전쟁'에 개입해 반군을 지원해왔다. 돈바스에서는 친러반군이 러시아제 미사일로 300명이 탄 말레이시아 항공기를 격추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내전으로 지금까지 민간인 3천여명을 포함해 만여명이 숨졌다. 크림반도 병합으로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강도높은 경제 제재가 시행됐으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입을 멈추지 않았다.

올 들어 특히 아조프해와 케르치 해협에서의 양국 간 긴장과 충돌이 잦아졌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측이 우크라이나 해역에서 절차를 위반했다며 러시아 선박을 억류한 뒤 선원들만 풀어준 적이 있다. 그러자 러시아는 케르치해협을 통과하는 우크라이나 배들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불법 조업을 했다며 우크라이나 어선을 억류했다.

지난 5월 러시아가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크리미안 다리'를 개통시키며 갈등은 격화됐다. 명목은 러시아의 크림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공고히 하자는 것이었지만, 이 다리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아조프해 항구들에도 문제가 생겼다. 다리가 너무 낮아 배들이 케르치 해협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다리 개통 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항구의 물동량이 30퍼센트나 줄었고, 러시아가 화물을 검색한다며 우크라이나 선박을 최대 50시간씩 대기시키며 우크라이나의 무역과 어업도 피해를 입게 됐다. 러시아는 최근 카스피해의 해군함대들까지 아조프해로 이동시켰다.

이처럼 러시아의 아조프해와 케르치해협 장악 시도가 계속되는데도 국제 사회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우크라이나 측의 대응도 거칠어지게 된 듯 보인다. 지난 25일의 사건은 우크라이나로서는 크리미안다리 개통 뒤 처음으로 '군함'을 통과시키려던 것이었고, 러시아는 기다렸다는 듯 군사력을 동원했다.

사건 뒤 우크라이나 포로셴코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려는 것이라며 러시아 접경 지역 등 10개주에 즉각 계엄령을 선포하고 오데사 지역 등의 방공망을 전시 태세로 전환시켰다. 나토에는 아조프해에 해군 함정을 추가로 배치해달라고 요청했다. 러시아언론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접경지역에 미군 기지를 설치하는 문제를 미국과 논의 중이란 보도도 흘러나왔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 역시 흑해의 전함을 아조프해로 이동시키면서, 연말까지 크림반도에 첨단 방공미사일 시스템 S-400 포대를 4번째로 추가 배치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양측의 긴장은 지금도 계속 고조 중이다.


러시아는 아조프해를 집어심키려는가? 아니면 우크라이나 전체를?

서방이 드디어 반응을 하게 된 건, 그간 반군 등 대리인 지원, 선박 검색 등 간접적 방해 등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입을 시도하던 러시아가, 지난 2003년 양자 국제협정까지 맺은 케르치해협에서 군사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포로셴코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푸틴 대통령은 정말 우크라이나를 집어삼키려는 것일까?

그럴 수 있다면 그러기를 원하는지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 너무 큰 국내적 국제적 반발에 부딪칠 일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영향력 하에 넘어가는 것만큼은 기필코 막으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나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시나리오 같은 것들이다.

크림반도 병합 뒤 유럽연합과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를 시행했지만 러시아는 견뎌냈다. 그러던 차 미국에는, 푸틴대통령 같은 강력한 지도자와의 개인적 유대를 선호하는 대통령이 등장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며 유럽 우방국과의 균열도 두려워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에 대한 비판은 짐짓 자제했다. 그런가 하면 올해 유럽연합은 영국과의 브렉시트 협상안을 타결짓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로 그 사이 푸틴대통령이 슬금슬금 케르치해협에서 우크라이나와 긴장을 고조시키다 기어이 군사력 사용까지 나아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현 포로셴코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낮은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일부러 도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자릿수 지지율에 그치고 있는 포로셴코 대통령에게는 이번 일이 과연 호재로 보인다. 러시아에 강하게 반발하며 내린 발빠른 계엄령 역시 그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크라이나가 먼저 문제를 일으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 크림반도 병합,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등 내부 친러세력 지원, 아조프해 장악 시도가 이어지는데도 막을 방도가 없다면,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침묵하는 국제사회를 깨우는 일 뿐이지 않았을까?
게다가 우크라이나 대선 판을 흔드는 건 어쩌면 푸틴 대통령이 정작 하고 싶은 일인지도 모른다. 포로셴코보다 더 친서방적인 후보들이 부상하고 있다. 만약 지금보다 더 친서방적인 후보들에게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된다면, 그래서 친서방 정권이 민주주의적 정통성마저 획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러시아에게 달갑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트럼프는 미-러 정상회담 취소했지만...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장으로 향하며 전용기를 타기 전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만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지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비행기 안에서 트위터로 "미-러 정상회담을 취소했다"고 알렸다. 명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선박과 선원들의 억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난한 건 아니다. "상황이 해결되는 대로 의미있는 정상회담을 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국 언론들은 미-러 정상회담을 무산시킨 건 '케르치 해협 사건'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린 미국 국내정치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하고 있는 특검에 협력해, '과거 트럼프 대통령을 엄호하기 위해 의회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오는 10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다.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여부를 논할 예정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모두 이번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러시아를 제어할 만한 수준의 강력한 행동에도 나설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의 대러 제재도 너무 심하다는 입장이다. 독일은 러시아와, 러시아에서 발트해를 거쳐 독일로 들어오는 천연가스파이프라인을 건설 중이다. 이탈리아 등에는 친러 우파정부가 들어서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의 전함 파견, 미군 기지 건설 등은 러시아에 추가 무력 사용의 명분이 될 수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그 반응들을 보고 언제 어떤 속도로 어디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통제를 만들어 갈지 결정할 것이다. 실보다 득이 많은 방식과 순간들을 계속 도모하려 할 것이다. 그 판단에 도움을 받으려고 이 일을 벌인 것은 아니었을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다음에 뭘 할 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그런데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더이상 놀라지도 않는다는 게, 바로 푸틴 대통령 전략의 핵심이라고 CNN은 지적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벌이는 일들에 대한 무관심이, 푸틴을 더 과감하게 만들고 있다고 가디언은 경고했다.

박에스더 기자 (stella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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